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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이 발견된 것은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본문
'공산성'을 나와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무령왕릉과 왕릉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매표소는 200m 앞에 있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입구에서 눈길을 끌고있는 진묘수는 무령왕릉 입구에서 출토된 국보 162호 진묘수를 3배 크기로
제작한 것이다.
국가유산이 밀접한 거리에 있어 3곳 (무령왕릉과 왕릉원,공산성,석장리유적) 을 갈 수 있는 통합권을 끊으면 할인 받을 수 있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전시관으로 입장했다. 전시관은 무령왕릉 및 5.6호분을 실물과 동일한 크기의 모형으로 재현한 곳이다.
매시간 정각에 해설을 들으면서 관람할 수 있는데, 조금 늦긴 했지만 해설자 따라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 무리 끝에 합류했다.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공주 여행에서 해설자를 따라 이 왕릉원 전시관을 관람했던 것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무령왕릉이 발견된 것은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령왕릉 발굴이야기-- 1971년 7월,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의 장마철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6호분 옆에서 벽돌무덤의 입구가 발견된다. 벽돌이 차곡차곡 쌓인 채로 막혀있었는데 입구를 열어보니 한번도 도굴된 적이 없는 무덤인 것이 확인되었다. 1,500년 동안 땅 속에 묻혀있던 무령왕릉이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무령왕릉 발굴 조사단이 가장 처음 입구의 진묘수와 지석을 살펴 보던 중, 그동안 왕릉원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던 무덤 주인의 이름이 등장한다.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는 계묘년(523년) 5월7일 임진날에 돌아가셔서 을사년(525) 8월12일 감신날에 이르러 대묘에 예를 갖추어 안장하고 이와 같이 기록한다"
백제의 굴실돌방무덤은 한강 유역에 도읍하는 시기부터 축조하였는데, 처음에 움무덤(토광묘)과 돌무지무덤(적석묘)을
사용하다가 4세기말 전후하여 굴식돌방무덤을 사용하였다.
중국의 묘제는 처음에는 구덩식이 기본이다가 서한시기 굴식 묘제의 보급과 확산이 진행되고 굴식벽돌무덤이 등장한 이후 한국의 돌방무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6호분 벽돌무덤 내부로 들어서면서 비록 재현 된 공간이기는 하지만 잠시 시공을 초월한
찰나의 진공상태에 든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름 무덤 속이니까...
내부 벽이 마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형태의 6호분 벽돌무덤의 모습에 실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돌무덤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위진남북조에 이르는 시기까지 주로 사용하던 무덤으로,6호분과 무령왕릉이
조성될 당시에는 남조 양나라의 지배층이 사용하던 무덤 양식이다.
무덤의 주인을 지키는 사신도: 무령왕릉과 왕릉원 6호분의 네 벽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데,네 벽면에 회를 바르고 청룡,백호,주작,현무의 四神圖를 그렸다. 左上 동 청룡/ 右上 서 백호/ 左下 남 주작/右下 북 현무
무령왕릉의 무덤 주인을 알려준 묘지석.
묘지석은 돌판에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내용을 새긴 것으로 무령왕릉에서는 총2매가 발견되었다. 묘지석의 기록으로 인해 무령왕릉은 삼국시대의 왕릉 중 무덤 주인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 되었다. 무령왕의 묘지와 간지도,(사후 세계에서 토지를 매매할 수 있는 권리증)매지권과 왕비의 묘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지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국보 제63호)
묘지석의 내용에 따르면 무령왕은 523년 사망하여 3년 상을 치른 후 525년에 안치되었고,
무령왕비는 526년 사망하고 529년에 매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무령왕릉의 연도에서 발견된 진묘수는 뿔과 날개가 달린 상상의 동물로, 무덤을 지키고
죽은 자의 영혼을 신선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도교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백제 제25대왕 무령왕과 왕비를 합장한 무령왕릉은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 있는 무덤 중에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것으로, 무령왕과 왕비의 금제관장식을 비롯하여 5,2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전시실 가장 넓은 공간에는 무령왕릉 내부가 그대로 복제되어 있다.
왕비 나무머리받침(국보)/왕 나무머리받침.
'무령왕릉'
'무령왕릉'의 내부는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으로,(불교에서는 극락을 상징하는) 연꽃무늬를 새긴 벽돌로 쌓았다.
사방에는 등잔을 올려놓았던 등감燈龕과 그 아래에는 창문 모양을 설치하였다.
'왕릉 가는 길'
해설을 들은 사람들은 전부 왕릉원으로 향했다.
송산리5호분은 고분군 보존상의 이유로 1997년 7월15일 문화재청의 영구 비공개 결정에 따라
내부관람이 중지되었다. (입구의 사진도 오래되었지만, 전시관을 관람하고 설명을 들은 덕분에
대충 어떤 형태인지 짐작할 수 있어 다행이다.)
송산리6호분 역시 내부 관람은 영원히 할 수 없다.(낡은 사진으로도 5호분과는 내부 모습이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백제 제25대왕 무령왕(재위 501~523)과 왕비를 합장한 '무령왕릉'이다.
보존상의 문제로 어쩔 수 없는 '중지' 결정이지만 바라보고 있자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주차장으로 나와서 900m 떨어진 '국립공주박물관'으로 향했다.
매력적인 백제 유물 맛집-- 80년 유구한 역사의 '국립공주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 이 모형은 무령왕릉 널길에서 발견된 진묘수를 7배로 확대하여 제작한 것이다. '국립공주박물관'은 진묘수를박물관 대표 문화유산으로 선정하고 관람객과 '국립공주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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