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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방곡사 회주 묘허큰스님 백령사 철야법문 본문
-용인 백령사 대웅전 사리탑-
건곤이 허활하여 무옹색한데 삼라만상은 자장단하고
부귀빈천은 전세작인데 세인전도 분외구하는구나
나..무..아..미..타..불..
내가 절집에 온 지가 금년이 58년째야.
그 58년을 절집에서 생활하면서도 가장 좋아하는 계송 중에 하나고 만고불변의 진리가 28자 속에 다 담겨있어요.
무슨 말씀인고 하면, 기독교 같은 경우는 창조를 말하지 아니하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러면 불교는 어떤 종교냐? 인과를 이야기하지 아니하고는 말할 수 없는 종교가 불교예요.
인과는 불교 이전에부터 인도 고대사에 의하면 힌두교에서는 전해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면 바라문교의 힌두사상이지 불교의 근본적인 사상은 아닌 것 아니냐..그것이 맞는 말씀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받아들이고 인정해주신 말씀 중 하나가 인과입니다. 그럼 인과는 뭐냐? 원인과 결과예요.
원인없는 결과는 절대로 존재하지 아니하고,원인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 그럼 원인은 뭐냐?
기독교에서는 원죄라는 것을 설정해 놓고 믿게하기 위한 방법으로 쓰고있지만,
불교에는 원죄도 원선도,선과 악은 누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고 누가 설정해 놓은 것도 아니예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나가는 데 어떻게해서 선과 악이 일어나고 나타나느냐하면 선과 악,죄와 복은 중생들이
한생각 일어나는 마음, 그것이 선악의 원인이 되요. 착한 한생각은 선의 원인(善因)이 되고, 못된 한생각은 악의 원인(惡因)이야.
그래서 일어난 생각을 꺼트려버리면 죄도 없고 복도 없어요.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거야. 그런데 일어난 생각을
마음 속으로 스스로가 결정지어진 마음,일어난 생각을 결정지어진 마음, 이 것을 불교에서는 작이(作伊)다 그래.
이미 한번 결정지어 버리면 짓게되는 시작이 되는거야. 그러면 일어나는 생각을 마음 속으로 결정해 버리면
육체적으로 행동에 실천하게 되어있어요. 실천하는 것 行伊, 그것 모두가 업(業)이 되는 거야.
착한 생각을 마음 속으로 결정해서 행동으로 옮겨서 실천하면 선업이 되고,악한 생각을 일으킨 마음을 결정해서
행동으로 실천하면 악업이 되는거야. 선악 간의 선과 악의 원인은 한생각이다. 일어난 생각을 마음 속으로 결정짓는 순간부터
행동으로 옮겨서 실천하는 데 까지를 업(業)이라 그러는데, 이 업을 불교에서 연이다 그래요.연(緣). 그런데 왜 연이라고 하느냐?
인(因)의 반연이 연(緣)이다 그말이야. 생각의 반연이 행이입니다. 여러분의 일거수 일투족 ,하루종일 가고 오고 하는 모든 행이
즉 생각의 반연이야. 한생각이 일어나는 원인이고 그 생각을 결정 지어서 행동으로 옮겨서 실천하는 데 까지는 반연이야.
그래서 인은 반연에 의해서 과(果)를 낳게 되어있어. 이게' 인연인과'야. 줄이면 '인과'다.
여러분들 오늘 백령사에 어찌 왔느냐..한달에 한번씩 철야를 하는데 ..옛날에는 부처님이 참 영험했는데
요즘은 부처님 영험이 덜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금에 佛은 동일합니다.
옛부처나 지금 부처나 부처님께서 깨달은 그 자리나 부처님 법력은 그대로 있어요.
그럼 왜 가피가 현실로 덜 나타나고 있느냐 하면, 고금 중생이 다릅니다.
옛중생은 근기가 있고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신앙심이 철두철미했고, 열심히 수행정진 했지만,
지금 사람들은 근기가 약한 동시에 얄팍한 꾀만 늘어서 스님들이 무슨 법문을 해도 믿기 이전에
'참말로?' '그럴 수 있을까?' '그럴까?' 가 붙어요. 그러니 절대적인 믿음이 안돼요.
절대적으로 실천하고 행동에 옮겨서 실천수행을 못하는 거야. 스님들은 아직도 섣달(납월)만 되면 제방선원에서
초하룻날 부터 시작해서 초여드렛날 새벽까지 일주일 동안에 철야 용맹정진을 해요. 그러는데 우리는 한달에 하루 저녁,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고 나를 위하고 내 가족을 위하고, 우리를 위한 거지, 남을 위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죄는 지은대로 받고 공은 닦은대로 가요.
여러분들..목수들이 나무 구멍 파는 데 쓰는 끌 알지요? 끌은 나무 구멍은 잘 파는데 남의 복은 못파요.
옛날에도 '남의 복은 끌로도 못판다'는 말이 있어요. 아무도 못뺏아간다는 그 소리야.
내가 지은 것은 내가 다 받아야되는 거야 선악간에. 옛날에는 신앙심이 투철했고
지금은 얄팍한 꽤만 늘어가지고 어찌되었든 편하게 복 받을라 그래. 그러다보니까 지어온 업은 내가 받아야되는 데,
닦아 소멸시켜야 되는데, 닦을라고 노력을 않하니 안닦아 지는 거야. 그래서 한달에 한번 씩이라도 닦아보자..그거거든?
조금전에 여러분에게 말한 것이 뭐냐하면,
건곤(하늘과 땅)이 허활(광활해서 넓고 넓어)하여 무옹색한 데(비좁음이 하나도 없는데),
삼라만상이 자장단이야..만상삼라 자리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종류에 따라 지 스스로가 그렇듯이
인간도 부귀빈천은 전세작이야..부하고 귀하고 빈하고 천한 것은 누가 준 것도 아니고
내가 받은 것도 아니고 전세상에 내가 일으킨 생각의 그림자야. 그 생각을 일으킨 생각을
마음 속으로 결정해서 행동으로 실천해서 지어놓은 업에 따라서 부귀빈천과 희비애락이 좌우돼요.
오늘 내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좋고 나쁜 모든 일들이 누가 준 것이 아니고 내가 받는 것이 아니고
다 내가 지어서 받는 것인데,뭐가 짓느냐? 한생각 일어난 마음,그것이 전부 시작이 된거야.
그래서 한생각 일어난 생각은 첫째로, 좋고 나쁜 선악의 원인이요..시비의 근본이고 생사와 윤회의
시작이 되고 근본이 되고 원인이 되는 것이 한생각 부터야. 애당초 부질없이 한생각 일으키지 않았으면
이렇게 생사에 얽매이고 괴로움과 고통을 받지아니 할건데, 스스로 일으켰던 생각,최초의 한생각 때문에
시작없는 옛적부터 오늘까지 육도로 전전하면서 윤회전생을 하다가 다행히 무슨 복으로 받기어려운
사람 몸 받았어. 다행입니다 사람 몸 받아서..어째서 다행이냐. 육도문중을 다 팽개치고 우리 지구에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인간과 함께 공생을 하고 있느냐하면,크게 요약하면 태난습화 4생이지만
600억만 종의 생명체가 지구를 무대로 인간과 공생을 합니다. -부처님은 2천6백년 전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모공에 9백충이라고 그럽니다. 털구멍 하나 마다에 9백충이 살고 있답니다.
600억만종의 생명체 가운데 만물의 영장이 인간이라고 생각할 적에 사람 몸 받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야. 다행한 인생, 감사하게 내 할일 해가면서 살아가자는..이게 불교야. 불법이 왜 소중하냐.
불교 이외의 모든 종교는 타력신앙 구원의 종교입니다. 그렇지만 불교는 자력, 내 스스로 실천 수행을 하고
닦아야 되요. 닦아서 내 영혼을 맑히고 그 끝에 가서는 영원히 생사윤회로 부터 구제를 하자는 것이 우리 불교야.
불법난봉 이라..불교를 만나기 어려운데 우리가 불교를 만났을 적에 시작없는 옛적부터 오늘까지 내가
나를 망각하고 살았던 참 내가 누군가를 바로 알고가고 바로 알아 챙겨보자는 게 그게 불교거든.
그러기위해서는 나를 애워싸고 있고 감싸고 있고 덮고있고 감추고있는 그 업의 껍데기가 다겁생래에
누룽지 눌 듯이 눌어서 산화되고 돌덩이처럼 눌어붙어있는 거 닦아없애자..업 닦는 거야..
업은 닦으면 닦는 만큼, 녹히면 녹는 만큼 녹아지고 다 녹아버리면 죽는 사람도 살 수가 있어 불교는.
살려면 죽을만큼 힘들면 죽는 것도 살아요. 어영부영은 안되고..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첫째는 나를 위한 거고, 둘째는 우리 가족,우리를 위한 거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란 말이야.
되돌아와서 다시 말하지만..인간이
부하고 귀하고 빈하고 천한 것은 전세작이야. 누가 준 것도 아니고 내가 받은 것도 아니고 전세작이야.
전세에 내가 다 지어놓은 대로 받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그런 이치만 알면 여러분들이 괴로울 게 없잖아요.
전부가 내 복인데..그냥그냥 살아도 때가 되면 자기가 지어온 복만큼은 살고, 그렇다고 노력 안하면 안되요.
열심히 부지런히 노력해도 자기 복 밖에는 못살아요. 우리가 모르고 살 뿐이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거야.
그래서 부귀빈천은 전세작이야. 전생에 지어놓은 업에 따라 오늘에 내 인생은 과거 전생에
내가 일으켜 놓은 생각의 그림자요, 그 생각을 행동에 옮겨서 실천해 지어놓은 업의 모습이 오늘의 내 인생이야.
그러면서 생각을 일으켜서 또 짓고 그 과보를 받기 위해서 내생이 필요하고 ..이렇게 육체가 한번씩 바뀌어지기를
수천만겁 동안에 육체 바꿔 덮어쓰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러다가 사람 몸 받아 불법을 만났을 때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자는 이 것이 불교다 그거예요.
그러면 스님 얘기대로 라면 가만히 있어도 잘 살 놈은 잘 살고 못 살 놈은 못사는 거 아니냐 싶지만
내가 비유를 어떻게 하냐하면..감나무에 달린 저 발갛게 보기좋게 익은 감 한개는 니 몫이다..
감나무에 달린 감이 니 몫이라고 한다고 감나무 밑에 가서 그 감이 떨어질 때 까지 입 벌리고
누워있으면 언제 떨어져 줄 지 시간도 너무 많이 걸리고 감이 내 입으로 똑바로 떨어지지도 않아요.
내 몫으로 정해져 있으면 따는 것도 내 몫이고, 내 입까지 가지고 오는 것도 내 몫이고,
씹는 것도 내 몫이고, 목구멍에 넘기는 것도 내몫이다. 내 몫은 해야되거든? 그것이 노력 아닙니까?
내 감(복)이면 내가 복을 받을 만큼 내가 노력(몫)은 해야된다는 거야. 그러면 정해진 만큼 살게 되는 거야.
억지로 빨리 출세를 하거나 돈 많이 벌어 성공할려고 하지말고 노력을 해라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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