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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경기도 이천] 어석리 석불입상 본문

남산 그리고 마애불

[경기도 이천] 어석리 석불입상

lotusgm 2015. 7. 13. 14:31

 

 

 


 

2015년 7월11일 묘허큰스님과 떠나는 마애불순례.

서울 낮기온이 34도라고 피서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나선 길이었건만 창밖의 여름볕이 심상찮다.

생각보다 밀리는 길을 달려 예상 보다 30분 늦게 경기도 이천 어석리 마을길로 들어섰다.

 

 

 

 

버스에서 내려서 발을 내딛는 순간 숨이 턱턱 막히는 땡볕에 막막해졌다.

마을 입구 집들 사이에 깨끗하게 단장한 석불입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지방에서 올라와 이미 도착해 있던 일행들과 인사도 못하고 부랴부랴 예불 준비를 하기시작했다.

그늘없는 석불입상 앞에 두껑 열린 마지가 금방 바싹 말라가도록 정말 여름 땡볕에

일순간 정신이 없어져 버렸다.

 

 

 

 

뒷모습을 보면 두 덩어리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졌음이 확연히 보인다.

 

 

 

 

 


 

 


 

때마침 바람조차 한점없는 공간으로 들어앉은 석불입상 앞에서 묘허큰스님의 예불이 시작되었다.

 

 

 

 

분홍빛 양산 때문이었을까?

언뜻 미륵부처님의 새초롬한 미소를 만났다.

 

 

 

 

 


 

그동안의 마애불과 석불이 야산에 혹은 들판 한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어석리 석불입상으 마을 한가운데 집들 사이에 있는 모습이 굉장히 이채롭다.

 

 

 

 

옆집 담넘어 석불입상을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때마침 동네 할머니께서 기이한 광경을 만나기라도 한 듯 구경하며 지나가셨다.

 

 

 

 

 

이 부처님을 처음 조성할 때는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사방으로 4 주추가 남아있습니다.

4각으로 집이 지어져서 부처님을 둘러 비를 피하고 기도도 할 수 있도록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렇게 조성된 부처님은 조령산 세계사 미륵부처님과 거의 흡사합니다. 제일 위의 돌은 더러움이 타고

이끼가 끼었지만 얼굴이나 몸체는 깨끗한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팔각이든 원형이든 갓을 쓰고있는 부처님은 전부 미륵부처님 입니다. 미륵부처님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사바세계'이고 앞으로 오는 세계는 '용화세계' 예요. 당래 용화세계의 용화교주가

미륵부처님인데 지금은 어디 계시냐 하면 도솔천 내원궁에 미륵보살이라는 이름으로 계십니다.

그래서 도솔천이라고 하는 하늘세계는 내원궁과 외원궁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외원궁은 중생계

이고 내원궁은 보살계입니다. 인간세상에 오는 부처님들이 인간세상에 내려오기 전에는 도솔천 내원궁

보살로 계시다가 오시는데,석가모니 부처님은 도솔천 내원궁의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인도 카피라궁

24대 정반왕의 태자로 마야부인의 복중을 빌어 이 세상에 태어나셨어요. 그런데 미륵부처님은 지금

현재 미륵보살로 계시다가 얼마를 계시냐..도솔천 내원궁에 삼천년을 계셔요..삼천년을 계시면 도솔천

내원궁 불자로 삼천년이면 우리 인간세상 수치로 석가모니부처님이 열반하신 이후부터 56억 7천만년이

되어야 비로소 이세상에 오시는데 그때는 사람들이 점차 나이가 (지금 우리는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인수정명 8만4천세가 되요. 그렇게 사람들이 오래 살고 평화롭고 행복하고 즐거운 그런 세상에 인간

세상에 인간의 몸을 빌어 태어나 용화수라는 나무 밑에서 성불하여 세차례에 걸쳐 설법을 해요.

그래서 세상을 전부 제도하는 부처님이라고 해서 앞으로 출현하실 미륵부처님은 참해도인 용화교주

미륵부처님 입니다. 그때에 오실 때의 모습을 석가모니부처님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온다는 것을

'미륵 상생경 하생경'이라고 해서 미륵부처님에 대한 법문을 해놓으셨는데 근거해서 미륵부처님을

조성할 때는 항상 갓을 쓰고 계시는 겁니다.얼굴 모습도 세계사 미륵부처님과 똑 같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예전에 절이 있다가 폐사된 이런 곳은 그래도 사다라니를 하지않고 그냥 공양 올릴

지언정 밑에 신심있는 집을 만나서 공양 받고 관리를 받고있는 겁니다. 예전에는 불상 앞까지 집의

행랑채가 있었는 데 집을 다시 지을 때 불상이 있는 땅을 내어 놓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부지는

국가 소유이고 관리는 이천시로 되어 있습니다. 이천에는 영월암 석불도 있지만 암이 있는 곳은

일년에 몇번 씩이라도 스님들이 마지를 올립니다. 그런데 절이 없는 석불이나 마애불은 마지를 올릴

수가 없고 기껏 올린다면 스님들이 찾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무속신앙하는 사람들이 올리기 때문에

밥을 아무리 앞에 올려도 그것은 공양이 아닙니다. 부처님 내지 영가들은 음식을 공양하지 못하고

법식을 공양하므로 사다라니(변식진언,시감로수진언,일자수륜관진언,유해진언)를 해서음식을 법식으로

공양 올리기 때문에 정식으로 공양을 못받은 폐사된 자리에 남아계신 석불이나 마애불을 찾아 우리들이

공양을 올리게 되는 겁니다.

 

-묘허큰스님 법문 중에서-

 

 

 

 

가마솥 더위거나 말거나 큰스님의 가사장삼은 칼처럼 반듯해 보인다.

갑자기 두해전 육조혜능대사를 찾아 중국 광저우로 떠났던 성지순례 때의 일화가 생각났다.

그 곳 법당에서 조차 부처님 앞에서라면 어디가 되었든 가사장삼 수하시는 큰스님을 그분들도

알아봤는 지 큰스님과 마주치는 중국의 스님들도 깍듯이 예를 표하는 모습을 여러번 지켜 봤었다.

지금 우리들 앞장서 가고 계신 큰스님께서 정말 얼마나 크신 분인지 다시 한번 느끼고

가슴 속 깊이 뿌듯해 오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마음은 여전하고... 벅차다.

 

 

 

 

아무래도 큰스님께서는 한 치수 큰 고무신을 신으신 것 같다...

 

.

 

 


 

 

 


 

이천 어석리 석불입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어석리 564-1

야산을 등지고 마을 한가운데 있는 이 4.32m의 석불입상은 두 덩어리의 사각형의 석재로 구성되어있다.

이 미륵불상은 민머리로 그 위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상투모양의 육계가 표현되었고 머리에는 팔각의

보계를 쓰고있다. 이마에는 이 세상을 비추는 광명을 상징하는 백호가 있고 아래로 쳐진 눈썹과 눈꼬리가

긴 눈,짧지만 오똑한 코,얼굴에 비해 작은 입이 표현되었다. 손모양은 중생의 모든 불안을 없애주고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시무외여원인을 하고있으나 손모양이 약간 어색하다. 땅에 묻힌 발 아래에는 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무늬인 앙련으로 두성된 연화좌대가 남아있다. 불상의 네 귀퉁이에 높직한 선돌이 있어 본래

전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석불은 두 덩어리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고려시대에 경기,충청지방

에서 유행한 양식이다.

 

 

 

 

언제 누가 저렇게 한거야?

미륵부처님의 갓보다 더 거대한 갓이 ...모두들 한마디..옴마야 저게 머야?

 

 

 

 

 


 

 


 

 


 

석불입상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얕게 양각된 몸통은 꼭 마애불 같다.

일반적인 미륵불의 수인인 *'시무외여원인'

시무외여원인(여원인)- 왼손을 아래로 내려 역시 손가락들을 다 펴서 손바닥을 보이는 모양이다.

이는 중생들이 도움을 청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풀어주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배고파서 양식을 원하거나,병이 나서 약을 원하거나,무엇보다 참다운 진리를 원하거나

모두 다 배풀어 주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비의 덕을 상징한다.

 

 

 

 

처음 공양물을 올릴 때와 꼭같은 정성으로 주변 정리를 하고

 

 

 

 

깁스한 손으로.

 

 

 

 

 


 

마을의 배려로 마을회관에서 점심공양을 하기로 했다.

벼가 자라고있는 논을 바라보니 뿌옇다..뜨겁다..니들도 수고가 만타..

 

 

 

 

 


 

 


 

야튼..정말 부지런들 하시눼.

담부턴 수저통만 들고 와야할까 부다.ㅋ~

덕분에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큰스님의 망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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