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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새벽 선운사에서 極樂을 떠올리다... 본문

아름다운 산사

새벽 선운사에서 極樂을 떠올리다...

lotusgm 2024. 6. 5. 10:27

 

 

 

 

하루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이른 아침 '선운사' 참배를 하기로 했다.

숙소 앞 광장 선운산생태숲으로 들어 간다.(05시55분)

 

 

 

 

 

 

 

'선운사'로 가는 진입로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도솔산 선운사' 일주문.

도솔산은 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가

산 중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07시 아침 식사시간까지는 숙소로 돌아와야 해서 몸도 마음도 급한데

'도솔암' 으로 가는 도솔교를 바라보자니 짧고도 깊은 고민이 스쳐지나 간다.

 

 

 

 

 

 

 

 

 

선운사 부도전.

 

 

 

 

 

 

 

'선운사 백파율사비'는 조선시대 스님인 백파율사 긍선(1767~1852)을 기리기 위해 1858년에 세운 비석으로, 백파율사와 어울린 명필가이며 학자인 추사 김정희가 비석에 직접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 백파율사 긍선은 고창 무장 출신으로, 중종의 일곱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10대 손이다. 12세에 선운사에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조선 후기 불교를 중흥하려던 화엄종의 대가이다. 백파 60세(1826년) 때 선종 종파들의 특징을 자신의 논리로 밝힌 '선문수경'을 짓자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와 그와 친밀하고 불교에도 박식했던 추사는 편지로 백파와 논쟁하였다.

 

 

 

 

 

 

 

 

 

 

 

 

 

 

 

 

 

 

 

선운사 앞 극락교 아래로 흐르는 물길 속은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켜켜히 쌓인 깊이와 세월 탓에

검을대로 검은 물빛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 곳만의 반영을 숨키고 있다...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선운사 천왕문과 마주하고 있는 극락교.

 

 

 

가람을 수호하는 4대 천왕을 모신 '천왕문'

 

 

 

 

 

'천왕문'을 들어서면 보물 제2065호 선운사 '만세루' 

고려시대 절의 창건 당시부터 건립되어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으며, 현재도 700년이 된 두개의 아름드리 기둥이 남아있다. 뒷면이 대웅전과 마주 보며 개방된 것은 설법을 위한 강당의 기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범종각'

 

 

 

 

 

 

 

'향운전' 담장 밖 수곽.

 

 

 

 

 

석가모니가 영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모습을 재현한 선운사 '영산전'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삼존불상과 십육나한상을 안치하여 석가모니의 영산 법회 모습을 재현하였다.(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선운사 '명부전'은

원래의 지장보살을 봉안한 지장전과 시왕을 봉안한 시왕전이 별도로 있었던 것을 17세기 이 후에 두 전각을 결합하였다.

 

 

 

선운사 본전인 '대웅보전'은 신라 진흥왕 때 세운 것으로 전하며,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성종3년(1472)에 중건하여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가 광해군 5년(16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선운사 육층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든 고려시대 석탑으로, 원래는 9층이었으나 현재는 6층(높이6.2m)만 남아있다.

대부분 대웅전과 정면으로 마주하거나 양쪽으로 두 기의 탑을 세우는 것과 비교해 특이한 것 같다.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제1752호)의 형태는 각각 장대하고 웅장한 형태미를 보여주는데, 이런 장대하고 웅장한 형태미를 갖춘 대형 소조상들은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상, 귀신사 소조비로자나삼불상,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상 등 17세기 전반기 각지의 대표적인 사찰에서 조성되었다. 대형 소조불상의 조성 목적은 이전 시대와 달리 새로워진 불교계의 위상을 한껏 드러내고, 전란으로 소실된 불상을 빠른 시간 내에 재건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비로자나삼불좌상은 양대 전란 이후 재건 불사 과정과 당시 달라진 시대적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대변해 주는 매우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통칸으로 불벽을 한 줄로 세워 그 앞에 불단을 만들었으며, 중앙의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여 왼쪽에 아미타불과 오른쪽에 약사불을 모셨으며 삼존 사이에는 근래에 조성된 보살 입상을 협시로 세웠다. 삼존불상 뒤의 후불벽화는 1688년(숙종14)에 조성한 것으로, 중앙의 비로자나불회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회상도.약사회상도가 각각 자리잡고 있다.

 

 

 

 

 

천장에는 사실감이 돋보이는 운용문雲龍이 그려져 있고, 안쪽 천장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을 한 우물천장으로

장엄한데 비해 닫집은 단순한 모습이다.

 

 

 

신중단'

 

 

 

'관음전'

 

 

 

'관음전'의  최근에 조성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과 천수천안관세음탱화.

 

 

 

'지장보궁'

 

 

 

 

 

'지장보궁'에 봉안한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79호)

 

 

 

이 불상은 일제 강점기에 도난을 당하게 되는데 , 불상의 영험함으로 인해 다시 선운사로 모셔지게 되었다. 일본으로 도난당한 지장보살상은 불상 주인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 "나는 본래 고창 선운사에 있었다. 어서 그 곳으로 돌려 보내 달라."라고 하였으나 여러 주인을 거치면서도 누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중 불상 주인들이 하나같이 겪게 되는 불운이 계속되자 마지막으로 불상을 소유하고 있던 사람이 고창 경찰서에 신고하고 반환함으로써 선운사 지장보살상은 도난 당한지 2년 만에 선운사로 다시 돌아 오게 되었다. 사진은 1938년 11월 반환 당시를 기념하는 사진이다.

 

 

 

 

 

주어진 짧은 시간이 다하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 가는 길...

 

 

 

극락 極樂

 

명사[불교]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이며 인간 세계에서 서쪽으로 10만억 불토(佛土)를 지난 곳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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