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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인도 성지순례 여행의 시작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동산 본문
<여행 4일째 11월 5일>
해도 뜨기전 새벽에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참배를 하기 위해 호텔에서 걸어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룸비니 동산으로 갔다.
가로등은 고사하고 어떤 불빛도 없어 주변은 정말 칠흑같이 어두운 길이었다.
룸비니 동산 입구 건너편에서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이나 양말 바람으로
입구에서는 가방 수색을 거친 후 들어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하얀 건물이 마야당이다.
부처님 탄생지에서 순례여행 첫예불을 부처님의 탄생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봉행하며 그 동안의 예불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가슴 밑바닥으로 부터의 감동을 알아챈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야당 내부에는 마야부인이 오른손으로 늘어진 가지를 잡고 산통을 겪으셨다는 무우수無虞樹가 있었고,
사당 탑 정중앙 아래가 부처님께서 첫발을 내딛으셨던 자리,그리고 북쪽을 향해 일곱걸음 걸으셨던 자리가 있다.
예불을 마치고 마야당으로 들어갔다.
마야당 내부에는 부처님의 탄생 부도와 얼마전에 일본 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부처님 탄생 시 뗀 첫발자국이 보존되어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성지는 천년의 역사 동안 증축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부처님 열반하시고 나서 200년 후에 부처님 재세시 선업을 지은
아쇼카라는 왕이 태어나 부처님의 불법을 받아 성역화작업을 시작하였다. 초기 기단을 만든 후 150년(기원전 1세기) 후 흉가왕조가
그 위에 성역화작업을 하고,제 2의 아쇼카라 불리우는 쿠샨왕조 카니시카왕(대승경전시대,4차 경전결집)이 또 그위에 탑을 쌓았다.
그후 4~5세기 굽타왕조 역시 불교를 받아들여 기존의 성지 위에 또 벽돌을 쌓는 증축을 7~9세기 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성지는 그렇게 천년간 번영을 누리게 된 결과이다.
우리가 지금 다니는 성지는 부처님 재세시에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부처님께서 맨땅에서 대중에게 법을 설하셨던 자리이고
맨발로 바루 하나만 들고 걸어서 중생제도를 45년 동안 다니셨던 그 길에 200년 후에 아쇼카라는 왕이 부처님의 흔적을 찾은 자리마다
기둥과 벽돌을 쌓기 시작하고 후대의 왕들도 계속 쌓아올려 우리가 바라보는 지금의 성지를 이루게 된 것이다.-여행사 가이딩 발췌-
내부에서 촬영금지라 사진 한장 남길 수 없음이 아쉬웠다.
마야당 주위에는 고대 승원터가 남아있다.
마야당 건너편 싯다르타태자 연못은 마야부이니 출산 후 몸을 씻은 곳이며
그 뒤편에는 커다란 보리수나무 와 스투파가 있다.
이 곳의 아쇼카 석주는 원래 달려있던 말머리가 낙뇌를 맞아 떨어져 유실된 상태이며 현재 약7.2m 높이로
석주의 중간(지면으로 부터 3.3m지점)에는 아쇼카왕의 전문 다섯줄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천애희견왕(아쇼카왕)은 즉위 제20년 이 곳에 스스로 와서 참배하였다. 여기서 위대한 불타 석가모니가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로 말의 형상을 만들고 석주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이 곳에서 세존께서 탄생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축복받은 땅 룸비니
마을의 조세를 면제해 주고,또 생산물의 1/8만 지불케 하라" 고 기록하고 있다.
주위가 캄캄한 새벽에는 보이지 않았던 양쪽 길은
온갖 꽃들로 지천인 것을 보면 2,500년 전 마야부인이 아름다운 룸비니를 선택했던 이유를 알 듯도 싶다.
문을 나서서 호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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