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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묘허스님과 동산스님의 사친서(辭親書) 본문

방곡사 가는 날

묘허스님과 동산스님의 사친서(辭親書)

lotusgm 2013. 12. 13. 11:14

 

 

 

                              

                                                                             - 사진은 2008년 11월 청도 대산사에서 연지명 찍음 -

 

"닦고 나면 안 닦을 때와 어떠하냐?" 또 똑같은 말씀이다. 굳이 제자를 당신께서 머무르시는

남장사에 불렀으면 내노라하는 선사들의 일화 한 토막이라도 들려줄 것이지 법당 마루 닦으라며

매일 똑같은 물음만 던진다, "예, 전보다 깨끗해 보입니다." "그래,깨끗하게 잘 닦아라."

 

3대독자 집안에서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던 묘허 스님.큰아버지 슬하에 아들이 없어 양자로들어갔고,

큰어머니를 따라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런데,중학교 1학년 즈음에 들어서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병명도 없고, 원인도 알 수 없으니 백약이 무효했고,교회에서 안수 기도까지 받아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다.

'불공드려 낳은 아들이 교회 다니니 아프지!'

그랬다. 묘허 스님 어머니는 득남불공을 드려 아들을 보았다. 어느 날,모친 꿈 속에 노스님이

아기를 안고 나타나 일렀다. '이 아들이 크면 돌려 달라.'  아들 점지해 준다는데 무슨 약속인들

못할까! '예,그리 하겠습니다.' 그러한 아들이 백부에게 양자로 들어가 병까지 얻었으니

모친의 상심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으리라.

'혹,절에 가면 호전될까?' 집을 나왔다. 발길이 닿은 곳은 남장사. 훗날 은사로 모실 화엄스님을

만난 것도 그 때였다. 산사에 있으면 왠지 편안했다. 고즈넉한 산사에 이는 바람 소리 한 점도

청명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큰어머니가 찾아와 데려갔다. 그러기를 세 차례. 그 사이 묘허 스님은

차도를 보였다. 이 병은 출가와 함께 씻은 듯 없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화엄스님이 이를

알아차렸다. '여기 있으면 또 큰어머니가 데려갈 게 분명하니 다른 절로 가 행자 생활 하거라.'

화엄 스님은 묘허 스님을 군위 압곡사로 보냈다.

은사 스님 부름 따라 남장사로 다시 왔는데 매일 법당 마루만 닦으라며 똑같은 질문만 던지니

답답할 노릇. 하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던 묘허 스님은 열심히 마루를 닦았다.

어느날,동산양개 스님이 속가 어머니에게 전한 편지 '사친서(辭親書)' 한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명리를 구하지도 선비가 되고자 하지도 않고 불법이 좋아 세속을 버렸으니,번뇌가 다할 때

근심의 불 꺼지고 은혜의 정 끊기는 곳에 애욕의 강물 마르리. 육근이 공해진 지혜가 향기

로운 바람에 실려와 한 생각 생기려하면 지혜의 힘이 잡아주네. 어머니께 아뢰오니, 슬퍼하며

기다리지 마시고 죽은 자식이라 없던 자식이라 여겨 주소서.'

이어진 동산 스님의 어머니 답장 한 대목이 묘허 스님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네가 다른 곳으로 떠난 뒤에는 밤낮으로 항상 슬픈 눈물을 흘리게 되었으니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구나. 이제 너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 맹세했으니 니 뜻대로 하기를 허락하노라.

다만 네가 목련존자가 되어 나를 구제하여 나를 윤회에서 해탈케 하고 나아가 부처님 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던 병의 원인은 그리움이었다. 친어머니

를 보고 싶었던 그 간절한 마음을 속으로 싹혀야만 했으니 온 몸이 아팠던 것이다. '어머니 은혜

갚아야 한다!' 그 순간,은사의 뜻도 헤아려졌다. '번뇌,근심의 불을 꺼주시려 그리 말씀 하셨구나!

이젠 내 마음을 닦아야 한다.' 대보리심을 향한 발심이 선 건 그 때였다.

 

불기2557 11월 27일 수요일 법보신문 9면

채한기 구법기행 *千江에서 달을 보다* 단양 방곡사 회주 묘허 스님 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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