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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70년 부처님 오신 날 방곡사 묘허큰스님 봉축 법문 본문

방곡사 가는 날

불기 2570년 부처님 오신 날 방곡사 묘허큰스님 봉축 법문

lotusgm 2026. 5. 26. 08:00

 
 
 
 
 

 
 

찰진심념가수지 (刹塵心念可數知)
대해중수가음진 (大海中水可飲盡)
허공가량풍가계 (虛空可量風可繫)
무능진설불공덕 (無能盡說佛功德)
 
-- 나무아미타불 --
 
부처님을 찬양하는 게송이 정말 많고, 대표적인 것이 300여 게송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로 찬불송이라고 합니다.
우리 법요집에 관음시식할 때 장엄염불을 보면 열 개 뽑아 놓은 것 중에 (네 개가 한 게송인데) 다섯 번째 나오는 게송입니다. 
찰진심념가수지 하고 대해중수가음진...티끌같이 많은 세계에 가득 차 있는 먼지 수도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는 재주가 있고,
저 큰 바다에 가득 차 있는 물을 다 들이마실 수 있는 재주가 있고,
허공가량풍가계...부는 바람을 붙잡아 매어 잡을 수 있는 재주가 있더라도, 무능진설불공덕...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이라도)
능히 부처님의 공덕을 다 말할 수 없다. 부처님의 공덕이 얼마나 많은가를 고조사님들이 찬양한 게송입니다.
 
오늘이 그런 부처님께서 오신 날입니다.
전에도 몇 번 이야기했지만 '부처님 오신 날'은 인도에서는 '석존절'(석씨 문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부처님)이라 하고
중국에 와서 공자가 탄생한 날을 '석존절'이라 그럽니다. 우리나라는 '성탄절'이라고 불리다가 8.15 해방이 되고 새 정부가 수립되면서 초대 이승만대통령이 국가공휴일을 재정할 때 기독교에서 크리스마스를 '성탄절'로 쓰게 된 겁니다. 
기독교 보다 오래된 역사를 지녀온 불교의 '부처님 오신 날'을 국가공휴일로 재정하지 못해 '사월 초팔일'로 부르다가 1968년쯤 되었을 때, 불교 측에서 대정부 상대로 소송을 해서 대법원에서 승소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우리 불교는 혼란기였습니다.
 

불교 역사 중 가장 수난의 시기가 바로 8.15 해방되고, 일본인들이 이 땅에 와서 한일합방을 하면서 '국가를 합방했으니 불교도 합방을 하자' 그래서 한국 불교를 일본화시키기 위해서 남차랑 총독이 그에 관한 법을 선포할 적에 한국 스님들도 전부 결혼을 하라 그랬습니다. 한국 불교를 일본 조동종과 병합시키기 위해서 사찰령을 선포했습니다.
한일합방이 될 때 우리나라에는 1.300개 사찰이 있었고 스님들은 7.000명 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36년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얼마나 악랄하게 스님들을 압박했느냐 하면, 8.15 해방이 되고 나서 잃었던 나라를 찾았으니 불교 기강도 바로잡기 위해서 뜻을 모은 청담스님, 동산스님, 효봉스님 (불교 정화 3대 기수)이 선학원에 모여서 1차 비구승대회를 열었는데, 200명 밖에 안 남았어요. 그래서 2차 승려대회를 다시 모집할 적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독신승은 다 모이라' 하니 400여 명 모였어요. 그분들이 안국동 선학원에서부터 현수막을 앞세우고 경무대(현 청와대)로 가던 중에 경무대 문 앞에서 이승만대통령을 만났어요. '산 중에서 수행하고 공부해야 할 스님들이 어찌 서울 시정으로 나와서 현수막을 앞 세우고 경무대까지 쳐들어 오고 있습니까?' '이제 잃었던 나라도 찾았으니 우리는 불교 기강을 바로잡는 정화를 하기 위해서 대통령과 면담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날 저녁에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합니다. '결혼하고 처자가 있는 스님들은 전통 사찰에서 다 물러가라'... 그렇지만 우리는 다 끌어 모아도 700명 밖에 안되고 절은 1.300개나 되고 그 사람들은 7.000명이야. 그 사람들에게는 이미 생활의 터전이 되어 버렸으니 차지하고 살고 있는 절에서 안 물러나지요. 그다음에는,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지만 그 사람들 몰아내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그 혼란한 가운데 1948년에 토지개혁이 일어나서 사찰 토지를 토지개혁에 다 뺏겨서 사찰 수입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1,300 사찰을 다 정화할 수 있도록 스님 숫자가 확보되고 정화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 6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아직 조계종 사찰을 가지고 태고종스님들이 강제 점령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통합종단으로 하면서 1968년에 정화가 끝나고 대정부 상대로 소송을 해서 대법원에서 승소하고 사월초파일이 공휴일로 제정되면서 공식명칭은 무엇으로 해야 되겠는가?
정화 때 앞장섰던 스님들이 모여서 의논할 결과 '부처님 오신 날'로 공식 재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 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왔기 때문에 제일 첫째, 생사가 불이하고, 불교에서는 나고 죽음이 둘이 아닙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것도 없고, 사의 근본인 생을 즐거워할 거 없어요. 죽기 위해 태어난 거여...윤회사상을 알고 보면 죽음은 물질적인 육체를 더 사용할 수 없어 벗어던지는 것이지 이 육체를 끌고 다니는 우리의 본래 모습, 참 나, 나의 주인공, 내 자성은 육체와 함께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새로운 육체를 받아 덮어쓰고 세상에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생은 사의 근본이고 사는 생의 근본이다... 생이 곧 死고 사가 곧 生이다. 그러니 생과 사는 둘이 아니다, 생과 사가 둘이 아니면 본래 없다는 거여...이 이치를 증득하고 깨달은 분이 바로 부처님이여...이 이치를 절대로 믿으면 생본무생이야. 태어나도 물질적인 육체가 부모에게서 얻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거여...부모님한테 얻은 거지. 그런데 왜 이 것을 얻어서 왔느냐? 전생에 지은 숙업 때문에  과보를 받기 위해서 과보 받을 몸뚱아리를 부모에게 받은 거야, 육체가 없으면 과보도 안 받아요. 그럼 과보가 뭐라? 준 거 받으러 오고 받은 거 주러 와서 한평생 우리가 주고받다가 생을 마치는 겁니다. 그중에 주고받을 게 많은 사람끼리 부부가 돼요. 부부간에 한평생 주고받다가 끝나는데, 물질적인 것도 있지만 말로 상대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하는 그 모습이 바로 전생의 내 모습입니다. 전생에 그렇게 줬기 때문에 반대로 와서 그렇게 되돌려 받는 겁니다. 남자들 요즘에 마누라한테 기죽고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 그 모습이 내來 생에 내 모습이라 나도 주면 되니까요(ㅋㅋ~)  좋은 상대 만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 복이고, 안 좋은 상대 만나는 그것도 내 업입니다. 누가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받는 것도 아니라, 내 인생은 내가 지어와서 내가 받는 거니까 행복하면 나에게 감사해야 되고 불행하면 나를 원망해야지 누구를 원망할 거 없어요, 우리는 자꾸 상대를 원망하잖아요. 
 
부처님은 단, 생사가 불이하고 생사가 본무하고, 생사가 본공한 이치를 증득하고 터득해서 남도 없고 죽음도 없고, 생이 곧 사의 근본이고 사가 곧 생의 근본이고 생과 사는 본래 없는데, 과보 받을 육체는 본래 내가 아닙니다. 이 육체를 말할 때 나를 먼저 붙이고 육체를 말하지요. 몸뚱아리 전체를 말할 때도 나를 먼저 붙여서 '내 몸'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몸'이지 나는 아니야, 이 몸은 부모에게 얻음과 동시에 지수화풍 4대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물질현상계에 있어서 '영원'은 절대 존재하지 아니하고 '생자는 필멸'입니다. 그 물질의 강도에 따라서 순서는 있지만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부처님은 생사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친 겁니다. 생사는 본래없다, 육체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생도 있고 사도 있다. 그 놈을 끌고 다니는 참 나는 생도 없고 사도 없고, 그래서 그것을 고조사님들은,
 
생시적적 불수생 ( 生時的的不隨生 ) : 날 때도 육체는 적적하게 태어났지만 나의 본래 모습은 생과 함께 하지 아니하였고,
사거당당불수사 (死去當當不隨死) : 죽을 때도 당당하여 생과 함께 태어나지 아니한 우리의 본래 모습은 사와 함께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더라.
생사거래무간섭 (生死去來無干涉) : 나고 죽고 오고 가는데 절대로 구애받지 아니하고,
정체당당재목전 ( 政體當當在目前) : 분명 떳떳 당당하게 목전에 성성적적하게 존재하는 참 나, 이것만 바로 보는 것을 견성見性이다 그래요.
 
내가 나를 몰라, 물질적인 나, 김 아무개 이 아무개 이름 붙은 이 몸뚱아리만 나라고 알지 , 이것은 '내 몸'이지 나는 아니야. 내가 따로 존재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부모님께 얻어서 내가 사용하고 있는 '내 몸'이지 '나'는 아니야. 그래서 항상 '나'를 먼저 붙이고 다음에 기관, 몸도 '내 몸' 머리도 '내 머리' 손도 '내 손' 입니다. 그 이전에 물질적인 눈으로는 볼 수없는 것은 마음의 눈을 떠서 마음으로써 마음을 바로 보는 것을 견성見性이라 그럽니다.
우리는 견성을 못한 중생이기 때문에 그런 이치를 모르지. 그 이치만 바로 알아 버리면 나날이 즐겁고, 죽어도 슬프지 아니하고, 태어나도 반갑지 안 해요. 전생을 망각하지 않고 오는 경우에는 자성을 증득하고 깨달아서 생사를 해탈해 생사를 자유자재할 수 있는데, 할 일이 있어서 오는 사람들은 전생을 안 잊어버리고 오고, 열달 동안 캄캄한 어머니 뱃 속에 갇혀있으면서 전생을 잊어 버리고 오는 것은 윤회전생이야. 그것은 업에 의해서 생사를 좌우한다고 업무생사 윤회전생이라고 하고, 깨달은 사람들이 인간세상에 할 일이 있어서 뜻에 따라 다시 오는 경우는 의意무생사, 뜻에 따라 마음대로 생사를 자유자재할 수있는 자유생사인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공부를 해야 됩니다. 열심히 자꾸 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몰라요. 
 
오늘 '부처님 오신 날' 이니까 서로 오늘 같은 날은 절대로 상대방이 잘못하는 것이 있어도 진심내고 성내지 말고, 상대는 상대지 나는 아니거든? 남 때문에 내가 진심내면 나만 손해지, 남 때문에 내가 손해볼 일 하나도 없잖아요? 즐거운 마음으로 공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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