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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경주 남산] '절골 약사여래좌상' 본문
용장사지로 올라가는 길에 이정표에도 없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멀리 떨어지지는 않은 곳이지만, 굳이 옆으로 비껴서 올라가는 사람이 별로 없기때문에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않은 곳이다.
숨겨진 길을 찾아서..
멀리 절터였음을 짐작케하는 돌축대가 보인다.
웅성웅성..멀리서 보기에도 특이하게 사람들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고있다.
절골 약사여래좌상.
이 곳은 용장계의 절골로 불려지는데 몇단으로 되어있는 돌축대로 보아 당시 웅장한 절터였음을 알 수 있다.
유물로는 법당 자리에 서있는 약사여래좌상과 석탑의 일부가 남아있다.
약사여래좌상(높이121㎝)의 머리는 찾지 못했으나 몸체는 비교적 잘 남아있다. 가사는 양어깨에 걸친
통견이며 옷주름은 얇고 아름다운데 왼손에는 약그릇을 들었으며 오른손은 항마촉지인(땅을 가리켜 마귀를
항복시키는 손모양)을 하고있다. 1940년 조사된 보고서에 의하면 이 불상 옆에 직사각형의 연화대좌가
묻혀있는데 복련 하대석 위에 직사각형의 중대석을 얹고 그 위에 앙련대석을 올렸다. 중대석의 사면에 새긴
힘찬 사천왕상은 아직도 땅 속에 묻혀있고,탑재의 반쪽은 100m 아래에 있다. 당시 이 불상 대좌 앞에서 출토된
소형 금동여래좌상(3.2㎝)은 지금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약사여래는 인간의 4가지 고통(생,노,병,사) 가운데 병을 주관하는 부처이다.
왼손은 약그릇을 들고 오른손 끝은 무릎 아래로 드리워져 있다. 그 의미는 질병의 마귀로 부터 항복을 받는 모습을
나타낸 여래상이다.
불두가 없는 모습이지만 참으로 원만하게 보이는 부처님이다.
불상의 모습은 불상이 조성될 당시의 나라형편과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불상의 몸통이 풍만하고 편안한 모습에서 그 당시 사람들의 여유있는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불두가 있던 자리에 심주를 세운 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통불이 아니라
몸통과 머리를 따로 조성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불상이란, 모습도 형체도 없는 영원히 변하지않는 밝은 빛이다.
불상은 그 빛을 형상화하여 인간의 모습을 한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 예배하기 위한 것이다.
불상 중에서 앉은 모습을 좌상, 서있는 모습을 입상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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