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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한밤중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들만의 소동 본문

My story..

한밤중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들만의 소동

lotusgm 2025. 12. 17. 09:27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다시금 마스크 쓴 사람이 많은데, 딱 두 가지 이유이다. 감기에 안 걸리려고, 이미 걸린
감기 때문에 터져 나오는 기침이 눈치 보여서, 물론 나는 추워서 마스크를 쓴다.
진눈깨비가 뿌리는 저녁 시간은 맑은 날 보다 더 어둠이 짙어 집을 나서자니 귀찮기 짝이 없었다.
허지만 갑자기 옆지기가 기침을 하면서 드러누워 버렸으니 나까지 안 간다고 하기가 미안해서 부부 송년회를 나 혼자 갔다.
마을버스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 아니었다면 뭔 핑계를 대서라도 안 갔을 거다.
마을버스를 내려서자 이곳은 딴 세상이다.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사당역 12번 출구 파스텔시티 6층 '경복궁'
원래는 참석인원이 14명이었는데 (놀랍게도) 감기 환자들 포함 다섯 명이 불참하고 달랑 아홉 명.
 
 

 

고교 동창인 남자들은 수시로 만나고 와이프들은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이지만 워낙 오래된 친구들이다 보니
잠시 어색하고 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울린다.(그중에 한 명은 나와 고교 동창이라 니 내하는 사이)
이제 나이가 들어서 부어라 마셔라 알코올 없이 와인 한 병이 고작이다.
음식이 어떻더냐고 참석 못했던 옆지기가 나중에 물었는데... 그냥 배 고파서 먹는 거지 특별날 게 뭐 있어?
 
 

 

그리고 나와서 '아쉬우니 카페에라도 가볼까?' 하지만 주변의 너덧 군데 카페는 만원사례, 각자 흩어져서 기웃거려 봐도
빈틈이라고는 없어서 헤어지려는 찰나 옆자리와 무릎 맞대고 앉을 정도로 빼곡한 틈의 테이블 두 개를 차지하고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한 시간 정도 옆사람과 목이 쉬도록 데시벨을 올려야 하는 북새통에  지쳐서 인사를 주고받고 흩어졌다.
이로써 나는 올해 큰 송년회는 일찌감치 다 치렀다.
 
 
 

 
 

그날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갑자기 요란한 경고음을 울리며 '우리 아파트에 불이 났다'는 방송이 나왔다.
이건 실제상황이라는 말로 시작된 방송은, 한밤중이라는 것과 만약에 불이 나면 정작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고
간혹 벌건 대 낮에 사람도 없는 시간대에 자기네들끼리 해치우는 '연습상황'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라는 점에 당황했다.
불이 나면 불이 새나가지 않게 현관문도 열지 말고... 그럼 대피하지 말라는 말이야? 그런데 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고
계단으로 내려가란다. 이건 뭐 횡설수설...
하지만 무엇 보다 티브이 소리조차 없었던 오늘 우리 집에서 맞닥트린 이 상황에 아무런 생각이 안 나고, 제일 먼저 꽤 예민한 후각을
동원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창 밖의 건너편 아파트를 봐도 특이한 점은 없어 현관문을 열었더니, 앞 집의 네 식구가 하나같이
롱 패딩을 장착하고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밖으로 나가 보는 겁니다'
조금 전, 아니 지금도 계속 반복하고 있는 방송에서 말한 대로 불이 나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고 했기 때문인지 계단으로 내려갔다. 이렇게 되면 나도 상황이 뭐든 집을 벗어나는 제스처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집으로 들어와 겉옷을 걸치고 나서면서 (혹시나 위급한 상황인데 안 챙기고 나만 도망쳤다고 할까 봐) 이런 소란에도 기절 숙면 중인 옆지기를 소리쳐 부르다가 방문을 열고 깨웠지만 이 정도 되면 혹시 죽은 건가? 의심을 해도 될 정도, 최고 데시벨로 깨우니 정말 내 혼자 보기는 아깝게 사방으로 팔다리를 휘저으며 허둥지둥, 그 와중에 나는 먼저 내려와서 나중에 내려온 그의 모습을 보니 거의 넥타이만 매면 상갓집에 가도 될 정도로 차려입었더란 말이지. '머꼬?' 정말 그는 무슨 일인지 그때까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역시 나를 웃게 만드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뿐이다. 쿨럭~
웅성웅성 모인 우리 동 이웃들은 여기저기 기웃거릴 뿐 관리자들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고, 눈으로 살펴봐도 아파트에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옆 라인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걸로 봐서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 같다며... 잠시 후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오작동'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두들 계단으로 줄지어 이동해서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 건 AI 놈의 오작동'이란 데 생각이 미쳤다.
옆지기는 집으로 와서도 까치집 지은 머리로 멍~하니 그러고 아마도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룬 듯했다.
 
나는 화재가 난 집에서 대피를 못해 변을 당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유독가스에 중독이 된 것도 아니고 불이 났는데 어떻게 대피를 못했다는 거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번 경험을 비추어 보건대 잠귀가 어두운 사람은 바로 옆에서 불이 아니라 더 한 난리가 나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새고 한 밤중에 그 난리를 치도록 만들어 놓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 하나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지금까지 사과 방송조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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