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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가림성 가는 길 성흥산 대조사(보물 제217호 부여 대조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본문
차를 주차한 마을에서 15분여 오르막 포장길을 오다보면 대조사 입구 비석과 만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공주 마곡사 말사이다.
절 마당으로 내려가기 전 산 위의 산신각.
'명부전'
'명부전' 위로 우뚝 솟은 '미륵보살입상'
'종무소'
대조사 큰법당은 관세음보살님을 봉안한 '원통보전'이다.
대조사 삼층석탑.
'원통보전'에 봉안한 '목조보살좌상'(手印은 중품하생인)
'목조보살좌상' 후불탱화의 속 인물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게 되어있는 귀한 자료에 반가웠다.
'신중전' 탱화 속 인물을 적은 세세한 인물도가 신기하다.
"시왕도' 이런 자료를 어디서 볼 수 있을까 하는 감사한 생각도 들었다._()_
'원통보전' 옆에 '적멸보전'으로 가는 계단이 있는데,
'적멸보전'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창으로 '미륵보살입상'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전각이다.
부여 대조사 석조 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7호)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형식적인 면에서 유사하지만 관촉사 미륵보살입상에 비해 전체적인 비례가 좋고, 하나의 돌을 다듬어 조각하였다는 점과 부드럽게 외관을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방형(方形)의 보개와 원통형 보관, 5등신에 가까운 신체 비례, 부리부리한 눈, 넓은 하관 등을 통하여 볼 때,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모델로 하여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때마침 미륵불상 앞에 세 분이 계셨는데, 스님께서는 이렇게 귀한 미륵불상이 보물 지정에 그치고 있어서 안타까운
이유를 두 분에게 설명하시는 중이었다. 무례가 될 것 같아서 가까이 가지는 못했지만, 사진 찍는답시고 온 사람들이
미륵불상의 뒷편이나 위로 마구 올라가서 훼손을 일삼아대서 카메라 든 사람들 안 좋아하신다는 말씀이 내 귀에 까지 들려왔다. (물론 딱 찝어 나를 향해 하신 말씀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미륵불상 뒤편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철조망이라도 쳐진 듯 얼씬도 하지 못했다.
뭐...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니까...왜 내가 괜시리 죄송스러워지는지...
그 와중에, 미륵석불 바로 앞 바위 아래 위로 제석지위(帝釋之位), 천용지위(天龍之位)
라고 새겨진 명문이 사찰 입구의 사천왕문 격이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보살의 머리 위 부분과 원통형 보관(寶冠 )이 이어지는 부분이 보수되었으며,
왼쪽 어깨 일부가 부서져 보수한 흔적이 있다.
목에는 한 줄의 음각으로만 표현된 삼도(三道 : 세 개의 선)가 있다.
아래쪽의 보개 밑면에는 빗물이 얼굴로 타고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가장자리 부분을 돌아가면서 얕게 파내었다. 네 모서리에는 장식을 매달기 위해 뚫은 구멍이 남아 있으며, 지금도 동령(銅鈴)이 매달려 있다. 원통형 보관에는 특별한 문양이 확인되지 않는데,이들 보관과 보개는 보살상과 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원래부터 이러한 형태를 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옷주름들이 유려하지는 않지만 굳이 주름을 많이 표현한 것과 보살의 화려한 목걸이 장식,
아마도 연꽃을 들었던 것으로 보이는 손 모양 등이 여느 알고 있는 미륵보살상에 비해 유의미해 보인다.
(지극히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본 후 개인적인 생각)
미륵보살 앞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다양한 명문이 어떤 의미인지 언제 새겨진 것인지 궁금했지만
미륵보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미륵불상의 측면과 뒷면은 고려시대 전기에 충청도 지방에서 유행한 석조 불상과 같이
돌을 다듬어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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