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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엽경을 찾아서 마탈레Matale 알루비하르 석굴사원 본문

♥ 그들이 사는 세상/아드레이 스리랑카

패엽경을 찾아서 마탈레Matale 알루비하르 석굴사원

lotusgm 2018. 2. 4. 11:46

 

 

 

 

 

여행 다섯째 날 아침.

이제는 불치사에서 부처님 치아사리함을 친견한 행복한 경험을 가슴 한편에 훈장처럼 달고 다닐테다...

사실...햇살 아래로 드러난 불치사 전경도 한번쯤은 보고싶을 만하지만

그런 관광객적인 욕심 따위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음을 알아챘다.

 

 

캔디에서 북쪽으로 26㎞ 떨어진 마탈레에 있는 알루비하르 석굴사원 입구에 도착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의 모습에 감탄 하는 사이에

 

 

 

 

 

모두들 다른 방향으로 들어가길래 따라갔더니

 

 

 

 

 

기념품 가게들 사이를 지나고

 

 

 

 

 

예쁜 꽃장사 할머니 좌판을 지나자 보이는 ..화장실로 가는 거 였다.

 

 

 

 

 

부처님 열반하신 후에 인도에서 1,2,3차 결집이 있었지만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았던 것을

기원전 1세기 때 14년 동안 스리랑카에 오랜 가뭄으로 대기갈이 들어 인도로 피신했던 스님들이 돌아오고

스리랑카에 남아있던 스님들과 모두 500명의 스님들이 이 알루비하르 석굴사원에서 세계 최초로 7년에 걸쳐 

부처님 설법 경,율,론-삼장을 나뭇잎(패엽 Pattra))에 기록화 하면서 4차 결집을 하였다.

 

그 때의 최초* 패엽경은 영국사람들이 불태워 버려서 지금은 없다.

1815년 스리랑카를 식민지화한 영국사람들에 대항하기 위해 담불라 석굴사원에서 출발한 스리랑카 군대와

캔디에서 담불라 석굴사원 쪽으로 가던 영국 군대가 마탈레 알루비하르 석굴사원 앞에서 충돌해 치열한 전쟁이 있었고

그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 군대는 사원에서 스리랑카 군대를 도와주었다고 생각하고, 사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대부분의 패엽경은 영국으로 가지고 가고 두개의 법당과 함께 남은 모든 것은 불태워 버렸다.

 

*패엽경 -고대 인도에서 종이 대신 나뭇잎에 쓴 불경의 한 형태.

범어 패다라(貝多羅), 즉 나뭇잎이라는 뜻에서 온 말로 패다(貝多), 또는 패다라엽(貝多羅葉)이라고도 한다.

패다라는 범어 ‘Pattra’의 음사로서 특정한 식물을 가리키기도 하나, 흔히 일반 식물의 잎 또는 필사용 나뭇잎이란 뜻으로 쓰인다.

종이가 생산되지 않던 옛날 인도 등지에서 종이의 대신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가장 좋은 재료는 다라(多羅, tala)나무의 잎이다. 불교의 삼장(三藏)의 경전은 흔히 이 다라나무의 잎에 썼다.

그러므로 일설에는 패는 잎이라는 뜻이므로 다라나무의 잎을 패다라라고 한다고도 한다.    - 한국민속문화 대백과사전에서 발췌-

 

1983년에 알루비하르 석굴사원의 전주지스님의 주재로 스리랑카에 있는 사원의 주지스님들이 모여서 옛날 방식대로

다시 한번 부처님 삼장을 패엽에 기록화 했고 그 때 그 패엽경을 지금 알루비하르 석굴사원 도서관에 모시고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영국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알루비하르 석굴사원에 두개의 법당과 종루를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오래전 영국으로 빼앗아간 패엽경을 영국의 학자가 연구하여 세계적으로 부처님의 패엽경이

알려지게 되고 전세계적으로 알루비하르 석굴사원도 유명한 곳이 되었다.

 

 

 

 

 

스님 한분이 나오셔서 일행들을 맞아 주셨다.

 

 

 

 

 

사원으로 들어서지 않았으니 아직은 신발은 신은 채

한 손에는 공양 올릴 꽃을,한 손에는 항상 열일하는 셀카봉을 들고 계단을 오른다.

 

 

 

 

 

 

 

 

 

멀리서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던 하얀 건물은 알루비하라 석굴사원의 도서관으로

패엽경을 기록한 비밀을 알 수 있는 곳이다.

 

 

 

 

 

건물 귀퉁이에 신발을 벗어두고 먼저 석굴사원이 있는 곳으로 갔다.

왼편에 보이는 건물이 알루비하르 석굴사원이다.

 

 

 

 

 

바위를 파서 초공양 하는 공간을 만든 그들의 정성과 아이디어에 고개 숙여졌다.

 

 

 

 

 

 

 

 

 

그래서 초 올리고 기도하는 줄 알았더니 사진을 찍고 있네....

 

 

 

 

 

석굴 사원 안으로 들어서자 정면의 부처님 열반상과 주변으로 빈틈없이 벽화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열반상에서 볼 수 있는 부처님께서 베고계신 것을 무엇이라고 하면 되는 지 모르겠지만,

항상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로 잘못 본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봐왔던 대부분의 둥굴 벽화는

바위면에 흙을 바르고 그 위에 하얀 산호 가루를 덧바른 후 마르기 전에 자연에서 체취한 물감 등으로 그림을 그린 프레스코화, 

산호가루가 마른 후에 그림을 그린 템페라화로 나뉘어졌는데, 이 곳 벽화의 다분히 보수작업 중에

요즘의 페인트 등으로 마무리한 듯한 색감이 두가지 벽화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문화 유산을 유지 보수하는 작업은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전쟁에서 이긴 영국군이 불태워 버린 법당 대신 나중에 두개의 법당과 종루를 세워주었다더니

딱 시골 교회에나 있을 법한 종루의 모습이네.

 

 

 

 

 

기원전 3세기 때 부터 많은 스님들이 비어있는 석굴에서 수행하고 계셨다는 알루비하르 석굴사원.

 

 

 

 

 

 

 

 

 

 

 

 

 

원래 14개의 석굴사원이 있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2곳만 남아있다고 한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불탑으로 올라가는 길.

 

 

 

 

 

그들의 보리수를 훼손하지 않은 채 불상을 모신 작은 불당을 만든 정성도 놀랍다.

묘허큰스님께서도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보셨다.

 

 

 

 

 

바위 틈 좁은 곳곳의 작은 법당에도 불상을 모시고.

 

 

 

 

 

멀리 자연 바위 위에 모신 부처님 그리고 그 바위 아래 법당이 있다.

 

 

 

 

 

불족.

 

 

 

 

 

 

 

 

 

 

 

 

 

 

 

 

 

 

 

 

 

 

 

 

 

 

 

 

 

 

 

 

 

패엽경을 만든 비밀을 직접 보러 사원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있는 종각에는 반갑게도 우리나라 종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알루비하르 석굴사원의 현 주지스님께서 스리랑카 최초로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이라 한국과의 인연이 깊으신 듯 하다.

 

 

 

 

 

 

 

 

 

 

 

 

 

스님 한분이  패엽경을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셨다.

나뭇잎(패엽)을 종이처럼 만들어 그 위에 철심으로 글씨를 쓰고 숯가루를 발라 글씨 쓴 부분에 스며들도록 한 후

다시 그 위에 콩가루를 문질러 다른 부분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면 숯가루가 들어간 글씨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묘허큰스님께서 패엽경을 만든 방법으로 스님들이 직접 만드신 북체커를 모두에게 선물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요즘 자주 볼 수 있는 우리나라 궁궐 뜰을 거닐고 있는 한복 차림의 그녀들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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