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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에서 제일 오래된 고찰(古刹) 계명사(鷄鳴寺) 본문

♥ 그들이 사는 세상/極樂을 찾아 南京(난징)

난징에서 제일 오래된 고찰(古刹) 계명사(鷄鳴寺)

lotusgm 2024. 12. 14. 09:27

 

 

 

 

11월10일~ 13일(3박4일) 중국 난징으로의 성지순례:

보름도 남지 않은 여행 계획을 듣고 인원 마감이 될까봐 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신청을 했고,불과 며칠 전부터 무비자로 중국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여권 사본 보내고 여행비 입금하는 것으로 떠나는 날은 금방 다가와 비행기 타는 게 맞나? 스스로 궁금할 지경이었다. 탑승 3세간 전까지 공항에 오라는 문자 한통이 고작이라 굳이 3시간이나 여유를 둬야하나? 싶기도 했지만 새벽녘에 집 앞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니 큰스님만 계시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출국장으로 들어간 상황이었다.(물론 나는 약속된 시간에서 1분도 늦지않게 도착했었다.) 어차피 혼자 따로 발권해야하는 상황이라...그런데 카운터에는 꽤 많은 사람이 줄을 서있고 그날 따라 일처리가 늦기만 해서 서서히 조바심이 났다. 그렇게 한참을 소비하고 출국장으로 접근하는데 줄 끝이 안보인다. 수십년 동안 공항에서 본 사람 중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북세통을 이루고 있었다. 하...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시간을 볼 엄두가 안나고 이러다 비행기 놓치는 건 아닐까? 그래도 검색대를 통과하고 다리가 풀릴 정도로 피로가 엄습해서 결국 라운지로 들어가 한참을 앉아있다가 기운을 차린답시고 몇개 가져다 먹고 숨을 돌렸다. 물론 시간은 아직도 넉넉하지...

 

 

 

같이 여행 떠나는 구성원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탑승장 앞에서 비로소 얼굴을 마주했다.

아는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으니 낯 익히기도 전에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라운지에서 먹었지만 기내식을 또 챙겨먹었다.

 

 

 

난징은 2시간30분 정도 소요되는지라 뭐 한 것도 없는데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우리 비행기 그림자가 보이는 신기한...

 

 

 

 

 

나만 그런 느낌인가? 지나치게 딱딱하고 어색한 분위기의 입국장에서 우리나라라면 있을 수도 없는

느릿느릿한 일처리로 한참 걸려서 나왔다. 나중에 현지 가이드의 말을 빌자면 난징은 관광도시가 아니라

공업도시다 보니 일처리가 미흡한 경우가 꽤 있을 거라고...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4일 동안 타고 다닐 전세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내렸다.( 버스 내부가 너무 깔끔하고

고급스럽다했더니, 난징은 관광도시가 아니라 좋은 버스가 없어서 상해에서부터 5시간을 달려 왔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서고 보니 주변으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1,700년의 역사를 가진 난징에서 제일 오래된 

계명사는, 527년 양무제에 의해 동태사同泰寺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는데, 양무제는 굉장히 불교를 좋아하고 불심이 강한 황제로 유명했고 스스로 승복을 입고 절에서 며칠씩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그 때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출발해 광저우의 광효사, 육용사를 거쳐서  서역에서 어른스님 오셨다는 말을 듣고 이 곳의 양무제가 신하를 보내서 모셔오게 하고 동태사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양무제가 달마대사 앞에 '스님 저는 스님을 많이 출가시켜 공덕을 쌓고, 절에 보시도 많이 했으며 절도 많이 지었으니 제 공덕이 많이 크지 않습니까?' 하니 달마대사께서 '無功德이다' 한마디로 답하자  양무제는 자신이 원하던 답이 아니라 언잖았고, 달마대사가 보기에 양무제는 진정한 불자도 아닌 것을 파악한 후 소림사로 떠났다.는 일화가 있는 그 때의 '동태사'가 지금의 '계명사'이다.

 

 

 

입장료는 10위안.(10X200/원) 어디가 어딘지 그냥 인파에 밀려들어간다.

 

 

 

 

 

양무제 이후 주원장이 동태사를 확대하면서 '계명사'라고 이름을 바꾸어 현판은 견륭황제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계명사'는 1953년 부터 시작해서 점차적으로 하나하나 새로 복구하면서 44m 약사탑 역시 1990년에 새로 불사하였다. 예전의 오래된 동태사의 흔적에 복구된 고찰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도심의 좁은 땅에 들어선 전각들 지붕이 거의 이마를 맞대고 있는 형국이다.

 

 

 

 

 

계단을 올라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계명사 가장 가운데 우뚝선 '약사불탑' 앞의 전각은 '비로보전毘盧寶殿'

 

 

 

 

 

 

 

 

 

비로보전에 모신 청동비로자나불의 수인은 특이하게도 '권인'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비로자나불의 수인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곧추 세운 한쪽 검지를 다른 손으로 주먹 쥐듯이

감싼 모양의 '지권인'이 보통이지만 고려시대 이후에는 두 손을 서로 감싸 잡는 '권인'도 유행하였다.

 

 

 

 

 

 

 

 

 

南無消灾延壽藥師佛 (나무소재연수약사불): 재앙을 없애주고 수명을 연장하는 약사불께 귀의합니다.

'약사불탑藥師佛塔'이 있는 마당으로 올라간다.

 

 

 

 

 

 

 

 

 

 

 

 

 

 

 

 

 

 

 

 

 

 

 

'약사불탑'이 있는 마당의 긴 회랑에는 각자가 원하는 바를 찾아 발원하는 기도처가 있다.

 

 

 

本愿威力: 강한 힘(威力)을 기도하는 15번 기도처.

 

 

 

 

 

그리고 그들은 (약사불)탑돌이를 하기도 한다.

 

 

 

20위안의 보시금을 넣고 직접 종을 치는 사람도 있고...

 

 

 

 

 

 

 

'行應真如행응진여'

 

 

 

 

 

한 계단 더 올라간 곳의 '동불전銅佛殿'은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참배하는 곳으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인데 '절대 사진 촬영 불가'인 지 모르고 셔터를 눌렀더니 어디선가 득달같이 달려와서 뭐라고 하는 분위기로 봐서 바로 그 문제인 것 같았고 알아 들을 수 없는 그들의 언어지만 용하게 눈치챌 수 있었다. 삭제하라는 거였다. 뭐 그렇게 까지? 싶었지만 여기서 문제를 일으키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어 그들 앞에서 삭제 버튼 누르기를 확인시켜 줬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내가 셔터 두번을 눌렀던 모양이다. 한 장 남아있었다.^^;;;

 

 

 

 

 



'동불전' 앞은 그들이 좋아하는 향 연기가 자욱한, 내가 항상 몽환적이라고 표현하곤 하는 바로 그 분위기다.

너나 할 것없이 향을 피워 올리고 잠시나마 숙연하게 합장하고 눈을 감고...

 

 

 

'계명향해鷄鳴香海'라고 쓰인 패방 앞에 놓인 거대한 향로에 각자의 발원으로 피워 올린 향기가 진동한다.

 

 

 

우리의 현지 가이드가 마당 한켠에 있는 향을 홀수로 가져다가 피워도 된다고 하는 바람에 우리 팀들도, 

나도 모두 향 세 개씩 가지고 와서 불을 붙인다.

 

 

 

 

 

들어갔던 입구와는 다른 입구로 나와서 일행들을 기다리다가 '난징성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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