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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백파큰스님 주석처 순창 영구산 구암사 본문
갑자기 눈 앞에 높다란 축대가 보이고.
영구산 구암사 - 전북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374 번지
구암사는 예로부터 유명한 대종사들이 주석하셨던 곳으로, 영조때는 화엄종주인 설파대사가 주석하였다.
이로부터 100여년간 화엄종맥의 법손이 계승된 전통적인 사찰이다. 당시 구암사는 전국 굴지의 사찰로
각처에서 운집한 승려가 1,000여 명에 이르렀다. 그 후 강원,선원 등으로 구분해 존속해 오다가 임진왜란 때
병화로 전소되었다. 백파스님의 설법으로 입산수도한 승려가 각처에서 운집하였기에 스님을 선문중흥조라
일컬었고, 그 법맥을 고창 선운사와 정읍 내장사,장성 백양사,해남 대흥사 등에 전법하였으며,
헌종 때는 노사 기정진 선생과 친교 정진하였다.
*백파선사의 재가 제자로는 이광수,신석정,서정주,조지훈 등의 문인이 있고,출가 제자로는 청담,청우,서경보,
운허,운기,운성,남곡,만암대종사 등을 길렀다.*
한국전쟁으로 전소되어,1957년에 복원하였는데,2년 뒤인 1959년에 다시 소실되었다. 1973년 대웅전과 요사만을
복구하였으나 붕괴되고,2002년 지공화상께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월인석보(보물
제 745-10호,1459년 세조 5년 초간본)을 소장하고 있다.
대웅전 앞에서 바라보면 가히 대종사들 께서 주석하신 곳이라는 면모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아래로는 구암사의 상징인 800년된 은행나무가 버티고 있다.
물은 자고로 동에서 솟아나서 서로 흐르는 법인데
구암사 약수는 서출동유수 라..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특별한 약수이다.
그럼 나도 목 한번 축여볼까? 끝맛이 달다.
구암사는 겉모습은 많이 바뀌어서 신식의 모습이지만 역사로는 아주 유서깊은 1,400여년 된 사찰입니다.
백제 무왕 636년에 지어진 사찰로서 1,400여년 동안 이 호남지역 일대를 아주 많은 고승과 많은 큰스님들을
배출한 유서깊은 도량이 되겠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백파스님이라는 조선 시대의 아주 큰스님이 계셨습니다.
백파스님은 오늘날 우리들이 하는 의식의 기본이 되는 '작법귀감'이라는 책을 만드신 분입니다.
우리 불교가 조정으로부터 많은 억압을 받던 조선시대에 당대 강백이었던 백파큰스님이
유교의 추사 김정희 선생과 대담도 나누고,조선 후기의 침체되었던 불교를 이끌었던 중심적인
곳이 바로 이 구암사가 되겠습니다. 이 구암사에는 무려 천여명의 스님이 계셨다고 합니다.
바로 뒷산을 걸어서 한시간이면 백양사가 있고, 옆으로 넘어가는 길로는 한시간 반이면 내장사에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백양사와 내장사에서 스님들이 구암사까지 와서 공부했던
유서깊은 도량입니다.또 한분 근대 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박한영스님이 주로 주석한 곳이
바로 구암사가 되겠습니다. 박한영스님 밑에는 또 많은 스님이 계셨는데, 청담스님, 운허스님,
만암스님 도 이 곳에서 공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스님과 학자들이 배출되었느냐..
바로 오른 쪽 산에 문필봉이라고 있는데, 문필봉이 있는 곳에는 예로부터 스님과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기도 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구암사에서 꼭 권해드리고 싶은 건 바로 구암사 '물' 입니다.
저 물은 사시사철 항시 똑같이 흐르는 물입니다. 그리고 약수라함은 보통의 물과는 달리
서쪽에서 동쪽(서출동유수)으로 흐르는 물로, 구암사가 대표적 입니다.
제가 물밖에 드릴 것이 없어 죄송하구요..가을에 오시면 저 아래 36m나 되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10가마니 되는 은행을 스님들이 전부 수확할 수 없으니 한봉지씩 가지고 가시면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절이 아주 유명한 절입니다. 한국전쟁 때 불탔는데 같이 불타서 없어진 책이 2만권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강사스님의 강맥의 90%가 이 절에서 전해 내려온 겁니다.
다시 말하면 화엄종중 백파스님의 강맥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퍼져 전해내려 온 겁니다.
근세에 조계종 종중을 지낸 백양사 이서옹스님의 은사스님이신 송만암스님도 여기서 공부하셨고,
운허스님도 여기서 공부하신 백파스님의 강맥입니다. 150년 전의 스님인데 스님이 입적하신 후 새긴,
서예의 대가인 완당 추사김정희 선생의 하나 뿐인 비문이 구암사에 있었고, 지금은
선운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한국전쟁 전까지 구암사에서 강원을 할 때
최근세의 운허,운기,운서스님까지 여기서 공부하시고 여기서 강맥을 이어받아 지금에 이른겁니다.
불교에는 법사스님이 법문을 해도 그냥 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선사들은 인가가 있어야 되고,강사들은 강맥이 전해져 내려오고,또 율사들은 율맥이 전해져
내려오는 겁니다. 백파스님은 강사이면서 대율사 입니다. 그래서 율사들은 전결을 해야되고,
강사들은 전강을 해야되고,선사들은 인가가 있어야 법상에 오를 수 있고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강맥은 두분이 계시는 데,크게는 능엄경의 대가이신 운허스님, 화엄경의 대가이신
운기스님 입니다.
추사 김정희선생의 백파대선사를 기리기 위한 친필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 탁본.
"우리 동방에 근래에 율사로서 선종과 교종을 하나로 묶은 분이 없었는데,
백파대사가 나와 가히 대기와 대용으로써 이를 감당하셨다. 백파대사께서는
80여년의 생애 동안 손을 대고 노력을 기울인 업적에 대해 어떤 이들은 살리고 죽이는
근기와 쓰임으로써 지리멸렬하게 뚫고 파헤쳐 괴이함만 보였다고 여기지만,
이는 왕개미가 큰나무를 흔드는 것과 같은 짓으로 전혀 무의미한 일일 뿐이다."
구암사의 규모가 얼마나 컸었는 지 그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1920여년대)
가난하여 송곳 하나 꽂을 데 없었지만
기운은 수미산도 덮을만 했네.
어버이 섬기기를 부처님 섬기 듯 하였고
풍모는 어느 누구보다 가장 진실하였다.
이름하여 긍선(백파큰스님)이로구나.
다시 이리저리 설명할 수 없도다.
높이 35m 의 수령 700년 된 구암사 은행나무 - 전라북도 기념물 제12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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