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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 페르난도 보테로 : 형태의 미학> 본문

벨라 살롱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 페르난도 보테로 : 형태의 미학>

lotusgm 2026. 7. 17. 09:27

 
 
 
 
 

'고야 전'에 배신당한 기분으로 애초에 볼 생각이 없었던 페르난도 보테로 전시회를 보러 왔다.
 
 

 

 
 

 
 

<페르난도 보테로 : 형태의 미학> 전시는 콜롬비아의 거장 보테로(매데인, 1932~몬테카를로 2013)의 중요한 귀환으로서, 형태와 양감을 강조하여 미술사에 유래없는 경지로 격상된 그만의 독창적인 미술 양식을 집중 조명한다. 자신이 고안한 비율이 특징인 그의 기념비적 양식 보테리즘(Boterismo)은 전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결과적으로 20세기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거장이자 영향력이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미 알려진 명화들을 보테로 그만의 비율로 다시 그린 그림들이 먼저 눈길을 끈다.
'벨라스케스를 따라 그린 메니나'
 
 
 

<얀 반 에이크를 따라 그린 아르놀피니 부부>
 
 

 

 
 

<천 위에 엎드려 있는 여인>
 
 

 

<강에서 목욕하는 사람>

페르난도 보테로의 미술은 그의 고향인 콜롬비아 메데인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1956년 멕시코 회화와의 만남은 보테로의 작업에서 결정적인 변환점이 되었다. 보테로는 해학과 따뜻함을 담아 유년 시절 기억 속의 인물들을 소환시켰다. 음악가, 무용수, 수녀, 군인, 우아한 상류층 여성, 권위 있는 남성, 그리고 심지어 매춘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했다. 독창적인 비율의 변주와 형태에 대한 기념비적인 시각을 통해 이들을 자신이 말한 '불가능한 것들의 시(詩)'로 승화시켰다.
 
 
 

<바 위의 발레리나>
 
 

 

 
 

"형태에 대한 나의 깊은 열정은 실제로 만질 수 있는 입체적 볼륨을 구현하게 했다. 나의 조각(Sculpture)은 미적 즐거움을 선사하고 예술을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것 외에 나는 고미술이 그러했듯, 즉각적이고 그 자체로 설명이 가능한 예술을 지향한다."
 
 

"드로잉은 모든 것의 기초이며, 화가의 정체성이자 스타일, 그리고 형식적 신념이다.
색채는 그 드로잉 위에 부여되는 일종의 선물이다."
<앉아있는 여인>
 
 

 

<축제>
 
 

 

 
 

<소풍>
 
 

 

<거리에서>
 

 
 

<대통령>
 

 
 

"나의 가족은 신앙심이 깊지 않고,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이러한 종교적 주제들을 오로지 회화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종교적 신념을 떠난 보테로의 회화적 관점으로 그린 그림들이 꽤 여러점이다.
<그는 누구인가>
 
 

 

<성모마리아>
 
 

 

<비너스>
보테로는 세계 주요 도시의 거리와 공공 공간에서 대규모 조각 전시를 선보인 선구자였다.

"조각가는 자연이 지닌 관능미를 전달하며, 중요한 것은 조각가가 창작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관객 또한 느끼는가에 있다.

사람들이 나의 조각을 어루만질 때 나는 기쁨을 느낀다."
 
 

 

<추기경>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결코 흔하지 않은 상황을 재치와 웅장함이 공존하는 이미지로 제시한 <바티칸의 욕실>
 
 

 

<신학교>
 
 

 

보테로 영상을 보면서 보테로가 그린 작품 속 과장되고 부풀려진 형태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그는 예술에서 양감은 관능이라는 특정한 개념과 맞닿아 있어야 하고, 회화가 관대하고, 감각적이고, 육감적이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가 뚱뚱한 여자를 그린다는 오명은 결국 그가 그리고자 하는 형태에 내재된 관능미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얻어진 것이다.
 
전시회를 마치고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더라도 그는 다음 날 오전 10시나 11시면 어김없이 작업실로 돌아와 그림 앞에 선다.
무언가 배우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다.
 
 
 

보테로는 정물을 통해 하나의 진실을 단언했다. " 주제 그 너머에 남는 것을 화가의 양식이다."

보테로의 독창적인 양식은 정물을 그리며 확립되었다. 1956년 멕시코로 이주해 약 1년 반 동안 머물던 중 어느 날 밤, 만돌린을 스케치하던 보테로는 물림 구명을 비정상적으로 작게 그렸다. 풍만하게 부풀린 만돌린의 외곽선과 그 가운데 그린 세부묘사의 대비는 화면에 강한 기념비성과 왜곡을 불러일으켰고, 보테로는 그 순간 오랜 예술적 탐구의 해답을 발견한 것을 깨달았다.

 

 

 

 
 

보테로가 네 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가 재봉사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12살에 삼촌이 투우학교에 입학시켜서
2년 교육을 받았지만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9살에 처음 전시회를 열었다.
어린 시절 잠시 다녔던 투우학교의 추억에서부터 그의 수채화 첫 작품은 작은 투우 장면이었다.
 
 

 

말을 탄 투우사의 뒷모습을 유머스럽게 표현한 보테로다운 작품 <투우사의 뒷모습>
 
 

 

<죽음과 투우사>
 
 

 

"예술에서 양감은 관능이라는 특정한 개념과 맞닿아 있다. 나는 회화가 관대하고,
감각적이고, 육감적이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 페르나도 보테로 --
 
 

 

서커스 그림을 위한 전시실 입구.
 
 
 

<죽마를 탄 광대들>
 
 
 

 
 

 
 

단순하게 뚱뚱한 형태를 그리는 화가 정도로만 알았던 보테로의 전시회는, 생각보다 작품 수도 많았고
작품의 규모도 하나 같이 대작이다. 우연이다시피 관람한 보테로 전시에서 새로운 거장을 만나게 되었다.
 
마약과 다양한 사회문제로 병든 조국 콜롬비아를 위해 자신이 평생 수집한 미술품과 소장한 자신의 모든 작품을 기증하면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무료 관람 조건을 제시했다. 내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화가로서의 보테로가 아닌 성공한 삶을 산
한 사람의 자랑스러운 콜롬비아인을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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