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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문화大賞 본상에 빛나는 '국립부여박물관' 본문

여행가방

한국건축문화大賞 본상에 빛나는 '국립부여박물관'

lotusgm 2025. 3. 1. 09:30

 

 

 

 

'정림사지'를 나와서 다음으로 도착한 '국립부여박물관'은 토요일을 맞아서 관람객들이 너무 많은 탓에

빈 자리가 없어 주차장을 몇 바퀴나 돌고 돌았다.

 

 

 

'공연장' 앞은 '석조 옥외전시장'이라 석조물들이 자연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전시장으로 가는 길 양쪽의 유물들도 놓치기에는 아까운 보물들이다.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보물 제107호)는 고려시대에 보광사(고려 공민왕7년/1358),를 크게 일으킨

원명국사의 공적을 새긴 비이다.

 

 

 

'당유인원기공비'(보물 제21호)는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긴 하지만,

비문에는 의자왕과 태자 및 신하 700여 명이 당나라로 압송된 사실과 부흥운동의 주요 내용,폐허가 된 도성의 모습 등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다.

 

 

 

'동사리석탑'

 

 

'석조여래입상'은 부여 금성산의 '천황사'로 알려진 절터 부근에서 1933년에 발견되었다.

이러한 돌기둥 형태(석주형)의 석불은 고려전기에 충청.전라지역에서 유행하던 양식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예술의 전당이 떠오르는 외관의)'국립부여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어디서도 본 적없는 멋진 공간이 시선을 끈다. 둥근 공간 주변으로 4개의 전시실이 있다.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부여석조'(보물)는 '국립공주박물관' 정원에서도 봤던, 절에서 물을 저장하는 용도로 쓰였던 석조물이다.

원래 있던 장소가 왕궁터로 전해지고 있는데, 석조 표면에는 '정림사지오층석탑' 탑신에 새겨진 것과 같이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제 1전시실은 충청남도의 청동기시대부터 백제를 세우는데 밑받침이 되었던 마한까지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청동기 중기의 송국리식 토기.

 

 

 

기원전 3세기 경에는 기존의 송국리문화와 다른 문화가 유입되어 한국식 동검문화와 함께 발전하면서, 기원전 2세기 초에는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의 철기문화가 마한지역까지 파급된다.

 

 

 

철기의 보급과 함께 한반도에는 새로운 형태의 토기들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토기를 만들 때 몸통을 두드려 얇고 치밀하게 만드는 기법과 물레를 이용한 기법, 폐쇄된 상태의 가마로 높은 온도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기술 등이 도입되면서 가능해졌다.

 

 

 

제2전시실 사비백제와 백제금동대향로.

 

 

 

 

 

부여 군수리 출토 토제유물/ 백제/ 虎子와 변기 모양 토기.

 

 

 

굽다리바리와 등잔.

 

 

 

부여 구아리 출토 유물/ 연꽃무늬 수막새/ 백제

'정림사'가 새겨진 암키와.

 

 

 

 

 

정림사 가람배치도(추정)와 출토 유물.

 

 

 

사비 도읍 가운데 금성산성을 뒤로 두고 '정림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부여 능산리 고분 출토 유물/ 백제.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은 가장 오래된 사리장치로, 부여 능산리사지의 목탑 심초석 위에서 발견되었다.

감실 앞면 좌우에는 각각 '百濟昌王十三年太歲在 丁亥妹○公主供養舍利'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 백제 창왕 13년(567년)에 왕의 누이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한다는 내용이다. 

 

 

 

'백제금동대향로'가 전시되어있는 전시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인의 탁월한 예술 감각과 뛰어난 공예 기술,나아가 종교와 사상까지 담은 백제 문화의 정수이다.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부여군 능산리사지 발굴조사에서 발견되었다. 높이 61.8cm, 무게는 11.8kg이다.

 

 

 

 

 

 

 

향로 뚜껑 가장 윗부분의 날개치는 봉황 바로 아래에는 다섯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과 다양한 

모습의 신선,현실세계 동물과 상상의 동물 등이 표현되어 있다. 뚜껑의 아랫부분은 부드러운 능선이 겹겹히 쌓인

산모양으로 산 사이에 구멍을 뚫어 향 연기가 피어오르도록 만들었다. 몸체는 두꺼운 연꽃잎으로 장식하였는데

각각의 연꽃잎 위에 신령스러운 동물 스물 다섯마리와 신선 두 명이 함께 한다.

 

 

 

힘차게 용트림하는 용이 받치고 있는 모습의 향로 받침대.

 

 

 

 

 

부여 능산리절터 출토 금속공예품/ 백제

 

 

 

부여 능산리절터 출토 유물/ 백제.

 

 

 

금동광배(金銅光背)/ 백제/ 부여 능산리절터/ 1993년 발굴.

불상의 머리나 몸체 뒤쪽에 있는 원형 또는 배 모양의 장식물을 '광배'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몸에서 발사하는 진리와 지혜의 빛을 형상화 한 것이다.

부여 능산리절터에서 출토된 금동광배편으로 추정복원한 이미지의 크기는 지름이

약 1m에 달하는 것으로 원래의 광배와 그 앞의 불상은 거대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부여 능산리절터 출토 연꽃무늬 기와.

 

 

 

제3전시실은 백제의 불교문화.

백제인의 우수한 공예 제작 기술을 보여주는 '불상'과 세계적인 건축 감각을 자랑했던 '사찰'을 주제로 전시를 구성하였다.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보물)은 현재 남아있는 백제의 유일한 사면불상으로, 남면(제일 왼쪽)의 여래좌상을 중심으로 

3면에 여래입상이 새겨져 있다. (높이 3.1m/ 복제품)

 

 

 

 

 

서산마애삼존불(국보 제84호)/ 복제품.

 

 

 

태안마애삼존불(국보 제307호)/ 복제품.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백제 /부여 규암면.

 

 

 

 

 

금동광배/ 백제/ 부여 부소산성.

 

 

 

 

 

 

 

1942년 부소산사지에서는 여러 점의 치미가 출토되었는데, 1978년에 복원한 치미 외에도 2010년에 백제 사비기 침의 원형을 보여주고자 나머지 부분을 추정하여 복원하였다. 복원한 높이가 90cm를 넘는 새의 날개 모양으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치미를 통해 웅장하고 화려한 백제시대 사찰 건축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외리 문양전(外里 文樣塼): 부여 규암면 외리의 옛절터에서는 산수,산수봉황,연꽃도깨비,산수도깨비,용,봉황,구름,연꽃 등 여덟가지 무늬로 구성된 무늬 벽돌이 출토되었다. 나무로 만든 거푸집을 사용하여 여러가지 무늬를 새겨넣고 흙을 밀어넣어 찍은 다음 가마에서 구워 만들었다. 벽돌의 무늬는 이상적인 세계 그리고 상서로운 동물과 기운을 형상화 하거나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등을 닮고 있어 백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 삼국시대(백제 577년)/ 부여 왕흥사 목탑터/ 국보

청동제 사리함--은제 사리호--금제 사리병

정유년 2월15일 백제 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해 찰(절)을 세우는데 사리 2매를 묻으려 하자 신의 조화로 사리가 3매가 되었다.

 

 

 

 

 

왕흥사 사리공양구.

 

 

 

제4전시실은 기증으로 빛난 문화유산 사랑.

 

 

 

'국립부여박물관'의 기증자분들을 소개합니다.

충남대 박만식 명예교수를 비롯한 기증자 50여 명이 뜻을 모아 기증한 유물 820여 점을 전시하였다.

 

 

 

 

 

 

 

 

 

기증된 820여 점의 소장품 외에도 약 230여 점의 작품이 전시 되어 있다.

작품들이 너무 많고 하나하나 아름다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치고 있던 중에 옆지기가 이제 그만 가자고

부르러 와서야 정신을 차리고 전시실을 나왔다.

 

 

 

분청사기 연꽃 물고기 무늬병.

 

 

 

 

 

 

 

 

 

 

 

연꽃무늬 수막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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