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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식전 산책은 <장충단공원>에서 출발해서 <남산공원>으로 갔다. 본문

♡ 내가 사는 세상/道,城,島,山

특별한 식전 산책은 <장충단공원>에서 출발해서 <남산공원>으로 갔다.

lotusgm 2022. 12. 5. 13:55

 

 

 

 

 

 

남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네가지가 있는데 1, 내가 최애하는 남산의 가장 아름다운 뷰를 볼 수 있는 길로, 서울역이나 '숭례문'에서 출발해 힐튼호텔 뒤 '김구광장'을 지나는 길 2, 지하철 4호선 명동역에서 출발해 '서울 오르미'를 타거나 그 옆의 계단을 직접 걸어올라 보거나 '남산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가는 길  3,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에서 출발해 '남산골 한옥마을'을 경로해서 오르는 길 4, 지하철 3호선 동국대역에서 '장충단공원'을 통과해서 가는 길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동국대역 6번출구로 나와서 남산으로 오르는 길을 택했다.

 

 

 

1969년 9월18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장충단비'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장충단비의 '장충단 裝忠檀'이라는 글씨는 대한제국 제2대 황제인 순종이 황태자 시절에 쓴 전서篆書이다.

뒷면에는 당시 민영환 육군부장이 쓴 비문이 기록되어 있다.

 

'장충단'은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이 일어난 을미사변 때 장렬하게 순사한 시위대 연대장 홍계훈 등의 영환을 달래기 위해 고종이 1900년 9월 남소영(南小營,조선시대 한양 남소문) 옆에 있는 어영청의 분영에 세운 사당이다. 

사당 건립 후 매년 이 곳에서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으나 1910년 일제강점 이후 폐사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일제는 이곳 일대를 '장충단공원'이라 하여 벚나무를 심고 공원화 하였으며, 일본군 결사대로 전사한 육탄삼용사의 동상과 안중근의사에 의해 살해된 이토히로부미의 혼을 달래기 위한 박문사博文寺를 세웠다.

해방 후 육탄삼용사 동상과 박문사는 철거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장충단의 사당과 부속건물이 파괴되면서

'장충단비'만 남게 되었다.

 

 

 

 

1958년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철거해서 1965년에 이 곳으로 옮겨진 '수표교'

청계천을 가로질러 쌓은 돌다리로 물의 수위를 측정하던 관측기구인 수표水標를 세우면서 '수포교라 불렀다.

조선 초에 처음에는 토교나 목교로 지었다가 태종때 석교로 교체하였고, 1441년(세종23)에 다리 서쪽에 나무로 만든 측우기를 설치하였다가 성종 때 돌로 교체했다.

1760년(영조36)에는 교각에 글자를 새겨 네 단계로 물높이를 측정함으로써 다리 자체가 수량을 측정하는 수중주석표(水中柱石標)로 발전하였다. 수포교와 함께 있던 수표(보물838호)는 장충단까지 같이 왔다가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졌다.

 

 

 

 

청계천을 걸으면서 장충단공원의 '수포교'를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오늘에서 보게 되었다.

수백년 전에 개천의 수량을 기록하기 위해 만든 다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모습이 수려하다.

 

 

 

 

 

 

 

공원 가운데 잘 자리잡은 카페의 모습이 눈에 거슬리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동국대 건물 아래 게이트볼장.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협회가 1973년 10월3일 국민 성금 등으로 건립한 높이 4.5m의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유림은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게 되는데, 유림대표 137명이 서명한 이 장문의 글을 '파리장서'라고 부른다. '파리장서'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한 사실을 폭로하고,식민 통치의 폭력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통해 한국 국민 모두가 독립을 간절히 열망하고 있음을 국내외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

일본은 파리장서운동에 참가한 유림들을 체포.투옥하며 가혹하게 탄압하였으나, 오해려 이 운동으로 인해 유림이 독립운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원을 벗어나면 '동국대학교' 동문 건너편에 남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난다.

 

 

 

 

남산계단 길목에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외솔 최현배선생 기념비'가 있다.

 

 

 

 

 

 

 

331개의 계단 끝에 건강수명이 22분4초 늘어났다는 표시가 있다.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바닥에는 지난 가을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는 

남산둘레길 최고의 단풍나무 스팟이 있는 길과 만났다.

 

 

 

 

 

 

 

 

 

 

 

 

 

 

 

 

'남산둘레길'을 잘 걷다가 전에는 안보이던 진입로가 보이길래 들어서는 순간부터

돌아내려오지도 못하고 계단의 농간에 놀아나는 길이 시작되었다.

 

 

 

 

 

 

 

계단 뷰가 장난 아닌 곳이다.

외곽으로 돌아나가는 긴 길을 가로질러 계단을 만드는 건 무모한 낭비인 것 같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아니고 흐린 날씨 때문이다.

 

 

 

 

 

 

 

소나무생태숲길로 내려선다.

밤사이에 내린 눈 때문인지 습기 머금은 소나무숲이 오늘은 왠지 조금 음습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벗어나면 소박하지만 예쁜 풍경의 겨울 숲이 나타난다.

 

 

 

 

 

 

 

 

 

 

 

 

 

 

 

 

아직은 어려보이는 몸집이 작은 잉어들이 움직이지않고 가만히 떠있는 모습은 아마도

그들 나름의 차가운 물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이겠지?

 

 

 

 

 

 

 

경사도가 심한 도로를 걸어내려가느니 어떤 길일까? 궁금해 하던 '소월길'로 방향을 잡아본다.

 

 

 

 

 

 

 

 

 

 

이 길로 남산을 오르면 제대로 운동되겠다.ㅋ~

※나무 통로에 숨어있는 경사도 높은 계단길 주의.

 

 

 

 

길을 벗어나니 차로 지나간 기억 조차도 없는 차도 옆 길이다.

남산공원 15번 입구로 나와서 남산도서관 700m 지점.

 

 

 

 

 

 

 

'주한독일문화원'

 

 

 

 

 

 

 

 

 

 

다시 남산으로 들어와서 도서관 방향으로 간다.

오늘 저녁을 먹을 음식점이 있는 명동으로 가기 위해서 ...

 

 

 

 

1970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와 국민의 성금으로 일제강점기 민족정기를 탄압하던 조선신궁이 있던 서울 남산 현 위치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세월이 흘러 기념관이 노후해지고 협소해짐에 따라 2004년 (사)안중근의사숭모회와 광복회의 요청을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국가보훈처가 2010년 10월26일 새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모두들 계단에서 가위 바위 보도 하고 인증샷도 찍던데 나같은 사람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도서관 계단을 조심조심...길 아래로 내려간다.

 

 

 

 

'남산오르미 승강장'

 

 

 

 

오르미 옆 계단을 내려가면서 주변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지만 오늘은 '남산오르미'를 타고 내려간다.

 

 

 

 

 

 

 

막상 명동으로 들어서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40년을 서울에 살아도 이 즈음에 서울 명동을 나온 적이 있기는 했는지 잘 모르겠다는.ㅋ~

다행히 찜한 식당이 명동 입구라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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