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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가우디의 사그리다 파밀리아 본문
가우디 당시 도시가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어, 도시적으로는 발전이 있었지만 성당측에서 봤을 때는 '도시가 근대화로 타락해 간다'로 보았다.
타락해가는 도시를 막는 방법을 종교에서 찾기 위해 가족들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처음 계획이 되었고,16년 동안 모금을 했다.
1882년도에 비아르라는 사람에 의해 처음 공사가 시작되었다가 이듬해에 가우디에게로 넘어갔는데 그 이유는,
개인적으로 돈을 긁어모을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전을 훨씬 더 아름답고 웅장하게 짓고자 한 비아르와
어떻게든 비용을 절감하려고 했던 성당 측의 마찰을 견디지 못했던 비아르가 가우디에게 이 작업을 넘겨주게 된 것이다.
가우디가 이 작업을 맡았을 때 나이가 만으로 31세 였다.그후 43년 동안 가우디는 성가족 성당 건축에만 매달렸다.
결국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성당 앞 거리서 전차에 치여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삶을 살았을 망정...
가우디는 성가족 성당(사그리다 파밀리아)이 언제 완공되느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대답했었다.
'神만이 아신다. 이 성당은 천천히 자라난다. 오랫동안 살아남을 운명을 지닌 모든 것들 처럼..'
2010년 11월에 교황 베네틱도 16세가 성가족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성당을 둘러본 후 한마디 내뱉었다고 알려진다.
'내가 죽기전에 완성되는 것을 보고싶다'
600년 역사상 처음으로 교황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1927년 생인 베네틱도 교황이 돌아가시기전 어떻게든 완성해야 한다는 목표로
정한 날짜가 가우디 사후 100주년을 기념하는 2026년 이라는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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