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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내가 시종 울면서 본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본문


개봉 전 매스컴에서 홍보 영상을 보자마자 꼭 보고 싶은 영화라고 찜했던 '왕과 사는 남자'를
명절 연휴가 지난 오늘에 사 보러 갔다. 가끔이긴 하지만 동네 메가박스에서 내가 본 중 가장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의 인기를 짐작하게 해 주었다. (현재 관객수 400만을 넘어섰다)

고립무원 청령포에 유배 오는 양반을 유치하기 위한 촌장 엄흥도의 눈물 나는 로비 덕분에 드디어 청령포로 노산군 이홍위가 유배를 오던 날, 가마를 태운 뗏목이 바위에 걸리는 바람에 뗏목이 산산이 부서지면서 가마에 타고 있던 노산군도 물에 빠졌다.
울부짖으며 궁녀 매화가 찾는 '전하'는 물에 흠뻑 젖은 채 미동조차 않고 물속에 우뚝 서있었다.
왕이 쓰는 챙이 넓은 갓이 아닌 평민들이나 씀직한 검은 죽립(흑립) 위로부터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서있는 노산군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예의 그 눈빛을 보는 순간마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텅 빈 눈빛으로 유배 생활을 시작한 노산군이, 없는 살림에 해다 바치는 가난한 마을 사람들의 밥상을 손도 안 대고
물리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받아먹은 날부터 촌사람들과 노산군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관객에게
던져주는 감독 특유의 웃음 요소들로 잠시 평화의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왕과 사는 남자'를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때는 이름도 몰랐던- 순전히 박지훈 배우의 저 공허하면서도 처절한 눈빛에 끌렸기 때문이다.(단종을 연기해야 하는 부담감에 고사하던 배우를 삼고초려한 감독의 선택이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 아닐 것이다.)
사건에 휘말려 청령포를 떠나면서 노산군은 '하려고 하는 그 일을 하지 말라'고 말리는 촌장 엄흥도에게 이야기한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
'너는 어떠하냐?'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영화는 노산군 이홍위가 청령포에 유배되면서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굳이 '단종애사'를 연결 지어서 영화를 보고 역사적 의문까지
품는 것은 헛된 짓이다. 감독은 분명 단종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래서 구구절절 그 배경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 위에 실록에는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를 잘 꿰맞추어 놓은 새로운 역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노산군의 마지막 역시 <연려실기술>에 짧게 실린 단종의 마지막과 흡사하기는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의도가 다른 이야기 이기도 하다. 사실, 단종의 죽음은 어느 누구보다 다양한 說이 있지만 영화의 결말로서는 이보다 극적이고 뇌리에 길게 남을만한 명장면이 없다 싶을 만큼 잘 만들어진 마지막에는, 죽어도 그놈들 손에는 죽기 싫다는 노산군의 부탁을 받은 촌장 엄흥도가 있었다.
노산군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할 것이라는 엄명이 내려졌지만, 물에 떠 내려온 노산군의 시신을 껴안으며
엄흥도가 건넨 말은 '많이 추웠겠다. 따뜻한 곳으로 가자'였다.
실록에는 '엄흥도란 자가 노산군의 시신을 수습해 입관하고 곡을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pilogue

오늘(3월 4일) 드디어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 수 900만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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