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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최초의 나란다 불교대학 본문

♥ 그들이 사는 세상/나마스테 인디아

불교 최초의 나란다 불교대학

lotusgm 2016. 12. 27. 23:18

 

 

 

 

영취산으로부터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세계 최초,최고의 불교대학인 나란다 대학.

불교 성지라기 보다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이라서 일까?

입구 부터 처음 만나는 풍경이다.

 

 

 

 

 

 

인도 사람은 15루피

외국인은 200루피

그래서 인도의 입장료가 있는 곳은 어디나 외국인이 우선 입장이다.

 

 

 

 

 

 

아쇼카 왕의 이름을 딴 너무나 멋진 아쇼카 나무길을 따라 들어간다.

 

 

 

 

일단 출석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오래된 정원수가 정말 너무나 아름답다.

 

 

 

 

 

 

 

 

 

 

 

 

갠지스 평원 지대의 성지에는 돌이 없어서 무조건 벽돌을 구워서 쌓는데 구운 벽돌은 5천년을 간다고 한다.

나란다 불교대학은 '나란'연꽃 '드' 피우다. 연꽃은 지혜..지혜를 피우는 자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차이티아 -예배당

비아르 -승방

 

만오천~이만 명의 스님들의 승방(Mona steries)이 12㎞나 되었다.

11세기 말 무슬림 침공으로 나란다 대학은 3개월 동안 불타 10㎞떨어진 마을에서도

서책과 인육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 였다고 한다.

 

 

 

 

먼저 학사동으로 들어간다.

 

 

 

 

무슬림 침공으로 불탔을 때 녹아내린 벽돌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다.

 

 

 

 

공부하는 스님들의 숙소 겸 공부방 승방이 줄지어있는 승방터.

 

 

 

 

 

 

 

 

스님들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일교차가 심한 바깥 날씨에 냉난방 없이도 사계절 수행할 수 있도록

외벽은 물론 승방의 내벽 조차 그 두께가 엄청나다.

나란다 대학에서는 불교 경전 뿐만 아니라 천문학,의학,수학,지질학 등 지구상의 모든 학문을 공부

하는  힘든 과정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스님들은 공부를 완성하지 못한 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열반에 들기도 했다.

우리나라 유일의 스님으로 신라시대 혜업스님은 도저히 학문을 다 배우지 못한 채 이곳에서 열반하셨다.

 

 

 

 

외벽의 두께를 짐작할 수 있는 벽만 남아있다.

 

 

 

 

원래는 벽돌 위에 템페라 기법-진흙과 모래를 섞고 동물 털이나 식물 알갱이를 넣어서 아교로 버무린 후

계란 흰자 혹은 꿀을 넣기도 해서 1㎝ 정도의 두께로 외벽을 바른 다음에 더 고운 모래로 2차 벽을 바른다.

그 위에 하얀 석회칠을 한 후 그림을 그렸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아래는 공동구역으로 작은 예배당,우물,창고,부억 등이 있고 계단 위로 올라가면 침대가 놓여있는 방사가 있다.

 

 

 

 

미러스톤 -생선 비늘처럼 반짝거리는 돌이 작은 법당 바로 앞에 놓여있는데,

불이 없던 시절 달빛이 스톤에 비추면 작은 법당이 비치게 되어 있어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금 공부하곤 했다는.

원래는 거울처럼 반짝이는 돌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빛을 잃었다.

 

 

 

 

 

 

.가운데 가장 큰 탑은 부처님께서 열반을 지켜보셨던 사리부트라,사리불 존자님의 탑이다.

주변의 부도들은 나란다 대학의 학장이나 큰스님들의 부도탑으로 원래는 템페라 기법으로 외벽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란다 대학의 도서관터.

 

 

 

 

 

 

 

 

4~5개 학사동을 기준으로 예불당 (차이티아)을 모시는데,오른 쪽 위에 부처님을 모신 큰법당이 있다.

지금은 석가모니불 좌우 협시불(삼존불)을 모시지만 초기에 부처님은 한분만 모시다가 

제석천과 범천왕이 좌우에 앉으면서 삼각구도가 시작되었다.(제석굴 설법) 그리고 나서 천신들이

들어가 탱화에서 보여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곳의 예불당은 석가모니 부처님 한분을 모신 큰법당을 제외하고 다른 부처님과 보살은 좌우에 만들어진

방사에 따로 모시는 구조로 되어있다.

 

 

 

 

 

 

하르샤르 왕은 스스로'나는 나란다대학 스님들의 종입니다' 말하고

주변 200개 마을에서 거두어 들인 곡물,우유,버터 등과

100여개 마을에서 받은 세금으로 비구 6물을 전폭 후원하며 대학의 스님들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학사동 창구를 항상 가득 채웠다고 한다.

 

우물터.

 

 

 

 

솥단지를 걸었던 아궁이.

 

 

 

 

한시간 반 가량을 이 곳 저 곳 둘러보느라 힘들었던 다리를 잠시 쉬는데

먼저 달려와 그 앞에 드러눕는 견공.

 

 

 

 

 

 

몇몇은 언젠가 자신이 이 곳을 거닐던 장면이 떠오른다,공부했던 학승 중 한명이었을 거다 등 너스레를 떨며

만약에 이슬람 침공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의 불교는 어떤 발전을 하고 어디까지 영화를 누렸을까..아쉬운 마음으로

나란다 대학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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