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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망제동 석불입상 본문
2018년 1월14일 묘허큰스님과 함께 마애불순례...회향하던 날...
연일 악명높은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는 날...이라고는 하지만 그동안도 이런저런 악재가 예보되어 있다고 해도
한달에 한번 떠나는 마애불순례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새벽에 집을 나섰었다.
때로는 첫차가 운행되지 않는 날에는 살 떨리는 택시비를 감수하기도 하고,집합 장소인 안양까지 가는
가장 이른 버스가 출발하는 사당역까지 30분 새벽길을 걸어가기도 했었다. 그것도 혼자...
어른스님께서 당신 '기력이 다할 때 까지 마애불순례는 계속하시고 싶다'는 말씀에 선뜻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
마음을 굳히지 못한 시절을 지나 '저 역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음 결정한 그 날이 생각났다.
막상 회향하는 오늘..어쩜 밤새 그러했을 것 같은 미세먼지 만큼이나 여러 생각들을 주워들고 막막한 새벽길을 나섰다.
가는 내내 모든 공간을 꽉꽉 메운 미세먼지.
거기는 어디고 여기는 또 어딘지...
정읍 I.C로 들어와 또 얼마를 달리다가 '녹두교'를 건너고
다리 끝에 잘 보이지않는 이정표따라 왼쪽으로 들어선다.
아무리 봐도 커다란 버스가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날씨에 2㎞ 넘는 길을 걸어들어 가야한다는 게 선뜻 내키잖아서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걷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동참한 승용차가 먼저 올라가서 상황을 알려주기로 했으니 작정이 생기겠지...
오른쪽 길은 걷기에 조금 가까운 길,
왼쪽 길은 공사장으로 가는 트럭들이 들락거리는 길.
(나중에 알고보니 두 길이 만난다)
어디로 가야할 지 잠시 망설이는데 염탐팀의 연락을 받았는 지 버스가 들어가겠다고
다시 올라 타라 한다.
사실, 내 마음은 그랬다.
이 정도의 길이면 차가 들어가든 아니든 고민 하느니 부지런히 걸어도 무방한데...
아니나다를까 골목 끝에서 저 논둑길로 들어가려면 각이 안나온다고 버스기사가 난색을 표하고,
그러면 왔던 길을 후진으로 빠져나가야 하는 건지...어정쩡하게 멈춘 버스를 남겨두고
뒤꼭지가 불편한 상황이지만 우리는 일단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논길 막다른 곳에 우리가 가야할 석불입상 표지석과 함께
여산(礪山 宋) 송氏 문중산인지 표지석도 서 있었다.
10여분 걸었다.
집들 사이로
주변이 잘 정리된 석불이 눈에 들어왔다.
도착하는대로 석불 앞에 자리를 펴고 새벽부터 정성껏 준비한 마지와 공양물을 올렸다.
망제동 석불입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8호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삿갓형 원형 寶蓋보개를 쓴 모습이
불경스럽게도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나들이 나온 음전한 아낙네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봐선지 좁은 어깨와 우아하게 파진 목덜미도 참 곱다.
옆모습은 그 동안 봐왔던 그 어떤 석불 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수령이 꽤 된 듯 보이는 느티나무 아래 서있는 석불은
보기드물게 보존 상태가 좋다.
옆에 시자처럼 거느린 앙증맞은 석등 역시 처음부터 같이한 것인 지 알길은 없지만
잘 어울려 보인다.
둥글게 둘러쳐진 돌 담 위에 나무 울타리도 있다.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구조물이 없어서 보기에 안정감이 들었다.
망설이다가 돌담 위로 석불의 뒷편으로 올라갔다.
석불 건너편에 보이는 집에 살고있는 여산 송씨 문중에서 자기 땅에 있는 석불이라서 잘 관리하고 있다고
굳이 공치사 하지 않아도 지방유형문화재인데 이 정도는 관리되어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오신 대전의 비구니 스님께서 예참을 시작하셨다.
곧이어 묘허큰스님께서 도착하시고
그리고 항상 하는 축원이지만 개개인 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우리가 마애불순례를 몇년 동안 다녔는데,아직 댕길 곳이 많아요...
나는 우리나라에 마애불,석불좌상,석불입상이 이렇게 많은 줄은
마애불 공양 댕기면서 알았지 미처 몰랐거든요.
한평생을 다녀도 다 못댕기는데 이제부텀 나는 혼자 살살 참배하러 댕길라꼬 ...
그러고 이제 초열흘에는 방곡사 달력에도 표시해 놨지만도,방곡사 보궁에 참배하고 공양을 올릴 챔이니까 여러분들은
동참할 건지 각자 결정할 일이고 나는 매월 초열흘날에는 보궁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할 작정입니다.
우리 사리탑이 있는 곳에 올라가면 사방이 참 좋습니다...
사실 탑 속에 모신 사리가 도난 당할까봐 영원히 꺼낼 수 없도록 바위 속에 사리를 안치했습니다.
설악산 봉정암에도 사리탑에는 사리가 없어요...자장스님 당신 혼자만 아는 곳에 사리를 안치한 후 아래로 내려와
'세존 진신 사리탑'이라고 친필로 써놨는데 봉정암에서는 그것 조차도 안보여 줍니다.
오세암 쪽으로 넘어가다가 고개 높은 곳에서 봉정암과는 반대쪽에 자장스님 친필이 있는 봉정암 바위 전체가
탑이라는 거야...대회참에도 보면 '천진보탑'이라고...나 역시 그것을 보고 탑이 아닌 산 속 바위에 모셔놨어.
-묘허큰스님 법문 중에서-
큰스님 추우실까봐 걱정하는 보살들에게 득템한 모자 자랑도 하시고...
수인은 오른손은 여원인,왼손은 시무외인 경우 여원시무외인 혹은 통인이라 칭하기도 한다.
(시무외인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공덕을 표하는 수인,여원인은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하는 공덕)
통인은 삼국시대의 석불에서 자주 발견되는 양식인데 반해 안내판에는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측하는 것을
보면 불확실 하거나 억지하자면 삼국시대 말에 조성된 불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큰스님께서 공양물을 골고루 나눠주셨다.
공양물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았던 석불의 두발.
참 어이가 없다.
두 발이 가지런히 놓인 좌대 위가 아닌 완전히 빗나간 곳에 석불을 세웠다.
어쩌면 파불 보다 더 안타까운 모습이라니...
아...안타깝다...
석불의 두발이 자꾸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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