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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언제나 오늘만 같아라. 방곡사 을사년 일년기도 회향하던 날(주지스님 법문-- 의미 지향적으로 사는 삶) 본문

(2월 7일 토요일) 또 밤사이에 기온이 떨어져서 기온이 영하 10도를 가리키는 새벽에 집을 나섰다.
정말 춥긴 한가 보다. 내 자리 옆의 차 창에 성애가 꼈다. 선혜지가 종류별로 꼼꼼히 챙긴 사탕 봉지를 주고받았다.

항상 그날이 제일 맛있는 보리화보살님의 아침 밥상에도 알게 모르게 봄 향기가 묻어왔다.
내 입에는 봄동이, 선월화보살님에게는 미역줄기가 제일 맛있다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먹었다.









뒷 산 봉우리에 뾰족하게 진신사리탑이 선명하다. 겨울이 지나고 꼭 한 번 친견하러 가리라 다짐해 본다.


을사년 일년기도를 회향하는 특별한 날.

'신중기도'

'칠성여래목각탱'
방곡사에 소장된 목조칠성여래설법상은 본존불 뒤에 장식하기 위해 조성된 목각탱으로 10매의 판목을 세로로 나란히 배치한 후,
상하좌우에서 각 1매의 목재로 고정시켜 틀을 만들어 화면을 제작하였다. 칠성불화를 목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현존하는 목각탱들이 부조와 투조를 병행하여 제작한 방식과는 달리 부조로만 제작되었다.
규모는 화면 157.5×113cm, 두께 6.3cm, 전체 186.5 ×142cm 규모이다.
이 목각탱은 화면중앙에 치성광여래를 놓고 그 좌⋅우측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협시로 배치하고 있다.
이 삼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7위의 칠원성군과 태상로군이 있고, 그 위로 7여래가 있는데 이 존상들은 수평으로 3단을 이룬다.
권속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옆으로 틀어 본존불을 향하도록 조각하였다.
조각기법에 투조 방식을 취하지 않았지만 정교하게 조각되어 입체감을 충분히 살리면서 칠성여래의 도상을 재현한 작품이다. 본존의 무릎에서 보이는 옷 주름 선과 칠원성군이 착용한 원유관 형태는 마치 그림으로 표현한 듯 정교하다. 이로 볼 때 방곡사 소장의 목각탱은 전문기술을 가진 당대에 뛰어난 불화장이거나 화승에 의해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목각탱은 후대에 조성된 다른 칠성여래 불화 제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유추된다.
2010년에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74호로 지정되었다. 방곡사 현지조사 당시에, 목각탱의 화면을 감싸고 있는
화판 외주 틀에서 현대적인 기법이 보인다고 하여 목각탱의 제작시기를 근대기의 소작으로 추정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문화재등급의 최하위단계라고 할 수 있는 문화재자료로 겨우 지정되었다.
자료지정 후 방곡사에서 목각탱의 보존을 위한 개금(改金)을 하면서 외주틀을 제거하자 화판의 우측면 하단에서
종서로 음각된 간기를 확인하였다. 화기에 乾隆二年歲在丁巳(건륭이년세재정사)라고 새겨져 있어
이 목각탱이 1737년(영조13)에 조성되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로써 화면에 직접 조성연대를 적시한 유일한 목각탱으로 문화재등급의 재심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방곡사의 목각탱은 우리나라에서 칠성여래를 주존으로 조각한 유일한 목각탱으로 18세기 초기의 불교사상과
민간신앙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하겠다. 이 목각탱은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건륭 2년이라는
조성의 절대연대가 확인되고 있으므로, 앞서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기타의 목각탱들과 대비할 때
문화재등급이 격상되어 보호되어야 할 성보문화재라고 하겠다
출처 : 동양일보(http://www.dynews.co.kr)
방곡사 칠성여래목각탱에 대해서
장준식 충청북도 문화재연구원 원장님이
2020년 7월 16일 자 동양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발췌했습니다.
우리 방곡사 칠성여래목각탱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것 같다.

방곡사 회주 묘허큰스님의 법문.

주지스님께서 나눠주신 삼재부.

점심 공양 후 시식 전에 짧은 주지스님의 법문 시간이 되었다.
갑자기 시장 분위기로 바뀌었어요. 그러지 마세요...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그게 뭐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어수선하게
내가 먼저 받아야 된다고 어르신 좌복 밟고... 이게 뭡니까 이게~ 웬일입니까 이게~ 그래요. 인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지요.
내 의지가 아니잖아요. 누가 시켜서 그러는 거잖아요? 아니에요?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지금 주지스님께서는 보살님들의 무질서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하시는 중이시다. 큰스님께서도 항상 간탐심을 깨부수어야 법재(깨달음)에 구족 하다 강조하시지만, 우리 보살들의 욕심은 끝이 없는 듯해서 부끄럽다.
어른스님을 처음 뵌 지 거의 50년이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른 스님을 정면에서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지는
불과 몇 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주지스님을 정면으로 찍는 일은 아직 내게도 어려운 일이라 자꾸 뒷모습에만
카메라를 들이대곤 한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회향날이고 시식하기 전에 잠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살아 오시면서 수많은 여행 다니셨고, 인생도 역시 마찬가지죠? 내가 운전해서 지금의 이 자리까지 왔지요? 보살님들 인생에 운전대를 스스로 잡았냐고 묻는 겁니다. 자, 지금까지 왔는데 보살님들 인생의 운전대를 보살님들이 잡고 여기까지 온 거 맞아요? 물론 이 자리까지는 각자가 내 인생의 운전대는 내가 운전해 오신 분도 계실 테고, 또는 뒷자리에 앉아서 오라는 대로 가라는 대로 또 살다 보니 누가 내 대신 운전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왜? 순간순간 너무 판단하고 결정하기가 선택하기가 두려워서 남한테 의탁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사막에 비유하기도 해요. 우리 인생에는 사막처럼 정해진 길이 없지요. 그래 내가 인생을 사막을 건너가듯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뒤를 돌아다보면 내가 지나온 길이 보여야만 되는데 안 보여요. 나는 온 길을 이정표 삼아서 한 번 뒤돌아 봤더니 내 걸어온 길이 없어, 안 보여. 내가 분명 운전해서 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운전을 하지 않고 동승해서 따라온 거야. 나는 내 자신이 어떤 목적지가 있고 나름대로의 소명도 있고 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알고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 보니까 모르겠어요.
양 떼는 앞만 보고 뛰는 습성이 있답니다. 그래서 앞에 있는 양이 먹이를 보고 뛰기 시작하면 주변의 양들은 같이 막 뛰어요.
그런데 분명 앞에 있는 양은 뛰는 목적이 있어요. 뒤 따르는 양들은 앞의 양이 뛰니까 자기도 뛰는 거야. 더 희한한 건 뭐냐 하면 그 대행을 이탈하지 않기 위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죽자 사자 뛴다는 겁니다. 먹이를 먹으러 가는 것인지 절벽을 향해 가는 것인지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고 뒤꽁무니만 보고 무조건 열심히 뛰어요. 흡사 우리네 인생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나는 나의 목적지가 정해져 있어서 그 목적지를 향해서 한발한발 내딛으며 지금까지 왔는지, 아니면 남들이 생각하는 남들의 기준, 남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 행복의 기준에 따라서 나도 그렇게 되리라고 그 뒤를 무작정 이탈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달려온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까 어? 바로 '아니에요, 저는 제 인생 운전대를 제가 잡고 살아왔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분이 잘 없어요. 삶의 기준과 행복, 성공, 나만의 성공이 있었어야 되는데 남들이 다 기준을 정해놓은 그 성공에 나도 끼어들어 동승해 죽자 사자 그 뒤꽁무니만 따라서 가 본 겁니다. 그래서 이 자리까지 와서 뒤를 돌아다보니까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 흔적이 없어요... 그럼 지금 남은 것은,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모래 한 톨을 잡았는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조금 남아 있어.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권력, 명예, 부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성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럼 과연 성공이라고 이야기하거나 내 인생에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정말 중요한 것은 다 빠져나가고, 이 세 가지가 중요하고 행복의 기준이라고 남들이 다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나도 뒤따라 그 자리에 와보니 그것이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아요. 정말 중요한 것은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가 버렸고, 지금 뒤돌아 보니까 지금 내 위치에서 뭐가 남아? 내가 빠졌어... 내가... 나라는 게 빠진 거야... 나. 그런 것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고 왜? 그 시절에는 힘든 시기였고 다들 열심히 살기 바쁜 시기였기 때문에 멈춰 서서 그런 생각을 한번 해보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어. 당장 사는 게 힘들었고 생계가 힘들었고 그러다 보니까 그냥 나름대로 살면서 지금까지 왔는데, 생각해 보니 나 자신의 존재가치와 소중하고 중요했던 것들이 빠져버린 겁니다. 그 소중하고 중요했던 것들이 뭘까요? 내 삶에 대한 의미적인 것들이지요. 삶에는 의미가 있어야 되잖아... 성공은 의미가 없어요. 성공은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디딤돌 같은 거지요. 그래서 성공 지향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지향적인 삶을 살아야지 되는데 의미를 뒤로 미뤄놓고 성공 지향적으로 살다 보면 지금에는 나라는 존재가 없는 겁니다.
공허하지? 뭔가 밀물처럼 싹 빠져나가고 나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뭔가 살아온 것이...내 자신이 빠진 것 같아. 그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 보니까 잊고 살았던 것들이 너무나 많아, 후회가 막심해... 다시 산다면 이렇게 안 살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미안하지만
다음 생에도 또 그렇게 산다는 거지. 알고 보면 여러분들의 의지가 아니었어 사실...
어느 보살님께 그런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요즘 젊은 사람들 사는 거 보면 너무 부럽기도 하고 그 정신을 나도 배워서 지금 보다는 더 열심히 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제가 그랬어 '보살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보살님도 그 나이 때 열심히 살았어. 젊을 때 열심히 살아왔고 보살님이 그때 선택했던 건 그게 최선이었던 겁니다' 그게 최선이었고, 열심히 살았고 노력하며 살았고, 앞만 보고 달렸던 거지. 그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그래서 보살님 그때 생각해서 그때 자기의 모습을 보고 애썼다고 이야기해 주고 수고했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부터나마 조금 알았다면 지금부터 꿈과 자기 자신의 소명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나머지 인생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남아 있다고 하면 그 순간까지 만이라도 의미 지향적으로 삶을 살아 보시면 더 좋지 않을까요?
의미 지향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디서 어떻게 살든지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한 발씩 걸어 나가는 겁니다. 그것이 의미 지향적인 삶입니다. 내 삶을 살아야지만 되는 것이지 남의 욕망을 나의 욕망인 줄 착각하고 따라가며 살면 안 되는 거야. 남의 욕망인데 그것이 내 욕망인 줄 착각을 하고 그 욕망을 쫓아 가면 안 된다는 거야.
여러분들 지금부터라도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서 주도적으로 내가 내 삶을 살아야만 되는 겁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각자의 소명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찾아서 나머지 삶, 여정도 내가 운전대를 잡고 가봐야지 되지 않을까?
여러분들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한 번 적어 보세요. 좋아하는 것을 많이 적는 사람은 행복지수가 높은 사람이고, 싫어하는 것을 많이 적는 사람은 행복지수가 낮은 사람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적을 때는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 볼 필요가 있어요. 그게 누구라고요? 그게 나야... 나를 알아야 될 거 아니야. 내가 누군지 몰라.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 제가 앞에 했던 이야기들을 받아들일 수있고 각자의 존재가치, 소명을 찾을 수 있는 겁니다.
그거 알자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 것이고,그런데 기도는 수단이지 기도가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 종교는 그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고 보살님들은 그 길을 따라서 가시는 것뿐이지 기도가 목적이 되면 안 돼요. 수단인 기도를 통해 자신의 소명과 존재가치를 찾아야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보살님들이 아~ 나라는 존재를 잘 알고, 나라는 존재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 그리고 나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는가? 그러다 보면 궁금한 것이 생기고 그 궁금증이 확장되어 나가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내 삶이 정말 풍요로워져요. 지금보다는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러면 내가 어떻게 되겠어? 成佛하는 거지...
여러분들에게 제가 지난 달에 드린 방곡사 발원문이 있습니다.
원만구족하고 원융무애하고 지공무사한 부처님
조화로운 대자연과 한 생명인 나는 지혜롭고 자유로운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다 함께 행복한 낙원을 위하여 아집 대신 양심을 차리고
나와 다른 삼라만상과 이해하고, 인정하여 자유로이 어울리며
유유자적 더 너그럽게 살겠습니다.
더 너그럽게 살겠습니다.
올해 병오년을 맞이해서 이런 발원문을 나 스스로 마음에 새겨두고 삶을 살면 어떨까 하고 여러분들에게 보내드렸습니다.
다시 한번 새겨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좀 드리고 싶었습니다.

을사년 마지막 천도재 시식을 마치고 일 년 동안 기도드린 영단의 위패를 떼어낸다.


떼어낸 위패와 다라니를 각자 나누어 들고 배송한다.




무작위로 배송하는 다라니 속에서 내 이름이 써진 다라니를 만나는 기회는 극히 드물다는 생각들을 하는데,
고맙게도 도반 관음행이 배송하는 다리니 묶음 속에서 내 이름이 써진 다라니를 발견했다.

'법성게'를 독송하며 소각장으로








을사년 일년기도 회향을 원만히 봉행하였다.

새해에 뵙겠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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