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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음력 4월 스무날 방곡사 지장법회(주지스님 법문-- 불교에서 지향하는 것은 '어느 상황에서든 평온하라') 본문

방곡사 가는 날

음력 4월 스무날 방곡사 지장법회(주지스님 법문-- 불교에서 지향하는 것은 '어느 상황에서든 평온하라')

lotusgm 2026. 6. 10. 08:03

 
 
 
 
 

 멀리 옥지장전으로 올라가는 길이 온통 초록빛 터널이다.
 

 

금강역사 발아래에 옷자락을 부여잡고 있는 오색 병꽃만 아니라면 이 시기의 방곡사는 초여름 온통 초록 세상이다.
 

 

 그리고 바라보기만 해도 혀끝이 시려오는 보리똥(뜰보리수) 열매.
 
 
 

나뭇가지가 축축 쳐지도록 달린 빨갛게 익은 열매를 봉다리에 따서 담는 기대를 하고 왔는데
 아직 여물려면 한참으로 보이는 파란 열매에 실망이 여간 아니다.(대각성 보살은 열매 따 담을 커다란 통까지 들고 왔는데...)
 

 

 참 신비스러운 꽃이다. 한 가지에 오색의 꽃이 시간 차를 두고 다투어 피고 진다.
 

 

옥지장전 아래에서 늑장을 부리다가 급하게 가는데 유독 독성님 아래 보리똥 나무에는 익을 대로 익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망설일 게 뭐있어? 한 움큼 따서 달게 먹었다.
 

 

 
 

 
 

 
 

 보리똥 열매 다음으로 기대를 한 대웅전 앞의 보리수에 꽃 봉오리만 한 가득이다.
작년 보다 꽃들의 개화시기가 빨라서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한참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지장예불.
 
 
 

축원.
 
 
 

 묘허 큰스님 법문.
 
 
 

오늘은 점심 공양하러 내려갔더니 몇사람이나 웬일이냐고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특별히 설거지를 도왔다.
 
 
 

 
 

  
우리가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생각을 하는데, 오늘 아침에서부터 저녁때까지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중에서도 부정적인 것들, 안 좋았던 일들이 자꾸 떠올라요. 나 스스로 뭔가 반성이나 성찰이란 이유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데, 그게 정말 반성이 되고 성찰이 될까? 우리는 살면서 착하게 살아왔고 착하게 살기 위해 노력을 했으니 집에 가서 누워있으면 마음이 뿌듯해야 되는데 그 반대로 마음이 허전하거나 피로감이 쩌들 때가 더 많아요. 왜 그럴까? 나는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착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는데 뿌듯함이나 즐거움이 남아야 되잖아.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건 좋은데 미움받지 않으려고 착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겁니다. 나는 착한 사람인 척하거나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 가짐으로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오히려 그 자체가 나 자신에게는 독이 되는 겁니다. 

불교에서 지향하는 것은 착한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든지 평온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상황이 나한테 닥치든 간에 그 상황에서 나 자신이 평온하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착한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가 없지. 

사진사가 사진을 찍듯이 우리 마음도 이 사진기와 같아서 오늘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사진을 찍어. 그런데 마음이 괴로운 사람들이 안 좋은 것들을 찍는 습관을 제발 버려야 돼. 저녁에 가서 누우면 잠이 와야 되는데 스스로 반성을 하고 성찰한다고 그런 일들을 떠올리는 겁니다. 그리고 스스로 '나는 왜 이럴까' 자책에 빠진다는 거지. 정말 내가 잘못했을까?

우리는, 나 스스로도 그렇지만 타인으로 인해 내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아요.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할 때가 없이 계속해서 내 마음을 흔들어놔, 그중에 제일 많은 이야기들이 '모두'라는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다 너한테 그렇게 이야기해, 다들 그렇게는 안 살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가슴은 철렁 내려앉지요. 그렇지만 그 '모두'라는 실체가 사실은 '모두'와 그 이야기를 나눈 두 명, 기껏해야 서너 명, 알고 보니까 '모두'라고 이야기한 사람 한 명, 그런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 너무 상처받을 필요 없다는 겁니다.

 

얼마 전에 안거가 시작됐습니다. 아시죠? 안거가 시작되면 물론 스님들은 당연히 (일반 대중들도 마찬가지로 ) 90일 안거 기간 동안에는 스스로 마음을 다져 열심히 수행 정진하려고 합니다. 

제가 처음 하안거에 화암사에 가서 선방에 앉아 있는데 너무너무 힘들어서 한 달을 못 견디겠어요. 그래서 나는 선방이 체질에 안 맞나 보다, 화두는 두 번째치고 앉아있는 것 자체가 너무너무 힘들어, 그래서 여기서 이러고 있다가는 민폐만 끼칠 것 같으니 나가야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한 스님이 그런 제 모습을 보시고 다독이면서 '편하게 하라' 그러시더라고. 그 스님 말씀을 방편으로 삼아 지나다 보니까 조금 편해졌어, 두 달 정도 되니까 앉아있는 게 너무 좋아, 앉아 있으면 시간이 너무 잘 가, 너무 재밌어. 그렇게 안거를 지내고 갔어요. 그랬더니 내 마음속에 '저울'이 하나 생기더라고, 그래서 '비교'를 하기 시작해요. 남하고 나하고 비교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 자신이 조금 잘나 보이거나 무거워 보이면 오만해져서 상대방을 조금 우습게 알고, 내가 가볍거나 나보다 저 사람이 더 나으면 내가 조금 비굴해지고, 이런 게 생기더라고. 여러분들도 살면서 '비교'라는 것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하지요? 계속 '비교'란 것이 끊임없이 시소놀이처럼, 내가 저 사람보다 무겁고 잘난 것 같으면 오만해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비교해 봤더니 나 보다 저 사람이 잘난 것 같으면 비굴해져서 내 자신이 괴롭고, 이 '비교'라는 자체가 이겨도 지는 게임인 거예요. 그러니 '비교'라는 것 자체는 안 하는 게 좋은 거지. 사람이 백 명 있으면 백 명이 다 나를 좋아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물도 비난하는 사람이 있어요.  비난할 수 있지요. 그러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렇다고 '니가 나한테?'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 사람 전체를 내가 평가할 수는 없지만 다만,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도 나에 대한 지극히 작은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모르는 내 모습도 있고, 그 모습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처음에는 마음이 상할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아, 틀린 말은 아니네, 맞는 말이네' 하고 그 사람이 한 말만 생각하고 그 사람 전체를 두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거지. 상대방이 좋은 이야기를 해주면 '저건 배워야 되겠다' 생각하면 되고, 비난이나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저러지 말아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들은 달라져요. 왜 하느냐? 내 마음이 평온하려고 하는 거야, 어떤 상황이든지 내 자신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착하려고만 하면 안 됩니다. 불교는 착한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착하게 사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평온한 사람이 돼야지 되는 거야. 그래서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여야 될 것인가. 

우리가 살다 보면 화가 불쑥불쑥 일어날 때가 있어요. 가만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나 말 때문에 내가 화를 일으킨다고 하면 나한테 '왜?'라고 한번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상대방의 말을 듣고, 행동을 보고 내가 왜 화를 내야만 되는지 가만히 들여다 보면 내가 정해 놓은 규칙이 있습니다. 내가 정해 놓은 나만의 삶의 기준이 있어요. 거기서 벗어나면 화가 나는 거야, 내 규칙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거야. 상대방이 약속을 어기면 화가 나, 나의 삶의 질서와 규칙인데 그것을 상대방이 무시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내 자신이 화가 나는 거야. 그 화의 실체를 왜?라고 마음속으로 떠올리다가 실체가 드러나면 김이 빠져버려.

화를 억지로 누른다고 절대로 눌러지지 않아요. 실체를 알아서 김을 빼버려야 사그라 들고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뒤끝 작렬인 사람들 있지요? '너 한 번 걸리기만 해봐라. 가만 안 놔둔다'  꾹꾹 눌러 참을 게 아니라 그 실체를 스스로 파악해서 김을 빼버려 힘을 못 쓰게 만들어야지.(ㅋ~) 

 

우리는 살면서 질투라는 걸 합니다. 남이 잘되면 박수 치잖아요. '아 너 훌륭해, 너 잘했어, 참 대단하다' 그리고 뒤돌아 집에 가면 왠지 내 마음이 허전하거나 씁쓸하거나... 이 것은 내 자신이 잘못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인간이면 다 그렇습니다. 

질투는 왜 하느냐 하면, 내가 만약 마음에 부족한 게 없으면 질투가 일어나지 않아요. 질투가 일어나는 것은 내 마음 어딘가 부족한 게 있어 내 마음이 배고프구나 이렇게 알면 돼요. 내가 왜 배가 고플까? 질투가 일어나는 실체를 알자는 거지. 

 

우리가 불교에서 무심, 무아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무심은 무슨 얘기입니까? 마음이 없는 상태?

무심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심하게 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관심하게 살아라는 말이 아닙니다. 집착하지 않되 외면하지 않는 마음이 무심입니다.

집착을 하지 않아, 하지만 외면은 하지 말자는 거지. 누구한테 외면하지 말자고? 그 생각은 나 아닌, 우리 가족 아닌, 타인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제일 가까운 내 가족일 수 있다는 데서 생각해야 됩니다. 집착하지 마세요. 그래서 자식들에게도 이래라저래라 얘기하지 마세요. 아무리 이야기를 잘한 들 나처럼 살아라 얘기할 수 없습니다. 내 인생 아니고 그 사람 인생이니까. 하지만 외면하면 안 됩니다. 나는 언제든지 상대방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돼주면 되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같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한번씩 되뇌십시오. 

'일일시호일'이란 말은, 날마다 좋은 날만 있어서 좋은 날이 아니라 좋은 날도 있고, 궂은날도 있고, 나한테 큰 상처를 준 날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모든 날이 내 인생 내 삶에 배움을 준 날이야, 모든 일들이 다 나한테 배움을 가져다주는 날이야. 그래서 '일일시호일'이라고 하는 겁니다. 궂으면 궂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무심하게, 집착하지 않되 외면하지 않는 마음으로, 유연한 마음으로 흐르는 물처럼 살아가다 보면 내 자신 스스로가 너무 갑갑하거나 상처받거나 그럴 일들은 크게 없다는 겁니다. 

 

불교에서 자주 이야기 하지요. '죽음을 생각하십시요' 죽음을 생각하라고 하는 것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치열하게 잘 살아 낼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라고 하는 말입니다. 

태어나면 다 죽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어요. 영원한 만남도 없지만 영원한 헤어짐은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우리는 기억이라는 게 있어, 나한테 소중한 사람들이 돌아가고 없더라도 그 사람들 앞에서 그분의 기억을 한번 떠올릴 때마다 다른 형태로 내 마음속에 항상 그 사람이 살아서 나와 같이 가는데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야. 내 마음속에 내가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항상 같이 사는 거지, 내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같이. 그래서 영원한 만남도 없지만 영원한 헤어짐도 없는 거지. 

 

이런 것을 안다고 하면 우리가 살면서 마음에 상처를 크게 입거나 그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이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지나간 과거 살아온 날들의 상처, 슬픔은 지금 내게 배달된 식재료라고 생각하면 돼요. 식재료는 좋은 상품이 올 수도 있지만 시들은 

상품이 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뛰어난 인생 요리사들은 이것으로 좋은 조미료를 만들 수 있고, 잘 배합해서 훌륭한 육수를 뽑을 수도 있습니다. 그 몫은 누구의 몫일까요? 나의 삶, 나의 인생을 어떤 식으로 요리할 것인가. 지나간 과거이기 때문에 바꿀 수는 없지만 내가 어떻게 이 재료로 인생의 참다운 조미료로 만드는 가는 다 나에게 달렸어. 

이런 것을 안다고 하면 살면서 아, 내 마음을 괴롭히는 순간순간들, 그런 일들, 과거의 상처들, 이런 것들이 나를 크게 좌지우지 흔들어 놓거나 괴로움에 빠트려서 못 일어나게 만드는 일은 없어요. 그래서 '일일시호일' 인거야. 왜? 매일같이 배움의 날이니까. 그래서 좋은 날이든 궂은날이든 간에 항상 좋은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항상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둔다면 이 순간순간이 제일 소중합니다. 하루에 소소한 일상들이 모여서 위대한 것들을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하루를 잘 살면 돼요. 지나간 것은 내가 오늘 잘 보고 배운 것을 교과서 삼아서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어머니가 되고, 스스로 아버지가 되고, 스스로 조사가 되고, 스스로 부처가 되어야만 되는 겁니다.

부처님 말씀이 교과서이고, 스님들은 삶의 길, 이정표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조사가 되고 스승이 되고 부처가 되십시요. 부처님의 가피를 얻으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부처가 되세요.

 

앞에 말했던 것처럼, 내 마음을 흔드는 요소들은 삶의 지혜로 잘 해쳐나간다고 하면 지금보다는 내 삶이 흔들림 없이 편안하게,

평온하게 갈 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_()()()_

 

 

 

 

  
 

 
 

 마음은 가볍게 가방은 무겁게 산문을 나서는 사람들 뒤로 나풀나풀 여름 해가 따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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