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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 보림사의 아홉암자 중 하나 ..법화암 본문

아름다운 산사

영축산 보림사의 아홉암자 중 하나 ..법화암

lotusgm 2011. 10. 11. 20:21

 

 

 

버스에서 내려 작은 마을길을 지나서 법화암까지는 1㎞라고 쓰인 표지판을 지나고도

거의 한시간 가까이 오르막 산길을 올랐다.

아마도 산길을 직선코스로 대략 계산했나 보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산길도 이미 산길이 아니고..야튼 저 인정머리없는 시멘트길만 아니어도 좋겠다.

뭐 나름 가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산길을 오르며 익어가는 과실에 눈독도 들이고

갈대를 꺾어  흔들기도 하고,코스모스를 머리에 꽂기도 하고..소풍이라도 가듯.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다.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구개리 법화암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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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암은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법화암은 본래 영축산에 있던 보림사(寶林寺)의 부속 암자였다고 하는데, 현재 보림사는 법화암 아래에 넓게 자리하였던 절로 지금은 그 터만이 옛날의 영화를 추측케 하고 있다. 원래 보림사는 그 규모가 매우 커서 법화암을 비롯한 아홉개의 암자에 일천여명의 승려가 머물렀으며

보림사와 아홉개의  암자에서 쌀을 씻은 쌀뜨물이 항상 영산천을 탁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보림사는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탄 뒤 복원되지 못하고 폐쇄되었는 데 그 아홉 암자 중 현재 유일하게 법화암 만이 남아있다. 

 

한편 조선시대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법화암에 반야루(般若樓)라는 전각이 있었음을 전하고 있는데, 고려시대 지공 스님이 완성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어, 이 무렵까지 법화암에 그의 영향이 남아 있었음을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유물 자료로 현재 산신각에 봉안된 금동 지장보살좌상은양식상 17세기에 조성된 것이므로 법화암 연혁을 살필 때 부족한 문헌 자료의 공백을 잘 메워주고 있다.
1850년(철종 1) 국의(國儀) 스님이 중창했으며, 1857년(철종 8) 다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높고 높은 축대 위의 법화암.

축대 왼쪽 끝에 문화재인 법화암 다층 석탑이 있다.

 

 

영산 법화암 다층석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69호.

원래 보림사에 있던 것을 절이 황폐화 된 뒤 이 곳으로 옮겨왔다.

탑에 사용된 석재는 마석(馬石)이라고 불리는 흑색 점판암으로, 일명 와탑(瓦塔)이라고도 부른다.

탑은 현재 연꽃무늬가 새겨진 이중의 받침돌과 지붕돌 및 몸돌이 남아있다.

꼭대기 부분과 전체적으로 많은 부분이 없어져 버려 그 원형을 알 수 없지만, 재료와 구성 방식으로 볼 때

고려 초기에 유행한 작은 탑의 양식을 잘 계승한 고려 중기 이전의 탑이라고 생각된다.

--법화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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