因緣

 

 

 

 

 

 

블로그를 더 이상 할 수 없으니 이전하라는 공고가 블로그를 열 때 마다 협박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자료을 보관하는 장소로 시작한 플래닛과 블로그에서 수많은 인연이 스쳐지나가고 내가 살아있는 한

지리멸렬하게 이어온 십수년의 기록이 혹시나 사라져 버릴까봐 노심초사 하면서 모두들 떠나버린 블로그에서 버티다가 이전을 결심하고, 며칠을 뒤져도 버릴 것이라고는 없으니 강제로 버려지는 것 중 지켜낼 것을 사수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욕심은 내지 말자.

허투루 할 수 없는 주옥같은 블친들과의 댓글까지 감당하려니 내 능력의 한계라 오랜 블친과의 방명록만이라도 건질까?

하루 종일 십년 넘어 쌓인 친구공개의 방명록을 전부 읽었다.

그리고 꼭 간직하고 싶은 因緣의 처음과 끝에 떠오르는 단 하나의 흔적만 남았다.

 

까마득히 오래 전 큰스님께서 환경이 안좋아진 똘똘한 형제와 부자의 인연을 맺으셨다. 형제는 너무나 잘 자라서 공무원이 되고 천문학 박사가 되어 큰스님의 자랑거리 중에서도 가장 큰 자랑거리로 자주 법문에도 등장했다.

명절이나 스님의 생신, 어버이날,초파일이 되면 잊지않고 스님을 챙기는 아들들에 나 역시 감동하면서 언젠가 한번은 방곡사에서 마주칠 수 있지않을까 하던 차에 방곡사 행사 중, 매달 방곡사 법회소식과 스님과의 전통순례를 포스팅하던 나를 천문학 박사인 작은 아들이 찾아왔다. 그렇게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스님에 대한 관심이라는 공통점으로 자주 블로그에 드나들면서 스님 근황을 알고 가기도 하고, 이런저런 소식도 주고 받는

방명록에 외국 출장지에서 자신이 하는 일, 힘든 일을 적어두고 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좋은 짝을 만나 결혼 한다는 소식, 얼마 후 예쁜 딸의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 등...2013년 6월부터 기록된 방명록은 꽤 다양하고 많은 양이었다.

2020년 5월 4일에 남긴 방명록에는 옴마가 돌아가신 소식을 늦게 알아서 미안하다고...지금은 힘들지만 점점 괜찮아 질거라는 위로와 진행해야 될 일들이 지연이 되어서 12월 말일 까지도 일하느라 바쁠 듯 하다는 얘기 끝에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산문이 닫힌 지 얼마만에 방곡사를 찾았을 때, 큰스님께서 법상에서 비보를 무심히 전하시고는 눈시울을 붉히셨다. 천문학 박사가 밤 사이에 세상을 떴다는 말씀이었는데 그 때부터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2020년 7월21일, 스님께서 연락을 받고 급하게 아들이 누워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보여줄 수 없다고...'아부지가 아들 얼굴도 못 보나?' 사정을 해도 부검을 마칠 때까지 보여줄 수 없다고...그 때를 떠올리시며 떨리는 큰스님 음성에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불과 한달 반 전에 소식을 전한 사람이 하룻 밤 사이에 그럴 수도 있나?

본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방명록에 달린 내 답글은 확인했을까? 그와의 무심한 일상 속 주옥같은 대화를 하나하나 골라서

저장한 후 티스토리로 이전했다.

 

'투반님...극락왕생 하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