아름다운 산사

구례 지리산 연곡사-- 화엄사는 가지 않아도 연곡사는 가야하는 이유를 찾아서

lotusgm 2025. 3. 29. 09:29

 
 
 
 

(3월15일 토요일) 올 해 들어 꽃타령을 불러대던 옆지기가 "신정일의 신 택리지"의 저자 신정일 선생이 인솔하는 하루 당일 연곡사와 지리산 언저리 산수유 마을 걷기에 신청해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동승했다.
다섯시간 가까이 달리고 달려 제일 먼저 '구례 지리산 연곡사 일주문' 앞에 내려섰다.(11시45분)
모두들 빠른 걸음으로 일주문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에 나도 괜시리 마음이 급해진다. '화엄사에는 가지 않아도 연곡사에는 꼭 가야한다'고 강조하시는 인솔자 선생님 말씀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아무리 말하고 들어도 내가 직접 본 것만 못하니 단단히 마음 먹고 뒤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날 짐승의 날개처럼 휜히 드러난 연곡사 일주문 처마 아래 겹 공포들이 일제히 소리 치듯 참배객을 맞는다.
 
 

 

 
 

 
 

 
 

 
 

 
 

 
 

 
 

 

 

연곡사 큰법당 '대적광전'으로 가는 마지막 문인 '삼홍루' 계단 위에서 왼편으로 시선을 옮기면
'피아골순국위령비'가 있다.
 
 

 

장식이 배제된 3층의 기단 위에 각 층의 탑신을 덮은 지붕의 곡선이 우아해 보이는 아름다운 3층 탑인 것 같다.
보물 제151호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
 
 

 

 
 

 
 

나는 이제사 대적광전을 바로 보고 섰는데 모두들 대적광전 뒤편으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관음전'
 
 

 

 
 

'명부전'
 
 

 

 
 

 
 

 
 

연곡사에 오면 빼놓지 말고 참배해야 할 곳 중 제일 먼저 '국보 제53호 동 승탑' 이다.
도선국사의 승탑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으며, 일제 때 동경대학으로 반출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된 비례감을 잃지 않으면서 훌륭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를 대표할 만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연곡사는 고려 전기까지 스님들이 선(禪)을 닦는 절로 이름이 높았는데, 이 때문인지
이곳에는 '동 승탑'과 함께 '소요대사탑'(보물 제154호), 구례 연곡사 '북 승탑'(국보 제54호) 등 2기가 더 있다.
'동 승탑'은 그 중 형태가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작품이다.
 
 

 

 
 

보물 제153호 '동 승탑비'는 글이 새겨지는 부분인 비신은 없어지고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있다.
 

 
 

'동 승탑'과 짝을 이루어 만들어진 통일신라 시대의 비로,머릿돌은 구름 속에 용 다섯마리를 생동감 있게 묘사하였고,
받침돌에는 뿔이 하나 달린 용모양의 머리, 날개 달린 거북 모양의 등을 갖춘 상상 속의 동물인 '연'을 형상화한 것이다.
용의 등 중앙에 비를 끼우도록 마련된 비좌는 구름 무늬와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다.
 
 

 

'동 승탑과 동승탑비'
 
 

 

연곡사 숨겨진 국보 순례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숲길이다.
 
 

 

 
 

 
 

 
 

 
 

'북 승탑(국보 제54호)'은 연곡사 3기의 석탑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동 승탑'을 본 떠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히 누구의 승탑인지 밝혀지지 않아 북쪽에 있어 '북 승탑'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기와의 골을 새겼으며, 기와를 끝맺음할 때 두는 막새기와까지 표현할 정도로
수법이 정교하다. 머리장식으로는 날개를 활짝 편 봉황과 연꽃무늬를 새겨 아래위로 쌓아 놓았다.
 
 

 

기단(基壇)은 세 층으로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을 올렸다. 아래받침돌은 두 단인데, 구름에 휩싸인 용과 사자모양을 각각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받침돌에는 둥근 테두리를 두르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러 몰려든다는 8부중상(八部衆像)을 새겼다. 윗받침돌 역시 두 단으로 나뉘어 두 겹의 연꽃잎과 기둥모양을 세밀하게 묘사해 두었는데, 이 부분에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안에 불교의 낙원에 사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를 새겨둔 점이 독특하다.
 

※불교의 낙원에 사는 가릉빈가.
 
 
 

 
 

탑신(塔身)은 몸돌의 각 면에 테두리를 두르고,
그 속에 향로와 불법을 수호하는 방위신인 4천왕상(四天王像)을 돋을새김해 두었다.
 

 
 

 
 

 
 

 
 



 
 

보물 제154호 '소요대사탑'
지붕돌은 귀퉁이 여덟 곳을 큼지막하게 꽃 장식을 얹어 두었으며, 꼭대기의 머리 장식에는 
봉황 4마리의 형태가 완전하게 남아있다.
 
 

 

 

 

 
 

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제154호)은 탑신의 한 면에
'소요대사지탑 순치육년 경인(逍遙大師之塔 順治六年 庚寅)'이라는
두 줄의 뚜렷이 새겨져 있어서 탑의 주인과 건립 연도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소요대사 태능'은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에 불타 버린 연곡사를 크게 중창하고
서산대사의 선맥을 이은 큰스님이다.
 
 

 

탑신의 몸돌에는 한 면에만 문짝 모양을 새기고 다른 면에는 인왕상을 돋을새김 하였다.
 
 

 

 
 

'소요대사탑' 앞에는 오랜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종형부도탑이 있다.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보물 제152호)는 고려 전기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경종 4년(979)에 건립한 것이다.
 
 

 

 
 

비석 머릿돌 가운데(두전) 부분에 '현각선사비명(玄覺禪師碑銘)'이라는 비 이름이 새겨져 있어, 현각선사의 탑비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탑비는 귀부의 머리 부분과 몸통 부분이 조각난 것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연곡사 '삼층석탑'(보물 제151호)
 
 

 

'종각'
 
 

 

'삼홍루'
 
 

 

 
 

 
 

연곡사 처럼 일주문으로 부터 큰법당 까지 거칠것 없이 일렬로 자리 잡은 가람 배치는 그리 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