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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200m 상공에 있는 카샤파왕의 아름다운 왕궁 라이온성 본문
- 라이온성 -
아버지 다투세나왕을 해치고 왕이 되었지만 큰아들 카샤파왕은 왕 보다 위에있는 스님들과 시민들의 시선,
동생의 공격이 두려워 아누라다 푸라에서 70㎞ 떨어진 시기리아 바위 위,200m 상공에 8년에 걸쳐 왕궁을 건축했다.
그 때 까지 바위 아래 석굴에서 수행하고 있던 스님들에게는 다른 수행처를 제공하고 그곳에 아름다운 물공원을 함께 만들었다.
그후 카샤파왕은 19년 동안 그 곳에서 살았지만, 형이 무서워 인도로 도망갔던 동생이 군대와 함께 돌아왔을 때 자살했다.
새로운 왕은 시기리야가 아닌 아누라다 푸라에 있는 아버지의 왕궁으로 돌아가면서 다른 곳에 있던 스님들에게 다시금
라이온성 아래 석굴에 수행처를 마련해 주었다.
그 이후 카샤파왕이 살았던 라이온성에 많은 사람들이 500년 동안(5~10세기) 아름다운 벽화와 라이온성,그리고 공원을
보기위해 찾아왔다가 그 소감을 노래와 시로 '미러월'에 3천개 이상 남겼다.
하지만 10세기에 졸라왕국의 공격으로 아누라다 푸라로 사람들은 옮겨가 시기리아는 잊혀졌다.
1,800년대 영국 사람들에 의해 시기리아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오르내리는 사람의 모습이 나와는 상관없는,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느껴져서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
사자 발톱 2개
그 당시에는 사자 얼굴 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무너지고 양쪽으로 사자 발톱만 남아있다.
사자 입에 라이온성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남아있는 사자발톱은 진짜 무섭게 생겼다.
우리도 사자입으로 난 계단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금전에 올라왔던 길을 힐끔거리며 그렇게 가는 길은 나름 왕궁으로 오르는 가장 난이도가 있는 구간이라
벌벌 떠느라 사진 찍을 엄두가 안났다.
드디어 왕궁에 올랐다.
하늘 있는 왕궁은 스리랑카에 하나 밖에 없다.
200m 상공의 사방이 툭트인 왕궁의 남쪽 광장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리고 가운데 3층이었던 왕궁의 가장 높은 곳에 남아있는 돌 위에 서서 기념 사진 남기는 사람들.
나도 한귀퉁이에 자리잡았다 이렇게....
잠시 땀을 식히며 물도 마시고 주전부리도 나눠먹으며 사방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이 높은 곳까지 엄마는 애기도 데리고 올라왔네...
하긴 여기와야 뭐든 얻어먹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있는 거지.
부의 신,쿠베라의 왕국을 재건하려했던 카샤파왕은 아름다운 정원과 인공연못,분수 등에 필요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저수지로 부터 파이프를 연결하고 바위를 뚫어 수로를 만들었다.
메마른 바위산 위에 수영장이라니....
날마다 아래에 사는 여자들이 올라와 춤을 추고, 그것을 관람하던 카샤파왕의 돌의자가 지금도 남아있다.
다시 사자 발톱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올라가던 길과는 조금 다른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다.
또다시 처음 보는 것 처럼 풍경에 취해 ...
올라갈 때 지나갔던 카샤파왕의 '미러월'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리고 벽화가 있는 동굴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도 보였다.
왼쪽의 바위에 붙어있던 오른쪽 바위가 바닥으로 떨어진 위에 예전에는 스님들의 회의실이 있었다.
그 틈으로 난 길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스님들이 수행하시던 석굴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다.
누군가 소리쳤다.
'와~코브라다'
진짜 Cobra Hood 로 그 아래에도 스님의 석굴이 있었다.
이 정도의 공간이라면 스님들께서 모여서 토론을 벌였을 수도 있었겠다고 상상해 봤다.
솔찍히 말하면 인도의 순례지 마다 발걸음을 붙잡던 수많은 아이들과 잡상인들에
마음이 편치않음은 물론 나중에는 두렵기 까지 했는데 스리랑카에는 전혀 그런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시기리야는 스리랑카의 대표적 관광지다 보니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고
이런저런 자잘한 물건들을 들고 다니며 파는 청년들도 만났다.
점심을 먹으러 예의 'hotel'이라고 적힌 이정표를 따라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면
생각지 않은 모습의 'hotel' 건물이 있고,더러는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는 한쪽 귀퉁이에
우리를 위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곤했다.
항상 그 'hotel' 입구에는 우리들을 반겨주는 사랑스러운 꽃들이 있었다.
인도 순례여행에는 우리의 식사를 위해 세프 군단이 밥솥까지 들고 따라다녔지만
이번 여행에는 사전에 음식이야기가 전혀 없어 조금은 걱정이 되었는데,
지금도 스리랑카 음식의 정체성은 모르겠지만 야튼 항상 우리가 먹을 수 있을만한 음식들이
같은 재료의 한계 내에서 모습만 바뀐 모습으로 우리 앞에 놓여졌다.
그래서 여행 후 묻는 이에게 최소한 내게 스리랑카는 음식에 불편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hotel입구에 있던 열대의 분위기에 꼭맞는 분위기의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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