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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대의 왕릉군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동구릉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 목릉/ 수릉)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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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대의 왕릉군 세계문화유산 구리 동구릉(동구릉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 목릉/ 수릉)

lotusgm 2026. 3. 5. 09:30

 
 
 
 
 

목릉 역시 홍살문과 정자각이 마주하지 않고 여러 번 꺾어진 답도를 따라 정자각으로 간다.
 
 

 

 
 

목릉조선 14대 선조(1552~1608)와 첫번째 왕비 의인왕후 박씨(1555~1600), 두번째 왕비 인목왕후 김씨(1584~1632)의 능이다. 정자각 쪽에서 능을 바라 보았을 때 왼쪽 언덕에 선조의 능, 가운데 언덕에 의인왕후의 능, 오른쪽 언덕에 인목왕후의 능이 있다.
선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성과는 없었다. 그러나 선조 대에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나와 이 때를 '목릉성세(穆陵盛世)'라고 부르기도 한다. 
 
 

 

목릉 정자각은 원래 건원릉 서쪽에 있던 (현 헌종 경릉) 선조의 목릉이 1630년(인조 8)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면서 함께 옮겨졌다.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다포 형식(기둥 위쪽 외에 기둥 사이에도 처마의 무게를 바치는 부재인 공포를 배열한 건축 양식)의 건물로,
보물 지정되었다. (2011년 12월 26일) 정자각 바로 뒤에 보이는 것이 선조의 능이다.
 
 

 

인목왕후의 능
 
 

 

 
 

인목왕후 능 앞에서 바라보는 정자각과 선조의 능.
답도를 따라서 의인왕후 능으로.
 
 
 

 
 

의인왕후 능
 
 

 

 
 

 
 

 
 

 
 

목릉 비각
 
 

 

 
 

 
 

 
 

동구릉 입구 제일 아랫쪽에 있는 수릉
 
 
 

수릉황제로 추존된 문조(1809~1830)와 신정황후 조씨(1808~1890)의 능이다. 
문조는 세자 시절아버지 순조를 대신하여 정치를 하면서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22세로 세상을 떠나 시호를 효명세자라 하였다.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익종으로, 1899년(광무 3년)에 다시 문조익황제로 추존(사 후 지위가 높아짐)되었다.
 
 

 

 
 

일반적으로 왕릉은 정자각 쪽에서 능을 바라 보았을 때 왼쪽에 왕을, 오른쪽에 왕후를 모신다.
이와는 달리 수릉은 오른쪽에 왕을 모셨는데, 이는 세상을 떠났을 때 신분의 차이(왕세자와 대왕대비) 때문으로추측된다.
정자각 오른쪽 문조의 능.
 
 

 

 
 

 
 

수릉 비각
 
 

 

 
 

 
 

수릉 홍살문을 나서는데
 
 

 

관람 마감 시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들려온다. 
 
 

 

(14시 20분~17시 53분)
언젠가 조선 왕조의 릉을 전부 찾아가는 목표를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이제 두 곳만 가면 된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그 사람의 표정을 기억한다.
동구릉을 나오면서 드는 소회와 내가 그 사람을 기억한 것과는 분명 연관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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