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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경북 의성 공정리] 관세음보살 석불입상 본문
2016년 5월 2일 묘허큰스님과 함께 마애불순례.
유난히 많은 마애불과 전통사찰이 있는 경상도 지역 중에서도 의성에 있는 마애불을 찾았다.
지나가다가 두어번 주민들에게 물었지만 도로에서 자칫 지나치기 쉽상인 좁은 다리로 들어섰다.
그리고 다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먼저 온 일행들이 보였다.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조금전에 내려온 다리 위로 맨 마지막으로 합류하는 팀들이 오는 것이 보인다.
보이는 공정리 골짜기는 임진왜란 피난민들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면서 생긴 마을로,
그 이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고 늙은이를 버리던 고려장 장소로 쓰이던 아득한 골짜기 였다고 한다.
의성군 홈페이지에는 '용소마을 산기슭에 방 한칸 정도의 동굴이 있어 주변 주민과 전국 각지에서 불자들이
찾아와 기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소개하는데,석불이 있는 동굴 앞 저수지에 물이 가득차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색다르게 변하므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기도처가 될 지도 모른다.
- 2012년 3월 27일 자 ohmyNews -
4년이 지난 지금 그때 예상한 바로는 지금쯤 저수지에 물이 가득차고 특별한 풍경이 되어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도중에 몇번이나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야 했을 정도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특별한 지형의 얕은 동굴 속에 관세음보살 입상이 모셔져있고
먼저 온 일행들이 준비해온 마지를 올리고 큰스님께서 도착하시길 기다리고 있었다.
동굴 안은 바깥과는 다르게 꽤 서늘하고 어디선가 물이 조금이 새어나오고 있어
군데군데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불자들은 아닌 것 같고 누군가 찾아와 초를 켜고 기도를 드린 흔적이 보였다.
파불을 피하지 못한 불두는 새로 만들어 올렸다.
소박한 원래의 몸체에 비해 아마도 과할 듯 싶은 관세음보살의 정상불 역시 균형미가 없어보인다.
이끼가 덮히고 마모가 되어서 몸체부분의 얕은 조각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수인과 옷자락의 표현이 굉장히 섬세했을 것 같은 짐작이 들게하는 모습을 하고있다.
이 곳은 관세음보살이 주불인 석굴법당입니다.
마애불은 주로 여래상이 많은데 이 곳은 특별하게도 관세음보살 석불을 모신 곳입니다.
고려에서 이조로 넘어오면서 고려문화와 함께 불교문화를 말살하는 과정에
제일 먼저 인법당을 다 없앴습니다. 사람이 기거하며 생활할 수 있는 방에 부처님을 모셔놓은 인법당,과거엔 인인개개인이
자기의 원불을 모셔놓고 기도했는데 그 방을 없애야 불교가 없어진다는 겁니다. 고려때는 불교가 국교이고 집집마다 기도하는
방을 다 가지고 있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고,그러면 상투는 어디서부터 유래된 것인가..원래 상투는 여자들은 호신불을 몸에
영락으로,목걸이에 매달아 부처님을 걸고 다니지만 남자들은,(관세음보살님은 항상 부처님을 머리에 이고 계시지요?)
관세음보살님이 이고 계신 부처님이 누구야? 아는 사람 내가 상주께. 아미타부처님이 아니고 청광왕정주여래부처님인데,
관세음보살님이 초지보살 일적에 청광왕정주여래부처님한테 다리니법문을 들었습니다. 그 법문을 듣고 초지에서 팔지가 되고
(지금은 십지여래) 너무 감사한 마음에 항상 청광왕정주여래보살을 머리에 이고 다니게 된 겁니다.그것을 정상불이라고 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십지보살이 된 후에 협시보살로 아미타불부처님의 왼쪽에서 돕고 보살펴주고 계시니까 아미타불을 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간혹은 조성하는 분들이 아미타불을 정상불로 모시기도 하지만)사실은 청광왕정주여래부처님 이예요.
그 관세음보살님을 머리에 세우고 안넘어지게 고정시키기 위해 생겨난 것이 상투머리 입니다. 고려에서 이조로 넘어오면서 불교를
말살시킬 수가 없거든? 왜?이조조선의 건국이념이 억불숭유정책 아니야? 불교를 못믿게 해야되는데 집집마다 부처님을 모셔놓고
인법당을 가지고 기도를 하니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니까 '가정집에서 부처님을 모시면 해롭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는데,그렇지만
부처님을 목숨처럼 아끼며 모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시지않을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그 집을 탄압하는 겁니다.그래서 사람들은
집집마다 모시던 부처님과 모든 호신불 마저도 전부 절에 가져다 놓은 겁니다. 남자들은 호신불(정상불)을 빼고 흔들리는 상투를
고정시키기 위해 동곳이 생겨납니다. 이씨왕조에서는 동곳이 신분(금,옥,은,동,철)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집에 있던 부처님을 절에 전부 모셔다놓고 집에서 생활화 하던 기도를 안할 수가 없으니 숨어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는 방향을 정해 시렁에 쌀 담은 바가지를 올려놓고 삼신(청정법신비로자나불,원만보신노사나불,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
께 기도를 하는데 그 조차 숨기기위해 나온 말이 '삼신할매'입니다 .애기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부처님께 고하고 애기의 수명을
기원하는 상에 그때 물이나 미역국을 차리는데 고기는 없지요? 부처님께 올리는 상입니다.
여기 경상도 의성까지는 '삼신'신앙이지만 경주지방에서는 '세존단지' 나아가 숨기기위해 터줏단지라는 말이 생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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