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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 본문
2015년 6월 12일 묘허큰스님과 함께 마애불순례.
가까운 곳으로 순례를 떠나는 날은 마음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
느즈막히 8시에 출발했지만 채 10시가 되기도 전에 충주 원평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서면서 멀리서 봐도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석불은 그 규모가 상당해 보인다.
저건 무슨 일일까?
한참만에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360년 된 충주시 보호수 느릅(시무)나무 파인 홈을 메우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충주 원평리 삼층석탑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5호
10시가 되자 대구 불광사 주지스님께서 예불을 시작하셨다.
공사 중이라 주변은 어수선했지만 공사 소음이 보태지진 않아서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축원...초여름 해볕이 뜨거워서
가방에 들어있던 양산과 우산이 다 나왔다.
일련비구니 공덕비
불교의 진리는 공간적으로 법계에 충만하고 시간적으로 고금에 끊임없다.
주덕 장륵에서 기미 7월 21일 출생한 일련一蓮스님은 전생의 불연으로 남달리 신심이 돈독하였으며,
20세에 운수행각을 이곳에 정착하여 중생구제를 목적으로 미륵존불 시봉에 종사하였다.
.....................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길다하듯 그 거룩한 업적과 꽃다운 이름을 58년 동안 오직 미륵존불에게
보시하면서 세수 78세로 화연을 마치니 때는 불기 2540년 3월21일 일이다.
다비를 모시니 사리가 다수라 부도에 안치하여 신륵사 초대 주지로서 공덕을 기리고자 한다.
이 곳은 돌보는 절(미륵정사)이 있어도 절 소유가 아닙니다.
옛날에 절이 있다가 폐사가 된 곳에는 전부 문화재지정을 할 때 정부가 주위의 땅을 한꺼번에 매입해서
소유는 국가지만 관리는 충주시에서 하는 겁니다.
..........옆에 있는집에서 음식을 올리기도 하는데,그것은 공양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냥 밥 이지만 스님들이 4다라니를 하는데,제일 먼저 변식진언을 하면 음식이
변해서 불보살님들이 법식을 받을 수 있도록 ,음식이 변해서 법식이 됩니다. 올리는 물은 감로수
감로차가 되는 겁니다. 그냥 먹는 차는 차에 불과하지만 시감로수진언을 하면 물이 변해서 감로수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일체 모든 것을 다 씻어낼 수 있는 감로차를
마시는 거와 마찬가지야.
지금은 우리가 석불이라든가 좌불,마애불을 보면 아무런 색이 없지만, 고려 때 까지는 외부에 있는
석불이나 마애불,좌입불도 채색을 합니다. 그러다가 고려에서 이조로 넘어오면서 고려 문화는
불교문화였기 때문에 고려문화와 함께 불교문화를 말살하는 과정에서 불교를 탄압하는 억불숭유정책 탓에
재정적으로 약해져 채색도 못하고 그러다가 이조 중엽에 넘어오면서는 선불교가 성행을 하면서 그마저도
없어졌습니다. 이 불상은 채색했던 흔적이 입술과 목의 주름에 붉은 색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 불상은 다행히 노출된 발가락을 제외하고는 완벽히 보존되어 있지만,이조때 불교를 탄압하고
불상들을 없애기 위해서 이씨왕조가 날조해서 유포한 '애기를 못 가지는사람은 불상의 코를 떼서
삶아먹으면 득남한다'등의 소문으로 대부분 수난을 당했습니다.
보존상태가 정말 좋은 석불을 오랫만에 보는 것 같다.
큰스님의 설명대로 채색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입술과 목주름.
충주 원평리 석조여래입상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
이 석조여래상은 미래에 이 세상에 하생하여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불로 전하는데, 역사적으로 혼란한 시기마다
미륵신앙이 크게 유행하였다. 불상의 높이는 6.6m로 몸체의 표현이나 살집이 많은 얼굴,꼭다문 입술,두터운 옷 등의
표현이 고려시대에 충청.경기지방에서 유행했던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전하는 기록이 없어 불상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옆에 있는 삼층석탑과 부근에서 수습되는 기와등으로 추정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 까지
번창했던 절과 함께,석불은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예불을 마치고 각자 준비해 온 점심 공양을 하기로 했다.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 대구보살님들이 부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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