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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경북 영양군] 영양의 유일한 문화재 연당리 석불좌상 본문
2015년 9월8일 (음력 7월 26일) 묘허큰스님과 함께 마애불순례를 가는 날.
경북 영양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산하가 아름답고 때마침 배경이 되어주는 가을 하늘은
숨막히게 아름답다..때로는 사랑스럽다..
갑자기 왕복 이차선 도로 위에 멈춰서길래 설마...했는 데 바로 길 건너 작은 전각이 보였다.
우리가 마지를 올리고 참배할 '영양 연당동 석불좌상' 이었다.
건너편 영당마을에서 정월 동제를 올리기도 하는 곳이라 금줄이 쳐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딱히 관리가 잘 되고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진않았던 게 좌상의 무릎에는 쥐x이 소복하고
사방에 거미줄 천지였다. ※다음번에는 간단한 청소도구라도 챙겨와야 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그래도 이렇게 전각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얼마나 댜행인지...
아니라면 비바람의 등쌀에 파불을 견딘 좌상이 너무나 서글퍼 보였으리라.
1980년 12월에 상량하고 전각을 세운 표시가 있다.
아마도 동제를 지낼 때 썼던 제기인 것 같다.
우리가 마애불을 다니다 보면 ...마애불이나 석불 주변에 절이 같이 있으면 공양 다 올리잖아요?
절 주변의 마애불은 관리를 하므로 훼손이 안되어 더 아름답고 좋은 마애불이 휠씬 더 많지만
그 곳은 절에서 마지를 올리는 곳이기 때문에 갈 필요가 없지요...이런 곳은 동네가 가까이 있어도
제사를 지내지 공양을 올릴 줄은 모르거든요? 제사는 동네 사람들 정성으로 하는 거지...왜 그러냐 하면
불공을 할 때도 처음에는 귀의한다고 해서 거불을 하고, 다라니로 청해 널리 불러 모신다는 보소청진언을 해요.
그다음에 고하는 유치가 있고, 청하는 청사(3청)가 있어요. 불상 같은데는 스님들도 각청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제불통청 속에는 다 들어가 있으니까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한테 청한다는 부를제諸,부처 불佛통청이라고도 하고
불법승 삼보를 함께 청한다고 해서 삼보통청이라고도 하는 겁니다. 청사를 하고 나면 다음에는 자리를 드려야 되요.
헌좌진언을 하고 다음에는 부처님을 청해 모셨으니 공양을 올리기 전에 우선 차대접을 합니다.
그리고 네가지 진언 다라니로 차려놓은 음식을 법식으로 만들어 보공양진언을 합니다. 공양 후에는 보회향
진언을 하고,공양 올린 사람들의 원을 이루어주십사 원성취진언,보궐진언,(부처님을 찬양하는 게송)*탄백을 합니다.
**탄백-부처님 마다 게송이 있는 데 주로 부처님들한테는 '천상천하무여불' 이거든?
하늘 위에나 하늘 아래나 부처님같은 존재없고,'시방세계역무비' 시방시계 어디를 다 둘러봐도 부처님과 견주어
비교할 존재는 없다. '세간소유아진견'세상 모두를 다 둘러보고 살펴봐도 '일체무유여불자'부처님같은 분은
한분도 계시지 아니한다.그럼 부처님이 가장 으뜸이고 어른이고 존경받는 존재라고 해서 인간세世,높은 존尊
세존이라고 하는 겁니다. ** 그 다음은 그리고나서 중생심에 축원을 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반야심경으로 회향한다고 주위의 호법신장들에게 반야심경을 설해줍니다.우리가 신중단 같은데는
신중님들 같은 경우에도 무작정 스님들이 절을 안하기도 하지만 신중님 중에서도 가운데 계신 예적금강
같은 분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신장으로 몸을 나투신 겁니다. 계수예적금강부..금강
신장은 부처님의 화신이야.계수란 말은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올리고 절을 한다는 뜻이야.
예적 금강은 누구에게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하느냐..예측금강불에게..예적금강불이니까 금강신장들이야.
석가 화현이 금강신이기 때문에.석가로 화현해서 나툴 때는'삼두노목아여금'이라고 하거든? 잡귀들을 쫒아내고
나쁜 것들이 보면 겁이 나서 돌아가도록 얼굴은 세개에 눈은 아주 매부리 같은 무서운,이빨은 칼과 같은..
'팔비개집항마구'예적금강은 여덟개의 팔에 마구니를 항복받고 쫒아내고 타파하는 도구를 쥐고 있는 모습.
'독사영락요신비' 독사를 영락(목걸이 처럼 아름다운 장엄)처럼 목에 두르고 있고,'삼매화륜자수신'뒤에 불꽃이
활활 타는 배경을 하고..이런 신주를 설함으로써 나쁜 잡귀들은 범접하지 못하도록 '옴빌실구리 마하바라..'진언을 읽습니다.
그외에도 신중단은 상중하 일백사유..큰법당에는 신중단에 일백사유를 모시고 일백사유를 다 그릴 벽이 안되는
곳이면 39위를 모시고,39위도 안되면 ..39위 중에서도 상중하단으로 나뉘어 모십니다.
-묘허큰스님 법문 중에서 -
묘허큰스님의 축원.
우리나라 전체에서 전통사찰이 하나도 없는 고을이 바로 이 영양군 입니다.
여기는 아마도 정월에 동제를 모시는 모양입니다. 동네서 정성스럽게 제사를 올리기 전에 사람들이 출입을
금한다는 뜻으로 이렇게 금줄을 치는 겁니다. 그리고 이 건너편 동네처럼 예전 반촌(양반동네)이라는 곳에는
이씨조선 오백년에는 양반들이 성하던 곳에는 불교가 거진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폐사를 다 하거든?
우리나라 망한 절의 90%는 빈대 때문에 망했다고 말합니다. 빈대는 참말로빈대가 있어 스님들이 불쓰고 간
것이 아니라 이씨조선 오백년은 유생들이 스님들을 빈대처럼 괴롭혔다고 해서 스님들이 유생들을 빈대로
지칭한 겁니다.유생들 등쌀에 못살고 나간 절은 전부 빈대 때문에 나간 절이예요.ㅋㅋ~
결국은 영양에도 유생들이 득세한 곳이다 보니 전통사찰이 남아있지 않은 겁니다.
영양군에서는 불교와 연관된 문화재는 이 좌상이 유일한 곳입니다.
- 묘허큰스님 법문 중에서 -
영양 연당리 석불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111호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말에 조성된 것을 보이며,왼손에 둥근 약 항아리를 들고 있는 약사여래불로
대좌와 광배등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각에는 축원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 석불상의 양식이 지방화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조선시대를 거쳐오면서 숭유억불정책에 수모를 당한 석불은, 참 모진 훼손에도 이만큼으로
살아남았다. 이 역시 우리는 몰랐던 민족의 삶과 문화의 역사임을 이렇게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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