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방곡사 회주 묘허큰스님 법문-점찰법회 점찰선악업보경 본문

방곡사 가는 날

방곡사 회주 묘허큰스님 법문-점찰법회 점찰선악업보경

lotusgm 2017. 4. 11. 11:17

 

 

 

 

 

 

 

점찰법회는 점찰선악업보경에 의해 내가 전생에 지어온 업이 얼마나 중한 지 점쳐 보는 것인데,

부처님을 대신해서 지장보살님이 설한 경전입니다.

상권은 하근중생들을 점찰법으로 불러들여 염불로 ..하권으로 들어가면 대승 공사상으로 회향하는 법문이

점찰선악업보경 입니다. 오늘 오후에 하권을 읽을 차례인데 경은 금강경 보다 더 딱 떨어지게 대승 공사상으로

회향할 수 있는데,지장보살님께서 어리석고 미한 말법시대의 하근중생들을 점찰법으로 포용해서 대승 공사상으로

해탈시키는 겁니다.처음 읽으로 전부 189개가 있지요? 오늘부터 집에 돌아가는 사람이나 절에 남는 사람이나 지장보살을

하루에 2만독 (2시간 정도 걸릴겁니다)...행주좌와어묵동정 (길을 가나 머무르나,앉으나 누우나,말을 하거나 묵언을

하거나,움직이거나 고요히 있거나) 한생각 놓치지 말고 하다보면 하루 7만번도 할 수 있어요.

부지런히 5일 동안 지장보살 10만독을 하고 ..점찰선악업보경에 의한 점찰법회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신라 때

가서사에서 원광법사께서 시작하고, 지혜라고 하는 비구니스님이 경산 안흥사에서 크게 점찰법회를 했어요.

그분들은 지장보살 선악업보경을 윷패에 의해서 하였고, 가장 크게 법회를 일으킨 분이 진표율사..진포율사는 김제에서 태어나

금산사로 출가해서 점찰법회를 크게 했습니다. 그 곳은 중국처럼 189개의 간자를 가지고 패를 뽑아 자신의 업보를 점쳤습니다.

그 후 속리산 법주사를 창건하고 미륵신앙과 함께 간자 패를 이용한 점찰법회를 하기도 했어요.

원래는 점찰법회를 석달씩 계속했어요...그래서 속리산에서 진포율사가 점찰법회를 한다는 소리를 신라의 신지왕사가

듣고 먼길을 찾아 나섰다가 시월보름 점찰법회 입재에 늦어버렸습니다. 옛날에는 입재나 결재에 늦으면 당에 들어오지를

못하므로 결국 신지스님은 당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석달동안의 법회에 함께 하고싶어 밖에 거적자리를 깔고

참석했어요. 겨울이라 눈이 왔는데 신지스님이 생활하는 자리에는 사방 열자에 눈이 내리지를 않았어요.그것을 보고 신심을

갸륵하게 여겨 진포율사가 대중의 공의를 얻어 당에 들기를 허락 했어요. 점찰법회가 끝났을 적에 '아마도 이 점찰법회는

신지스님에게 인연이 있는 것 같으니 내가 사용하던 간자를 네가 가지고 가라'고 전해 줍니다.

'니가 인연있는 땅에 가서 떨어지면 내가 그곳에 가서 점찰법회를 부흥시키겠다'고 간자를 신지스님이 말아싸서

허공에 날린 후 사람걸음 만큼 날아가는 간자를 따라가니 (그 때는 절이 없었지만)팔공산 동화사까지 오게되었어요.

내려앉은 자리에 가보니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오동나무 꽃이 만발했다고 해서 오동나무 동桐,빛날 화華사라고 이름을 짓고

절을 지어 팔관법회와 함께 점찰법회를 크게 일으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져 오는데,근세 이씨조선 500년

동안 단절이 되고 끊어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점찰법회라고 하는 것은 사실 ..염불을 시키기 위한 방법이예요.

하근중생들을 점찰법으로 끌어들여 염불을 시켜 업장을 소멸시킨 다음에 대승으로 귀화시켜 공사상으로 회통,자성을 증득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 지장보살님이 설해 놓으신 점찰선악업보경 입니다. 그래서 점찰선악업보경은 지장 삼보경에 들어있기 때문에..예전에

지장경,대승대지지장 16경,점찰선악업보경을 번역을 해서 한 곳에 모아 지장삼보경이라 출간했는데 그 책이 전부 없어졌어요.

이번에 지장삼보경 가운데 제일 끝에 있는 점찰선악업보경을 일주일 점찰기도를 위해 묶었습니다.

기도 기간 중 한가지 염원을 두고 10만독을 하고 간지통을 흔들면 189개 가운데 한개가 빠져나옵니다. 그 번호로 간지내용을 적은

쪽지를 교환해서 읽어보고 좋으면 부처님 앞 불기에 올리고,내용이 좋지않으면 바깥에 있는 나무에 매달고 다시 지장보살 3천독을

하고 새로 뽑아라고..염불을 많이해서 그사람이 지어놓은 업장을 녹이는 방법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에 여행을 하다보면 여기저기 나무에 리본을 매단 모습을 보게되는 데 안좋은 거 매달아 놓은 겁니다.

그러면 스님들이 한꺼번에 풀어서 불태우기도 하는데, 우리는 좋은 것은 부처님 앞에 올리고,나무에 매달아 놓은 나쁜 것은

회향하는 날 위패와 나무를 들고 전부 소각할 겁니다.

결국 염불시키는 방법인데 그래도 점찰법회만 하기보다 산신대재도 함께 한다 -우리나라 큰절에서 산신대재를 지내기

시작한 곳이 우리나라 5악 가운데 중악,계룡산 밑에 있는 공주 신원사입니다 - 

사실 산신대재는 토속신앙입니다..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민간토속신앙으로서 산신과 용신과 칠성을 섬기던 것이

불교가 들어오면서 백성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전통사상이라든가 민간토속신앙을 부정하지 아니하고 융화,포용..

불교는 아니지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함께하게 되었어.

.

염불이라 것은 하면 하는만큼 업장이 소멸되고,업장이 소멸되면 모든 재액도 소멸되요.

그래서 염불하는 방법을 최초로 쓴 분이 근세에 천태종을 창교하신 박상월스님..그분은 원래는 스님이 아니고 도꾼이야..

정읍에서 차경식이 도천교를 믿다가 교주가 죽고 나서 도꾼들은 모두 흩어지고 박상월스님은 속리산 법주사에서 

문경 청화산 원적사 석교율사의 제자 복수자의 상좌가 되었다. 늦게 출가를 하여 강원에 들어가 경전을 보고 염불을 하고

이력을 보기가 어려우니 그 스승되는 복수자께서 상좌 박상월스님에게 법화경 한 질을 주면서 '너는 이것으로 너 평생의 살림살이로

삼고 열심히 독경을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상월스님은 탁발승으로 법화경을 읽고 생활하다가 소백산 영축면 백자리에

초막을 짓고 머물게 되었어... 6.25 전쟁 피난민들이 남한강 상류의 동강을 건너 산속으로 들어가던 중 한스님이 초막을 짓고 계시니 그들도

부근에 초막을 짓고 같이 생활하는 동안 휴전이 될 때 까지 피해를 입지않았던 거야..그 사람들이 생각을 하니까 '참 도인이구나..얼마나

큰 도인이면 전쟁도 피해 가는구나' 그렇게 도인이라고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자꾸 모여들기 시작을 하는거야. 당신이 배운 거 없고 아는 거

라고는 법화경 뿐이라..법화경 28품 중 25품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가지고 교화를 하기 시작했어..사람들에게 '관세음보살 해라 '

그 양반이 염불을 시키는 방법인거야..날짜를 정해주고 무조건 염불하라고...

무조건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니 안되던 일이 되고,아프던 것이 낫고,막힌 일이 풀리고 ..그렇게 되는거야.

 

지장신앙하는 사람들은 염불시키는 방법이 뭐냐..점찰법회야..최소한 10만독을 하고 간자를 뽑아보고 나쁜 것이 나오면 업이 중한 사람이니

더 많이 염불하고 업장소멸 시키는 방법이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