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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마크 브래드포드 개인전 <Mark Bradford: Keep Walking> 본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마크 브래드포드 개인전 <Mark Bradford: Keep Walking>
lotusgm 2025. 11. 1. 09:27

꼭두새벽 부터 집을 나서서 옆지기가 부탁한 임무를 완수하고 집에 오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다음 역은 '신용산역'이라는 안내 멘트가 들리자 불현듯 생각난 게 얼마 전 블친 다보등님이 포스팅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전시회였다.
집에서 지하철 세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을 이제사 와보게 되다니... 친구따라 강남이 아니고 블친따라 '신용산역'에 내렸다. 신용산역 1,2번 출구 어느 방향으로든 나서면 막다른 곳에 이렇게 예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만의 입출구가 있다.

한글 보다는 영어가 더 많이 섞인 (주눅들게 하는)간판들이 즐비한 여러 상점들 통로를 지나 왼쪽 미술관 방향으로.



Mark Bradford: Keep Walking.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현대미술 기획전 2025. 8. 1 ~ 2026. 1. 25
16,000원.

특이하게도 미술관은 계단을 내려가 입장한다.


전시실로 들어 가기전에 라커룸에 짐을 보관했다(무료).

입구의 서성환 회장(1924~2003) 마스크.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 서성환 회장이 수집한 미술품을 기반으로 출발하였다.
태평양박물관을 시작으로 설립후 30년이 지난 2009년에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으로 명칭을 바꾸고 현재까지 한국과 외국,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미술관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18년 서울 용산에 완공된 아모레퍼시픽그룹 신본사에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아모레퍼시픽 서성환 100년 / 1924ㅡ2024

마크 브래드포드는 1961년 미국 LA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그곳에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유년 시절을 어머니의 미용실에서 보내며 다양한 커뮤니티와 삶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접한 작가는,
31세에 본격적으로 예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브래드포드는 도시 하층민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경험을
작업의 핵심 토대로 삼고, 도시의 부산물을 재료로 사용하여 도시 공간의 복잡한 문제들을 추상회화로 풀어낸다.
2021년에서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뽑혔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으로 주요 회화,영상 및 설치작업, 그리고 미술관 공간에 맞춰 제작된 신작까지
40여 점을 선보인다. -- 작품 폭포(Waterfall) 앞에선 작가 --

얼마 전 막을 내린 글로벌 아트페어(미술품 장터) ‘프리즈 서울’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마크 브래드포드'의 3부작으로 구성된 ‘Okay Then I apologize(오케이 덴 아이 어폴로자이즈)’는 약 63억 원에 팔리면서, 2022년 시작돼 올해 4회째를 맞은 ‘프리즈 서울’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블친의 포스팅으로 본 작품이긴 하지만 전시실을 들어서서 눈 앞에 펼쳐진 그동안의 '모셔진 작품'의 상식선을 완전히 벗어난
'촉감으로 감상하는 작품'의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작품 <떠오르다>는 캔버스,천,종이,노끈을 손으로 찢어 만든 수백개의 띠가 약 600㎡에 달하는 전시장 바닥을 덮고있다.
관람객이 그 위를 걷도록 함으로써 단순히 회화를 보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몸으로 만나는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수많은 '겹겹'이 만들어낸 공간이 내디딜 때마다 각각의 소리를 내는 듯 하다.




솔찍히 작품을 밟으며 지나와서 뒤 돌아 보면서도 정확히 뭐라 표현할 말이 없다.

이미 스포를 당했지만 막상 눈 앞에서 처음 본 느낌은 섬뜩했다.
그런데 벽에 걸린 다른 작품을 보면서 언뜻언뜻 바라 봤을 때의 느낌은 매번 달랐다.

이 전시실의 <엔드페이퍼>연작은 작가의 첫번째 작업이자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유년시절 미용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던 파마용 반투명 종이인 파마 용지(end paper)를
작품의 주제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반투명 용지의 가장자리를 토치로 태워 검게 그을린 테두리를 만든 후,
용지를 캔버스 위에 줄지어 나열하여 콜라주회화를 만들었다.

<불안한 동네>는 작가의 <엔드페이퍼> 연작의 초기 대표작으로 염색약으로 채색한 반투명의 엔드페이퍼를 여러겹 덧붙여
격자구조를 구성하고 그 위에 잡지에서 스크랩한 이미지를 콜라주했다.


<믿음의 배신>


<심장이 뛰는 쪽>


<변화보다 눈물이 쉽다>


<데스 드롭>은 작가가 자신의 신체를 본떠 32% 확대해 만든 조각으로, 제목은 *퀴어 볼룸 문화에서 파생된
퍼포먼스 동작 '데스 드롭'에서 비롯되었다. 작가는 12살 때 울타리에서 뒤로 넘어진 순간을 촬영한 영상에서
영감을 받아 어린 시절의 취약한 자아를 작품을 통해 회상한다.
(*'퀴어 볼룸 문화'란 남성들이 여장을 하고 모델처럼 걷거나 춤을 추는 문화를 말한다.)



다른쪽에서 바라보면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죽음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여기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편안한, 죽음이나 고통 보다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아이러니라니...

<파랑>

가까이 들여다 보면, 브래드포드는 엔드페이퍼를 겹겹이 덧붙인 표면 위에 파란색 스텐실로 지도 형태를 구현하고,
그 위로 흑백 신문지를 붙여 도시 구역을 형상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브래드포드의 작품은 작업실 주변 지역사회의 부산물을 이용하여 제작한 회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상업포스터>연작은 작가가 로스앤젤레스 길거리에서 수집한 전단지를 재료로 삼아 제작한 콜라주회화 시리즈이다.

<명백한 운명>은 미국 도시개발의 현실과 그 속에 작동하는 자본주의 구조를 드러낸 작품이다.

총 세개의 캔버스에 "조니가 집을 삽니다(Johnny Buys House)" 라는 문구가 등장하는데 이 문구는 전단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제목 <명백한 운명>은 미국이 토착민의 땅을 정복하는 것을 정당화했던 19세기의 이념으로, 작가는 이를 오늘날 도시의
부동산 투기 현실에 연결한다.

<무제(상업포스터)>
작가는 자신이 성장한 레이머트 파크에서 수집한 저소득층 흑인과 이민자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실제 전단지들을
작품의 배경 재료로 사용하였다.


작가는 수집한 전단지를 물에 불리고, 깎아내고,겹겹이 쌓고,찢는 과정을 통해 회화로 전환하였다.
콜라주로 완성된 작품은 추상적이면서도 전단지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표면은
도시의 분열과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시각화한다.(작품을 옆에서 보면 겹겹이 쌓인 전단지의 두께가 보인다.)

전시실을 들어서면서 부터 계속 들려오던 (잡음에 가까운)소리의 정체가 흘러 나오는 <스파이더맨>


브래드포드의 전시회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자세의 정석이다.
도대체 이게 뭐지? 자세히 몸을 기울여 들여다 보게 된다.

이 모습은 마치 코를 골며 세상 편하게 자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타오르는 피노키오> 작품은 검게 칠해진 신문지를 겹겹이 붙인 벽면과 미용실을 연상시키는 리놀륨 바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검게 칠해진 신문지는 흑인 남성성의 위선과 언론의 은폐를 상징한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관람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신발 사이즈> 연작은 일상적인 도시 이미지에 인종,계급,자기 표현의 역사가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드러낸다.
브래드포드의 작업에서 '신발'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화적 상징이다.


<그는 잿더미의 왕이 되기 위해서라도 나라가 타오르는 것을 볼 것이다>
여러개의 구체로 구성된 이 작품은, 종이로 만든 불탄 대륙과 바다를 통해 파편화된 세계의 모습을 시각화한다.
우리가 같은 행성에 살아도 결코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제목은 드라마 <<왕좌의 게임>> 대사를 인용하며,
파괴적 권력 욕망이 초래하는 사회적 붕괴와 정치적 몰락을 비판적으로 의미한다.



<핑크 레이디>는 마크 브래드포드의 <기차 시간표>연작의 최신작으로, 윌리엄 포그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품 제목은 죽은 뒤에도 장미빛 기억으로 남은 인물 '에밀리 그리어슨'을 가리킨다.


<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기차 시간표> 연작은 20세기 초 철도 시간표의 형식을 차용해, 미국 내 흑인들의 '대 이주'의 역사를 되짚는다.


<공기가 다 닳아 있었다>
작가는 실제 기차 출발 시간과 지명을 담은 시간표를 추상적으로 재구성하여, 불안정한 삶의 이동성과
그로부터 파생된 정체성의 흔들림을 시각적으로 담아낸다.


미국 최초의 퀴어 운동가이자 드래그 퀸(여장 남자)으로 알려진 '윌리엄 도어시 스완'의 몸짓에서 영감을 얻은 <폭풍이 몰려온다>는
국가의 탄압과 시대의 저항에 맞선 그의 삶은 사회 변두리에 놓인 소수자들의 삶을 대변한다.
(일곱 작품의 제목을 봐도 실제로 작품과 매치시키기는 역부족이었다.)

독립된 공간의 작품 <폭풍이 몰려온다>는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구상된 연작이다.
작가는 2005년 미국 남부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연구하며, '폭풍'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힘과 미숙했던
정부의 피해 복구과정에서 드러난 소외된 삶에 주목하였다.


회화에 투영된 스완의 형상 위로 레퍼 케빈 제이지 프로디지의 곡 가사가 스텐실로 더해져
스완의 유령같은 형상 위에 리듬과 긴박감을 부여한다.(참 놀랍고 영악한 표현 방식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전시실 전체를 둘러싼 검은 벽지와 종이 표현을 산화시켜 만들어낸 금빛 무늬는 폭풍의 결을 상징한다.
(실제로 전시실 벽 전체를 작가가 직접 완성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나이아가라>는 작업실 이웃이었던 멜빈이 로스앤젤레스 거리를 걷는 뒷모습을 담은 영상 작업이다.
1965년 마릴린 먼로 주연의 동명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흑인 퀴어 남성의 시선에서 원작을 새롭게 연출하였다.
무음으로 구성된 이 영상은 위험한 도시 거리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분명 사운드가 없는 영상이지만 리트미컬하게 걷고 있는 뒷모습은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들으며
걷는 것 마냥 경쾌하고 유쾌하게 보였다.)
Epilogue: 마크 브래드포드 개인전 작품들은 내 삶의 영역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았다.
'엔드페이퍼' 연작을 보면서는 작가의 지루할 정도로 치밀하고 섬세한 테크닉에서 그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었고,
겹겹이 쌓아올린 전단지의 두께를 바라보며 사회 저소득층과 소수자들의 저항과 애환을 알아챌 수 밖에 없었다.
관람하고 나서 더 많은 생각이 드는 전시회였다.

전시실을 나와서 건물로 들어 설 때부터 시선을 끌던 창 밖으로 나섰다.

'올라퍼 엘리아슨'
Overdeepening/ 2018/ 스테인리스 스틸, LED
Overdeepening은 빙하 계곡 형성과정에서 빙하가 지표면을 기준보다 더 깊이 깎는 '과하각작용'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두 개의 반원형 고리는 각각 거울과 검은 수반에 반사되어 서로 얽혀있는 원형으로 완성된다. 상이 무한히 반복되며
깊어지는 공간적 환영을 통해 인식과 감각의 지평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담았다.


거울과 검은 수반 속에 주변 도시의 모습이 잠겼다.


때마침 점심시간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오가는 분주한 로비를 지나 '신용산역'으로 이동했다.



4호선 '신용산역' 2번 출입구로 나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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