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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단양 방곡사 병오년 일년기도 입재(주지스님 법문-- 대립의 법칙과 공명의 법칙 ) 본문

(2026년 3월 8일, 음력 정월 스무날) 코 끝이 시리지만 올려다본 하늘은 유난시리 청명한 날.
휴일 정체 없이 이른 시간에 방곡사에 도착했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멀리서부터 얼굴 가득 미소 지으시며 마당 끝으로 나오시는 스님,
부산 구덕산 정수암에서 주지로 주석하시다가 지금은 파계사 성전암에서 수행하고 계시는 무아스님이시다.
몇 해 동안 입춘 때가 다가오면 예쁜 입춘방을 보내주곤 하셨기에 입춘 즈음에 무아스님 생각이 유난했었는데
막상 뵙고 나니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항상 무탈하시고 성불하시오소서._()()()_




개경게로 법회 시작.


그리고 묘허큰스님의 법문.


오전 법회를 마치며 주지스님께서 준비하신 세뱃돈 봉투를 나눠주셨다.


유난히 신중단 앞에 초 공양이 많은 날이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오후 시식 하기 전에 주지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여러분들, 옛날 동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라고 들어 보셨지요?
한 나라의 왕과 왕비가 정말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어렵게 공주를 얻었습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 나라에 사는 마녀 열 세명을 초청해서 잔치를 벌이기로 했는데 궁전 안에 금접시가 열두 개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마녀가 열 세명인데 열두 명만 초대를 해야 했습니다. 열세 번째 마녀가 마음이 상해서 잔칫날 와서 '이 공주가 열여섯 살이 되는 해에 물레 바늘에 찔려서 영원히 잠들 것이다'라는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왕이 온 나라에 있는 물레를 다 찾아서 모두 없앤 겁니다. 마녀가 저주를 했지만 물레만 없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온 나라의 물레를 모두 불태워 버리 게 됩니다. 하지만 그 후 공주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공주가 왕궁 안에 있는 다락방 깊은 곳에서 찾은 물레 바늘에 찔려서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거냐 하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거기에서 이야기하는 물레는 내가 불편해
하는 진실, 내가 항상 마음에 담아놨던 것, 잊고 싶은 것, 괴로운 것,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것들, 이런 것들을 물레처럼 내 무의식의 깊은 다락방 속에 꼭꼭 숨겨놨던 거지.
그 왕은 딸이 열여섯 살이 되어 물레 바늘에 찔리지 않기를 원했지만, 우리 자신들은 그 물레 바늘처럼 내 마음속에 불편했던 진실들, 숨기고 싶었던 것들, 불안했던 것들,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 등을 내 마음속 무의식 속에 꼭꼭 숨겨놨던 거지. 요게 우리의 삶이야... 그런 것들은 살면서 대상(나하고 상대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앞의 세상을 보면서 드러나게 됩니다. 세상은 내 마음의 거울입니다. 내 마음의 거울이야.내 마음을 비추는 게 세상이다 이겁니다. 상대도 역시 마찬가지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내가 건드려지면 화가 나요. 화가 난다는 것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물레처럼 숨겨놨던 것이 있는 겁니다. 그것을 나는 그림자라고 표현할게요. 빛과 어둠이 있다면 어둠의 부분이 있는 거지. 자기의 무의식에 감추려고 감춘 것이 아니라 자기의 무의식 속에 꼭꼭 숨겨져 있던 거야. 자기는 그것을 왕처럼 모든 물레를 다 태워 버렸다 생각하겠지만 그렇지가 않아, 그것은 항상 남아있어.
살다 보니까 상대가 무어라 얘기하느냐 하면 내 마음속에 건드렸던(다락방 속에 꼭꼭 숨겨놨던) 그 물레가 하나씩 건드려지는 거야.
건드려지면 어떻게 돼? 화를 내지... 내가 만약 건드려지는 것이 없다면 화를 내지 않겠지만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화를 내는 거야. 여러분들 살면서 뭐가 건드려졌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고, 짜증을 내는 것이고 불안이 드는 것이고, 두려움이 앞서는 겁니다.
그러면 이 그림자는 없앨 수 있을까? 네, 없습니다.
삶에는 규칙이 있어요. 이 세상에는 총 열두 가지의 규칙 중에서 오늘은 두 가지 규칙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대립의 법칙'과 '공명의 법칙'입니다. 삶에는 질서와 법칙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다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없앴다고 생각하고 불태워 버렸다고 생각하고 무시하고 사는데 안 그래요. 삶의 규칙도 잘 모르면서 삶에 뛰어 들어서 열심히 사는 겁니다. 나의 죄가 뭐냐 하면 열심히 산 죄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이 당장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서 축구를 한다고 생각해 봐, 축구의 규칙도 전혀 몰라, 하지만 들어가서 열심히 뛰어서 상대방의 공을 빼앗아 골인을 시켰는데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어서 노골을 선언해, 왜? 오프사이드야.(웃음)
선이 있어, 간격도 존재하고 선이 있지만 경기의 규칙을 모르니까 자기는 열심히 뛴 죄 밖에 없는 거지. 그런데 내가 넣은 골이 노골이 되어 버렸다고 자기의 무지를 생각하지 않고 심판에게 불평불만을 이야기해요.
그게 심판뿐이겠어요? 우리 삶에서는 심판이 아니라 배우자일 수도 있고, 직장 상사일 수도 있고, 사회의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거야. 그들의 잘못은 아니야, 세상 잘못이 아니라 자기가 규칙을 모르고 세상에 들어가 삶을 열심히 산 죄 밖에 없는 거야. 본인의 무지를 깨달아야지 되는데 본인의 무지는 깨닫지 못하고 세상을 탓하는 겁니다.
자식을 탓하고, 배우자를 탓하고, 직장 상사를 탓하고, 사회를 탓하고, 정치를 탓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빛이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 빛이 있는 곳에는 분명 어둠이 있습니다. 살아 있어서 들숨이 있으면 반드시 날숨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들숨만 들려고 해, 빛만을 좋아하고 어둠은 싫어해요. 가지려고만 하지 손을 벌려서 내놓지를 않으려고 해.
그게 우리의 삶이야. 그런데 모든 것들은 '대립'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대립' 단, 빛만이 그림자가 없어요. 빛 입자만이 그림자가 없이 단일성으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빛이 다가오는 우리 물질세계에서는 모든 것들에 그림자가 있습니다. 내가 회피하고 싶은 것, 두려운 것, 숨기고 싶은 것, 만나기 싫은 것들, 이것은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나의 왼발 오른발처럼 같이 가야 되는 거지요. 그러면 어떻게? 두 개가 '통합'해야지. 빛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도 인정해야 되는 거지. 어둠이라면 뭐겠어요? 나의 아킬레스건(약점), 나의 찌질함, 나의 분노, 나의 탐욕, 나의 오만, 나의 허영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지 됩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지켜보는 거지. 그 순간 그것은 힘을 잃게 되는 거고, 그런데 그것을 부인하면 내 무의식의 다락방에 꼭꼭 숨겨놓은 물레와 같은 겁니다. 나는 앞에서 없애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는 앞이 아닌 뒤에서 들어와 나의 운명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물레 바늘에 언젠가는 찔려요. 그게 우리들의 삶입니다. 이게 '대립의 법칙'입니다. 제가 만든 법칙이 아니라 이 법칙은 우주가 탄생하면서부터 시작해 있었던 법칙이야.
또 하나는 '공명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데, 내 마음속 내가 주파수를 맞추는 순간에 같이 '공명'해서 내가 원하는 것만 보고, 듣고, 느낄 수가 있는 것이 '공명의 법칙'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 부, 성공, 이 세 가지는 모두들 원하지요. 어떻게 하면 가지고 올 수 있을까? '공명'해야지. 주파수를 맞춰야지만 돼. 그럼 주파수는 어떻게 맞추어야 될까? 만약 사랑을 원하면 내가 사랑이 되어야지 됩니다. 꽃 향기를 풍길 때 차별을 두고 풍기지 않아요. 사랑도 마찬가지라 내가 사랑을 받고 싶다면 그냥 사랑 자체를, 부는 부자의 마음 가짐을 가져야만 되는 겁니다. 성공 또한 그냥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다가오는 모든 일,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냥 오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나와 '공명'되지 않은 것은 오지도 않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나에게 영향을 끼칠 수가 없어요. 만약 내 주변에 거짓말하는 사람이 많다면 내 무의식의 깊은 다락방에 거짓이 자리 잡고 있는 겁니다.
불편하지요 이런 이야기하면? 불편해도 어쩔 수 없어. 우리는 이런 진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고 그것을 들여다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오늘 이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런 일화가 있어, 어떤 거사님이 복권에 당첨시켜 달라고 부처님한테 3년을 빌었다는 거야. 그랬더니 3년 지난 어느 날, 저 허공에서 부처님 목소리가 들린 거야. '이 사람아 제발 부탁이니 복권부터 한 장 사거라' 3년을 빌었거든? 무슨 이야기야? 부자가 되고 싶으면 최소한 복권 한 장 사는 노력은 해야지 된다는 거야. 내가 부자의 마음, 부자에 맞는 행동, 내면에도 있지만 밖으로 행동도 내가 소원하는 것과 '공명'이 되어야 그것을 불러들여 올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들일 수도 없고, 그런 물질들이 나한테 다가오지도 않아요. 이치가 그런 겁니다. 이것은 질서이고 법칙이고 규칙이야. 우리는 그 안에서 그런 세계에서 사는 겁니다. 위와 아래, 안과 밖이 같아야 되는 겁니다. 위와 아래가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주의 섭리와 우리들의 마음, 행동과 같은 것이고, 안과 밖이 같다는 것은 내외가 통채로야지 다르면 안 돼. 안에는 그럴 수 있어도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본인만 알아, 하지만 드러내 놓고 본인이 알고 있다고 하고 드러낸다고 하면 우린 거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하는 의식, 의례가 왜 중요하냐 하면, 내가 무엇과 '공명'하느냐 내가 아침의 시작을 무엇과 시작하느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요? 저는 그러면 오늘부터 '시작은 전부'라고 하겠습니다. 시작이 반이 아닙니다. 왜 아닌 줄 아세요? 처음 쏜 화살이 빗나가면 아무리 화살이 멀리 날아간다고 해도 과녘을 맞추지 못해요. 아무리 내가 좋은 집을 지으려 하더라도 설계도 자체가 잘못되면 아무리 좋은 자재로 짓는다고 한들 그 집이 튼튼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들은 '시작이 반이 아니라 시작이 전부'입니다. 첫인상, 첫 미팅, 처음 가졌던 생각, 초발심, 그게 전부 다예요. 처음 시작이기 때문에 우리는 시작을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으로 시작하느냐에 따라서 나는 좋은 긍정적인(아까 얘기했던) 사랑, 부, 성공, 밝음, 따듯함 이런 것들과 '공명'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짜증이 올라왔다면 짜증과 '공명'을 했으니 하루가 끝까지 그렇게 가는 거야. 인생도 (긴 인생이지만) 바뀐다고. 그래서 무조건 그 바뀌는 시점을 모르고 열심히 뛰기만 하다가 차책골을 넣게 되어있어. 누가 가르쳐 줬으면 좋겠지만 아무도 그런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아. 스스로가 알아서 해야지.
어떻게 할 건데? 나는 무엇과 '공명'하며 살 것이며, 내 마음속에서 걸리는 것들이 무엇인가, 내 무의식의 다락방에 꼭꼭 숨겨놓은 것들은 무엇인가 그것을 들여다 보고, 나한테 오는 것들은 그냥 오는 것이 단 하나도 없어요. 와서 건드린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나한테 그런 것이 있는 거야.
여러분들도 마찬가지로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주인의 행세를 하고 주인의 모습으로 살고 싶으면 '통합'하고 받아들여야지 됩니다.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은 단 한 개도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면 시작, 언제 시작해야지 될까요? 우리의 의식은 항상 이 현재에 있어서, 아침에 조금 불편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바로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그것이 중요한 거지요. 우리 인생의 정원은 내가 가꾸고 사는 겁니다. 아무리 잘 가꾼다고 하더라도 잡초가 일어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받아들여야지 됩니다. 그런데 그 잡초도 저 대지의 생명력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받아들이고 살면 지금 보다는 훨씬 더 주인의 삶으로 살 수 있는 겁니다. 끌려다니는 노예의 삶이 아니고 앞에서 내가 인도하고 내가 갈길 가는 주인의 삶으로 살아야지.
오늘 '공명의 법칙' '대립의 법칙'을 이야기하면서 여러분들은 아, 그러면 기도도 역시 마찬가지로 내가 무엇하고 '공명'해야만 하는가? 말로만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분명히 내면에도 그런 마음 가짐을 가져야 되고 밖으로도 행동해야만 되는 겁니다.
그래야 '공명'해서 내가 가져올 수 있어요. 여러분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우주의 섭리가 그래.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소망하고 소원하는 것들을 우주가 가져다주는 방식이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들 모든 것들은 다 물질세계에서 물질로 다가옵니다. 마음먹기 달린 거예요.
나의 의식이 어떤 것인가, 나의 마음 가짐이 어떤 것인가, 믿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 보고 믿는 것은 다 믿을 수 있어. 보지 않고 믿어야지 그게 믿음 아니야? 보고 믿는 것을 누가 못 믿겠어? 보지 않고도 믿어야지. 누굴 믿어야 돼? 맞아... 나 자신을 믿어야지.
그리고 내 삶(내 인생)을 살아야지. 그래서 여러분들이 원하는 삶 살면서 '대립의 법칙' 빛에는 그림자가 항상 있고 들숨에는 날숨이 있고 좋은 일에는 분명히 안 좋은 일도 있다는 것들을 '통합'해서 알아야 됩니다. 완전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완전한 것은 이 전체가 함께 존재하는 겁니다. 전체 안에는 모든 '대립'이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한 가지만 원한다고 해서 절대 얻어질 수 없어요. 사랑, 부, 성공을 다 원하니까 오늘부터 그런 '공명' 그런 마음 가짐, 그런 행동으로 살면 본인들이 원하는 소원들은, 우주가, 이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물질로 다 가져다주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차이는 있습니다. 적게 가져다주기도 하고 많이 가져다주기도 하고 하지만 그건 내 몫입니다. _()()()_

오후 제이시 개념불사와 병오년 들어 첫 번째 시식.

다음 달에는 더 아름다워질 벚꽃길의 모습이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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