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3 | 4 | 5 | 6 | 7 |
| 8 | 9 | 10 | 11 | 12 | 13 | 14 |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 29 | 30 | 31 |
- 방곡사 무문관 두타선원
- 자동차로 유럽여행
- 해파랑길 770㎞ 이어걷기
- 묘허큰스님과 함께 전통사찰순례
- Heart
- 단양 방곡사
- 방곡사 주지 정봉스님
- 제주올레
- 방곡사 주지 법봉스님
- 경주 남산
- 마애불순례
- 묘허큰스님과 함께 마애불순례
- 묘허큰스님
- 단양 방곡사 회주 묘허큰스님
- 방곡사 스리랑카 성지순례
- 회주 묘허큰스님
- 음력 20일 방곡사 지장법회
- 묘허큰스님과 함께 암자순례
- 남해안길 2
- 하트
- 전통사찰순례
- 해파랑길 770㎞이어걷기
- 부산 구덕산 정수암 주지 무아스님
- 묘허큰스님 법문
- 방곡사 적멸보궁 진신사리탑
- 방곡사 두타선원
- 갈맷길
- 큰스님 법문
- 방곡사 회주 묘허큰스님
-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 방곡사
- Today
- Total
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조선 최대의 왕릉군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숭릉/ 혜릉/ 경릉/ 원릉) 본문

조선 최대의 왕릉군으로 알려진 '구리 동구릉'에 가기 위해 8호선 동구릉역에 하차에서 800m 정도 걸어서 동구릉 입구에 도착했다.


동구릉 매표소

매표소를 들어서서 먼저 오른편 안쪽의 동구릉 역사문화관에 들어가 보기로.

때마침 하루에 두번 있는 전시관 해설을 들으며 잠시 둘러 보았다.(09시 30분/ 14시)

무덤 앞에 놓인 상처럼 넓다란 석재인 혼유석은 무덤 주인이 나와서 노니는 곳이다. 건원릉 혼유석은 5개의 고석(북모양으로 생긴)이 받치고 있는데, 고석에는 도깨비처럼 생긴 나어두 무늬가 사방으로 새겨져 있다. 나어두는 무덤 주인을 나쁜 기운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상징으로 새기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검게 변하고 깨진 건원릉 혼유석과 고석은 보존처리를 마쳤다.
깨진 상태로 혼유석을 받치고 있던 고석 1기는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최대한 전통 방법대로 새로 만들어 옛 고석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 놓았다.(뒤에는 앞의 깨진 옛 고석을 복원한 새로운 고석의 모습)

왕릉의 문석인 : 관복을 입고 왕을 보좌하는 문인 모습의 석물.
무석인 : 갑옷을 입고 왕을 호위하는 무인 모습의 석물.
가운데 놓인 것은 건원릉(조선 1대 태조의 능) 억새의 실물.

조선왕릉 분포도.

조선왕릉은 조선(1392~1897)의 왕과 왕비 그리고 대한제국(1897~1910)의 황제와 황후 73명의 무덤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능은 모두 42기가 있으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동구릉은 '동쪽에 있는 9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검암산을 능을 보호하는 주산으로 하여, 400여 년에 걸쳐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를 모신 9기의 능이 검암산 산세를 따라 여러 언덕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왕릉 석물의 변화.

동구릉 9기의 왕릉을 빠짐없이 참배하기 위해 안내소에서 안내 리플렛을 챙겨서 출발했다.
이 곳의 홍살문은 왕릉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건축적 장치로 이곳을 지날 때는 몸과 마음가짐을 엄숙히 하고,
여기에 모셔진 분들에게 경건한 예를 갖추라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다.


재실은 평상시 관리들이 능역의 관리를 위해 근무하는 곳이며,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무르면서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원래는 각 능마다 재실이 있었지만 지금은 왕릉으로 가는 갈림길에 한 곳의 재실만 두고 있다.



아홉 왕릉의 출발은 왼쪽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숭릉으로 간다.

숭릉의 홍살문.

숭릉은 조선 18대 현종(1641~1674)과 명성왕후 김씨(1642~1684)의 능이다.
현종은 효종의 아들로 조선 역대 국왕 중 유일하게 외국(청나라 심양)에서 태어났다.
왕위에 오른 후 함경도 산악지대를 개척하고 호남지역에 대동법을 실시하였다.

답도 끝에서 바라보면 정자각 뒷편으로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두 봉분이 나란히 보인다.


왼쪽은 제향시 향과 축문을 들고 들어가는 향로香路.
오른쪽은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의 길 어로御路.

능 앞의 정자각은 제향을 모시는 건물로 제향 공간의 중심이 되는 건축물이다.
숭릉의 정자각은 조선왕릉 정자각 중 유일하게 남은 팔작지붕의 건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2011년 12월 26일)

비각은 능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세워둔 곳이다.
숭릉의 비각.



숭릉의 능침(봉분)



정자각을 바라보며 왼편에는 제향에 올리는 음식을 준비하는 수라간,
오른편에는 능을 지키는 수복이 머무는 수복방이 있는데 수라간과 달리 외벽을 칠한 건물이다.


길 옆에 놓인 동구릉 석조 유구.

숭릉 연지는 1674년(숙종 즉위) 왕과 왕후의 능을 만들 때 조성한 연못이다.
네모난 형태에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방지원도형'으로 네모는 땅을,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하는 우주관과 자연관이 담겨있다.
동구릉 내 9기의 왕릉 가운데 유일한 연지이다.


혜릉 홍살문.


혜릉의 정자각.
혜릉은 조선 20대 경종의 첫번째 왕비 단의왕후 심씨(1686~1718)의 능이다. 단의왕후는 1696년(숙종 22년)에 왕세자빈이 되었으나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1718년(숙종 44년)에 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모셔졌다.이 후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단의왕후로 추존(세상을 떠난 후 신분 등을 높임)되고 능의 이름을 혜릉이라 하였다.

혜릉의 비각





경릉으로 가는 길.


경릉은 조선 24대 헌종(1827~1849)과 첫번째 왕후 효현왕후 김씨(1828~1843), 두번째 왕후 효정왕후 홍씨(1831~1904)의 능이다.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삼연릉(하나의 담장 안에 세 능을 나란히 배치)형태로 정자각 쪽에서 능을 바라 보았을 때, 왼쪽에 현종의 능, 가운데 효현왕후의 능, 오른쪽에 효정왕후의 능이 있다.

경릉의 비각



남양주 인근에 화재가 났는 안전 문자가 뜨고 저 멀리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상황이....

가까운 곳의 원릉에서도 보이는 검은 연기.


원릉의 비각에는 세 기의 비가 있다.

정순왕후/ 영조대왕/ 영종대왕
※영조는 세상을 떠난 후 첫 묘호(廟號)를 '영종'으로 하였다가 1890년(고종 27)에 묘호를 '영조'로 고침.


원릉은 조선 21대 영조(1694~1776)와 두번째 왕비 정순왕후 김씨(1745~1805)의 능이다.
영조는 1699년(숙종 25년)에 연잉군이 되었고 경종이 왕위에 오른 후 왕세제를 거쳐 왕위에 올랐다. 52년의 재위기간 동안 탕평책과 균역법 등을 실시하고 사치를 금했으며 상례제도를 정비하는 등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들 사도세자가 붕당정치로 희생되는 비운을 겪었다.


조선 최대의 왕릉군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 휘릉/ 건원릉/ 현릉)
우리와 가장 친숙하고 가장 흔한 바늘잎나무, 소나무(Korean red pine)는 옛 사람들은 흉년이 들어 먹을 거리가 모자라면 소나무 껍질을 벗겨먹고, 꽃가루를 털어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단다. 좋은
lotusgm.tistory.com
'여행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선 최대의 왕릉군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동구릉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 목릉/ 수릉) (0) | 2026.03.05 |
|---|---|
| 조선 최대의 왕릉군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 휘릉/ 건원릉/ 현릉) (0) | 2026.03.05 |
| 해저터널을 건너서 숙소까지 가는 길 (20) | 2026.01.29 |
| 통영 여행 첫 날은 '이순신공원' 바다 산책 길부터 걸어서 '통영 강구안' 까지. (11) | 2026.01.24 |
| 밤 마실 SEOUL WINTER FESTA 골라 보기 (삼성역~명동역~시청역) (28) | 2025.12.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