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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겨울 한 가운데 방곡사 지장법회(주지스님 법문-- 지혜롭고 자유롭게 살기 위한 答) 본문

한 달에 한 번 방곡사로 가는 날, 날씨가 우리를 가로막을 수는 없다. 기온이 떨어진다고 해서 무겁도록 껴입지 않아도
새벽 공기는 위협적이지 않다. 간헐적 단식은 나 몰라라 하고 맛난 겉절이와 들기름을 병 채 들이붓고 구운 두부부침으로
배불리 아침을 먹었다. 보리화보살님의 공덕은 한이 없어라~~~

갑자기 창 밖을 붉게 물들이는 아침 해가 아무래도 수상하다 했더니 과하게 붉은색으로 선팅한 차 창 때문이었다.
마치 불콰하게 취한 듯한 아침 해라니...

여기저기에서 이고 지고 온 먹거리들이 손에 쥐어진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_()_

정시에 잘 도착해서 주차장에 내려서니 이 계절이라 더욱 청정한 기운이 걸음을 재촉한다.


_()()()_



주지스님의 지장예참이 끝나고 큰스님께 법문을 청했다.

穢跡大圓滿陀羅尼

항상 북적한 신중단 앞에 나도 오늘은 초를 밝혔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오후 시식을 하기 전에 주지스님께서 항상 짧은 법문을 하신다.
오늘 오신 분들이 충분히 가져가실 수 있게 2026년 달력을 준비해서 종무소에서 나눠드렸습니다.
물론 원하는 대로 가져갈 수 있게 더 많이 준비할 수도 있지만, 그거 불필요한 겁니다. 나만 꼭 필요해서 가져가면 되는데
그 이상을 가져가면 못 가져가시는 분들이 생겨요. 도반한테 주려고 챙기신 분들은 자진 반납해 주시면 좋겠습니다.(ㅋ~)
그리고 동짓날(22일) 방곡사에 안 오시니까 오늘 팥죽을 맛있게 끓여서 공양도 하고 한 통씩 나눠드리기도 했습니다.
사람은 '운명'이라는 게 있어요. 이것을 불교적으로 이야기하면 '인연'입니다. 운명의 '명'은 불교의 '인'과 같은 것이고 '운'은
불교의 '연'과 같은 겁니다. 여러분들은 '운명'을 믿으세요? 과연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요? '운명'을 바꾸려면 시간을 지배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럼 '운명'은 뭘까? '운'은 흐르는 것, 바뀌지만 '명'은 태어날 때 딱 갖고 태어나는 겁니다.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면 '명'은 각각 개인이 태어날 때 가지고 오는 생로병사라면 '운'은 멈춰있지 않고 흘러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 같은 겁니다. 불교의 '연'은 '운'과 같다 할 수 있는데, '연'은 '반연'이고 '인'이 나잖아. 인연, 나의 반연. 그렇기 때문에 그 '반연'은
흘러,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운명'은 좋은 운명이 있고 나쁜 운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개인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명, 생로병사와 같아서 바꿀 수도 없습니다.
노력하면 바뀌는 거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노력하는 그 자체도 타고 나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열심히 해서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얻고자 하는데...' 인간이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연에 속해 있는 것 중에 자유의사로 살 수 있는 것은 인간 밖에 없습니다. 자연은, 다 들 자연스럽게, 삼라만상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데, 인간만이 자유스럽게 살아. 자유롭게 산다고 이야기하지만 내 맘대로 원하는 대로 운명도 바꿔버리고 싶은 욕심입니다. 넘치는 겁니다. 경계를 넘어서는 거지. 지켜야지만 되는 그 선을
지키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운명'의 '운'은 내가 만나는 길과 같고 '명'은 굳이 비교한다면 자동차와 같아요. 자동차는 다양한 종류의 차들이 있지만 '명'은 처음부터 갖고 태어나서 절대 바뀌지 않아요. 그런데 '운'이라고 하는 '길'은 바뀌지요. 고속도로를 달릴 수도 있고, 비포장도로를 달릴 수도 있어서 고속도로를 달리면 탄탄대로 잘 달릴 수 있지만 목적지가 꼭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겁니다. 이게 '운'입니다. 비포장도로를 달린다고 해서 나쁜 목적지에 도착하는, 나쁜 '운'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목적지가 다르니까 누구는 고속도로만 달리고 누구는 비포장도로만 달리느냐? 안 그래요. '운'이라고 하는 것은 바뀌어요. 고속도로를 가다 보면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도 있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다가 고속도로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게 '운'입니다. '명'은 바꿀 수 없어도 '운'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 보면 '야! 내가 운이 좋았어. 운빨 좋아' 정확하게 말하면 개운開運한 거지. 운 때가 나와 딱 맞아떨어진 거지. 그것을 불교에서는 '시절인연이 도래되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그렇게 노력하지 않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정말 열심히 했지만 그 운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는 거야.
'아~ 그럼 노력할 필요 없겠네~? 이미 다 정해져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굳이 노력할 필요 있어?' '노력해도 소용없다. 나는 평생 이러고 살란다' 절망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아요. 노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으로 이야기하느냐. 지키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갖고 태어난 '명'이 정해져 있다 하더라도 자기 복을 지키는 것, 찾는 것, 기회가 왔을 때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거지.
여러분들이 하는 기도 있잖아요. 제 나이가 여기에서 제일 어리지만 노파심은 제일 많을 겁니다.(ㅋ~) 여러분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하느냐 하면, 기도는 생활이기 때문에 기도를 위한 기도를 하면 안 됩니다. 명상을 위한 명상, 참선을 위한 참선을 하시면 안 된다는 겁니다. 기도를 도구, 수단으로 생각하지만 도구는 사용하고 나면 내려놔요. 기도 자체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인간이 살면서 지치고 힘든 것들을 스스로 치유하는 거야. 기도, 참선, 명상, 마음공부를 통해서 내 자신이 나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시간이고 치유하는 시간입니다. 그냥 그렇게 하셔야 되는 겁니다... 어떤 목적 하에 뭔가 기도를 하고, 목적 하에 명상을 하고, 목적 하에 참선을 하고 , 목적 하에 마음공부를 하잖아요? 이렇게 이야기 듣는 순간을 지나 다 끝나고 법당을 나서면 내려놓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좋아서 하면 그렇지 않지요. 그거 할 때가 제일 좋아... 그거 할 때 정말 나인 것 같아... 그거 할 때만큼은 정말 행복해. 남들이 봤을 때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그때가 나는 제일 좋아. 내가 좋아서 하는 여러 가지 일이 있을 수 있잖아요.
마음공부라는 것도 그 자체가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시간인 것이고 기도, 명상을 통해서 내 자신 심신이 지치고 힘든 것을 회복하는 시간인 것이고 치유하는 시간이지. 그게 또한 기도예요. 기도한다고 해서 특별한 것이 있는 줄 알지만 없습니다. 뭐가 있어요? 깨닫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 것 같아요? 안 그래요~
우리가 사는 것은 누구나 다 원하는 것처럼 지혜롭게 자유롭게 살아야 돼요. 지혜롭게 살려고 하면 지금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을 이해하면 돼요.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지혜롭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사치. 정말 나 다운 삶, 자유롭고 지혜롭게 살려고 한다면 내 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해 이해해야만 되고 그것을 인정해야만 하는 겁니다. 인정하는 거 너무 힘들어... 나의 주관적인 것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전체성 가운데 각각의 개별성이 있지만 우리는 하나의 자연이 만든 거야.
이 지구라는 것이 탄생하기 전, 우주의 생명이 있어서 지구가 탄생했고 그 지구 안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인간이라는 형체가 생겨난 거야. 우리는 그 전체 생명 속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야. 티끌 같은 존재지. 나만의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에 속해있어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그런데 내 개별 속 어떤 마음 가짐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여러분 지나온 세월을 한번 뒤돌아 보세요. 이제 와서 보니까 그때가 보이는 겁니다. 그랬어... 그렇지... 그래서 그랬구나 이제 와서 아는 거야. 그때는 몰라요. 그래서 제 노파심이 자꾸 일어나는 이유가 그거예요.
종교나 철학적으로 얘기할 때 정신적인 것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만, 물질 자체가 정신을 이기는 법이 극히 힘들어요. 살아봐서 알잖아요? 물질의 힘이 정신을 이기기가 힘들다. 그러면 우리는 '내 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몸 나'로 살잖아요. 이것을 부인할 수 없어요. '내 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몸 나'로 살거든. 물질이 정신을 이겨야지만 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 힘들어. 나도 그렇게 살아 보려고 하고 스스로 가꿔야 되는데 안가~가지를 않아. '나는 물질로 그냥 살 거야!' 그런데 나이가 들어 뒤돌아 보면 후회만 남아요.
이게 제 노파심이에요.(ㅋ~) 이런 이야기하는 것도 되도록이면 여러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서 이 시간만이라도 스스로 내가 회복하고, 이 기도하는 시간만큼이라도 회복하고 스스로 치유가 된다고 하면, 좋더라... 재밌더라... 하고 났더니 몸과 마음이 맑아진 것 같더라... 그러면 나는 기도하고 맞는 거야. 집에 가서도 기도하세요.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좋은 옷을 한 벌 산 것과 같아요, 나한테 딱 맞는 옷을 하나 산 거지, 그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잖아요. 그것과 똑같단 말입니다. 그거 한다고 해서 운명이나 팔자가 바뀌지는 않아요.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운명이 바뀌지 않아요. '운명'은 태어날 때 정확히 말하면 입태(착상)한 순간에 정해지는 겁니다. 난 날짜보다 사실은 입태하는 순간에 그 사람의 '운명'이 탁 정해지는 거지요.
"아! 나의 것은 이만큼이구나" 노력은 뭐라고요? 이 그릇이 깨지지 않게 잘 지키는 겁니다. 내 복이 시기 거나 계기였어도 그것을 찾거나 지키는 것은 노력이 없으면 못 하는 겁니다. 지나가 버려요. 노력을 해야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거지. 아무것도 안 하면 그냥 거름뱅이처럼 살아야 돼요.
'운명'이라는 건 이미 정해져 있어서 더 욕심부릴 필요도 없습니다. 정해진대로 만족하시면 되는 겁니다.
나도 자연의 일부로 하나의 생명체로 태어나서 갈 때 또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영혼(정신적 세계)은 육체가 있어야지 존재할 수 있어요. 초가 있어야 촛불이 있어, 두 개(영육)는 각각 있다가도 초(육)가 없어지는 순간에 정신적인 것은 어딘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불가능해요. 항상 공존해요. 불교에서 '색수상행식'에서 '색'이 빠져나가면 '수상행식'이 각각 어딘가 있을 거야... 생각하겠지만, 있기는 어디 있어?
요지는, 지혜롭고 자유롭게 살자-- 지혜로운 것은 지금 나에게 펼쳐진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고,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뭐 더 이상 다를 게 있나요? 그 이상은 '각자의 몫'인 겁니다.
'운명'은 바뀌지 않습니다. '운'은 흘러요, 봄인 사람은 여름이 오니까, 봄은 씨앗을 뿌리는 계절이에요. 모든 생명이 싹트는 계절, 여름은 성장의 시기,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고 겨울은 휴지기예요. 가을에 씨를 뿌리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가 자신을 잘 몰라요. 내 삶의 지금이 봄인지 가을인지 모르고 씨를 뿌린다고... 그래서 안 되는 겁니다. 노력하시되 언제 어느 때 무엇을 해야 될지는 좀 지켜보고 스스로 생각해 봐야지 돼요. 그래서 나라는 개체, 나를 아는 게 그만큼 중요해요. 객관적으로 개별성의 나 스스로를 알아보자는 것이 불교입니다. 나를 알아보자. 여러분들 이름 다 있지만 그 이름이 나 아닙니다. 20대, 40대, 80대에도 같은 이름이지 이름을 바꾼다고 뭐가 달라집니까? 인정하시고 자유롭게 삶을 살며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고 한다면 이야기했듯이 명상이든, 참선이든, 기도가 되든 통틀어 마음공부를 생활(습관)처럼 하시면 됩니다. 하루에 단 5분만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 보시고, 나는 5분 동안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들리고 보였을 것이고, 냄새를 맡았을 것이고, 느꼈을 겁니다. 나는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보고 듣고 느꼈을 거야. _()()()_


오후 관음시식과 제이시계념불사.

시식 후에 큰스님께서 다시 법상에 앉으셨다. '내가 와? 법당에 다시 들왔나 카만 잔소리를 쫌 할라꼬...'
지난달과 이번 달에 걸쳐 나눠 주는 목걸이는 중국 여행을 가서도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없고 구화산에만 있는 목걸이라 주지스님이
구입해 오려면 엄청 힘듭니다. 그러니 골고루 받아야 이번 달에 못 온 사람이 다음 달에라도 받을 수 있는데, 한꺼번에 세 개 받은 사람도 있는 걸로 압니다.
우리가 관음시식할 때 보면 영가들에게 5여래를 모시면서 제일 첫째가 '나무다보여래'가 나오는데, 다보여래 부처님께 의지하고 귀의하고 의탁하려면 파재간탐을 해야 법재가 구족 합니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요. 스님들도 파재간탐을 못하면 도를 못 깨달아요. 간탐심을 깨 부셔야 법재(깨달음)에 구족 하다. 그런데 절에 맨달 다녀도 그거 하나 더 받을려고 여러 번 줄 서고... 그래서 뭐가 되겠어?
그래서 주지스님한테 '다시는 이런 선물하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스님들 절에 가서 배우는 '초발심자경문' 가운데 평등성중(平等性中) 무피차(無彼此)라 그러거든? 평등한 그 가운데 피차가 없어야 돼. 우리는 분명히 중생이 피차가 있거든? '피'는 나고 '차'는 상대야. 내가 있고 너가 있다는 말이야. 평등하면 피차가 없어요.
앞으로는 스님들이 나눠줄 때 자리에 앉아서 자기 차례가 되면 받고, 더 많이 욕심내지 말고, 내 보다는 상대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불자가 되면 참 좋겠다는 말을 하려고 법당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목걸이 속의 지장보살님은 중국 구화산에 있는 세계에서 제일 크고(약 100m 높이) 거룩하고 원만하게 조성된 지장보살님을
축소한 모양입니다.
右) 보석으로 쓸 수 없는 균열이 생긴 수정을 갈아 녹여서 색을 넣고 틀로 찍은 것입니다.
左) 중국에서 나오는 빨간 돌인데 (주사朱沙) 우리나라에서는 경면주사라고 하고,
귀신이 제일 싫어하는 주사로 잡귀나 액운을 막아준다는 부적을 쓰기도 합니다. -- 묘허큰스님 말씀 중에서 --

주지스님께서 넉넉히 준비해 두셨음에도 일찌감치 동이 난 방곡사 내년 달력.
스스로 큰스님께서 경계하신 '파재간탐'한 것은 아니지만 蓮智明 손에는 애초에 닿지도 않았다.
그런 나로 인해 누군가는 욕심을 채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일찌감치 지는 해가 드리운 그림자가 차지한 대웅전을 바라보며.

_()_

산문을 나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붉은 선팅 창 너머 거짓으로 만들어진 노을이 지고 있었다.

12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새벽에 집을 나설 때는 빈 손에 무거운 머리였는데, 가벼워진 머리에 두 손 무겁게 집으로 돌아왔다.
방곡사 가는 날은 빈 손과 빈 장바구니를 꼭 챙겨가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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