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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비도읍 중심이었던 '정림사지'와 국보 '정림사지오층석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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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사비도읍 중심이었던 '정림사지'와 국보 '정림사지오층석탑'

lotusgm 2025. 2. 27. 09:27

 
 
 
 

(2월15일 토요일)'공산성' 인근의 숙소에서 나와 아름다운 침엽수가 도열한 651번 지방로를 따라 부여에 들어섰다.
오전에 안개 조심하라는 예보를 들었는데 덕분에 안개가 내려앉은 금강 줄기 따라 풍경이 지루하지 않은 길이었다.
 
 

 

차에서 내려서고 보니 날이 너무나 차다. 장갑까지 끼고 둘둘 감고 나선다.(09시45분)
 
 

 

입구의 '정림사지박물관'은 '정림사지'를 먼저 들렀다가 나오면서 가 보기로 하고...
 
 

 

 
 

 
 

그동안 이 나이 때까지 책에서만 보고 알고있는정림사지,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다.
 
 

 

'백제시대 정림사지 유구복원도'
1979~1980년, 1983~1984년에 걸쳐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정림사지의 윤곽을 확인하였다.
정림사지의 주요 건물 배치는 남북을 기본축으로 하여 2개의 연못과 남문,중문,석탑,금당,강당지가
일직선상에 건립되어 있으며 건물들을 회랑으로 감싸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정림사지오층석탑(국보)은 익산 미륵사지석탑과 함께 현존하는 백제 석탑 중 하나로,중국 목조탑 양식을 백제 건축 기술로 번안해서 쉽게 변하지 않는 돌로 석탑을 제작하였다. 잘 다듬은 화강암 석재 149매를 짜 맞추어 올린 높이 8.9m의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적 양식으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강당에 전시되어 있는 자료 중에 오층석탑을 해부한 완벽한 상세도이다.
탑의 부분 명칭을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강당 옆의 서승방까지 길게 이어진 '서회랑'의 형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회랑'이 있는 건축물을 최고로 치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그 흔적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
 
 

 

'정림사지' 회랑지에는 백제와 고려시대 두 시기의 회랑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은 과거에 '평제탑(平濟塔)'이라 불렀는데, 백제 사비성을 침공한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탑의 1층 탑신에
승전기 공문인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을 새겨놓았기 때문이다.(탑신에 흔적이 보인다.)
이는 백제 왕조의 명운과 직결된 상징적인 공간에 정림사가 존재하였음을 시사하는 아픈 상처이다.
 
 

 

강당과 오층석탑 사이의 금당지(금당이 있던 자리).
 
 

 

강당의 옆모습. 강당 뒤에는 북승방北僧房이 있던 자리.
 
 

 

 
 

강당 앞에서 바라 본 금당지(금당이 있던 자리)와 오층석탑.
 
 

 

정림사의 강당 자리였던 곳에 봉안되어 있는 정림사지석조여래좌상(보물)의 머리와 보관(寶冠)은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훼손이 심해 세부적인 양식과 수인은 알아 볼 수 없지만 '지권인(智拳印:비로자나불의 수인)'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발견된 명문 기와를 통해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절을 고쳐 지을 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된다.
 
 

 

연화좌대는 얼기설기 조각을 꿰맞춘 상태이기는 하나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진 8각 대좌로
불상 보다 공들여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활짝 핀 연꽃 모양의 상대가 돋보인다.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된 강당에는 정림사지의 발굴 과정과 역사적인 자료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역사를 바꾼 기와 한 장-- 일제 강점기인 1942년 발굴 조사에서 '태평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 고려 현종(1028년) 정림사의 대장경을 모신 건물에 올린 기와)'라고 씌여진 명문기와가 출토되어,고려 현종 19년(1028) 당시 정림사로 불리었음이 밝혀졌다. 그 이후로 이 절터는 정림사지로, 탑은 정림사지오층석탑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백제계 석탑 분포도'에 표기된 석탑 중에 '순수백제계석탑' 과 '백제계절충양식석탑'이
'신라계절충양식석탑'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등하게 많음을 알 수 있다.
 
 

 

 
 

 
 

 날씨가 추워도 너무 춥다. 하나 둘 보이던 관람객들은 부지런히 빠져나가고 정림사지 너른 들판에는

초조하게 한 사람을 바라보고 선 사람과 구석구석 쑤시고 다니느라 아랑곳않는 한 사람...딱 둘 뿐이었다.

 

 

 

금당과 일직선상으로 위치하고 있는 중문 앞 두 개의 연지蓮池는 발굴 당시 지면에서 4m를 넘는 깊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서 
유적에 대한 발굴 보다 상부에 퇴적된 토층을 제거하기 위한 인력이 많이 소비되었다고 한다.
1884년 발굴 조사 당시 연지 내부에서 탄화된 연꽃의 줄기와 잎 등이 확인되었다.
 
 

 

 
 

 
 

'정림사지'를 나와서 '정림사지박물관'으로 입장한다.
 
 

 

제1전시실 정림사지관
 
 

 

 
 

인피니티룸(Infinity Room) 전시실을 들어서는 순간, 우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손톱만한 작은 것 부터 정림사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담긴 유리 장식장이 가득한 전시실은 마치 SF영화 속 한장면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굴곡이 심해서 카메라에 담기지도 않고 눈으로만 대충 훑어봤다. 시도는 좋았으나 유물을 관람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피니티룸(Infinity Room)은 정림사지 출토 유물을 AR 콘텐츠를 통해 정보를 보고 진열장 조명을 활용한
복합 라이팅 소를 경험할 수 있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고, 보는 방법을 다양하게 선택해서
정보를 얻는데 서툰 나같은 사람은 도무지 어디서부터 무엇을 봐야 하는지 성가시다는 생각이 드는 전시 방법이었다.
 
 

 

 
 

 
 

알고 싶은 정보를 위해 버튼을 누르고,버튼을 누르면 음악과 목소리로 정보를 재생하고 재현하는 바람에
전시실에는 다양한 음성과 음악으로 시끌시끌했다.
 
 

 

 
 

 
 

 
 

 
 

정림사지 복원 모형 위로 아름다운 사계가 펼쳐지는 맵핑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AR콘텐츠를 통해 정림사의 다양한 정보와 정림사를 수호하는 미니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고 한다. 신기하고 예쁜 풍경이긴 한데 즐기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통로의 '디지털 연못과 연꽃'을 지나 제2전시실 백제불교역사관으로 갔는데, 이 곳 역시 무엇을 봐야하는지
어떤 것이 전시물인지 분간이 안가는 어수선한 공간이었다.
 
 

 

2층의 전시는 전시 날짜가 휠씬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근본적으로 관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생기더라.
 
 

 

너무 전문적이고 생소한 물건이라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귀한 자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림사지'를 나와서 부지런히 '국립부여박물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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