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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단양 방곡사 개원기념법회 묘허큰스님 법문 --"우리의 본래 면목은 영원불멸하다" 본문

방곡사 가는 날

단양 방곡사 개원기념법회 묘허큰스님 법문 --"우리의 본래 면목은 영원불멸하다"

lotusgm 2022. 10. 18. 21:55

 

 

 

 

 

 

생본무생(生本無生)이요

 멸본무멸(滅本無滅)이면

생멸본허(生滅本虛)하여서

 실상상주(實相常主)하느니라.

 

나.무.아.미.타.불.

 

 

오늘이 음력으로 구월 스무날인데, 매월 스무날은 방곡사 정기법회인 동시에 특별히 오늘은 방곡사 개원 기념일입니다.

왜 스무날은 정기법회로 정했느냐 하면 옛날 노스님들, 상좌가 여럿 있으면 생일 얻어 잡수러 여기저기 상좌들 주석하는 절로 오가시는 것을 봤어요. 그런데 나는 안돌아다니려고 내 생일을 개원기념일로 정해서 1998년 9월 20일에 처음 개원식을 가진 후 햇수로 25년 됐습니다. 오늘은 아마 코로나 이후로는 법당에 가장 많은 분들이 모인 것 같네요...생각지도 않았는데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전에 여러분들에게 일러준 말은....생일이란 본래 없어요, 우리 뭣하러 이 세상에 태어나? 죽기 위해서 태어나는 거야, 무생이면 무사야...안났으면 안죽거든? 났기 때문에 '반드시'라는 조건이 따라요, 났기 때문에 '반드시' 죽게 되어 있어요. 불교의 진리를 알고보면 생본무생(生本無生)입니다. 태어나도 물질적인 육체, 이 몸뚱아리가 태어났지 우리의 본래 면목 자성, 참 나 나의 주인공은 육체와 함께 태어나지를 않했어요. 여러분의 본래 면목이나 나의 주인공이 시작없는 옛적부터(무시이래) 오늘까지(시우금생) 그때부터 성성적적하게 존재했고, 우리는 불법을 만나서 내가 나를 구제하고 재도해서 생사윤회를 해탈하지 못했기 때문에 육도를 전전하면서 윤회전생하다가 오늘 여기까지 왔어요. 그러니 하염없는 옛적, 시작없는 옛적부터 우리는 성성적적하게 존재했지만 생과사로 가는 것은 육체 껍데기 한번씩 바뀌는게 바로 生이고 死야...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나고 죽음은 입은 옷 떨어지면 새옷 갈아입는 것과 똑 같아요. 옷은 헌옷 보다 새옷 좋지요? 똑같은 새옷이라도 어떤 옷이 좋으냐? 돈 많이 준 옷이 좋겠지요? 그런데 돈이 없어 못사 입는 사람이 있어. 그러면 돈은 또 무엇이 좌우하느냐? 여러분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근검절약해서 살림을 잘 살아서 경제가 융통이 되어야 입고싶은 옷도 내 맘대로 사입을 수 있어요. 그와같이 우리가 '나'라고 믿고있는 박 아무개 이 아무개 이름 붙어있는 지수화풍 사대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이 몸뚱아리도 옷입니다. 내 영혼이 덮어쓰고 있고 참 나의 주인공이 걸치고 있는 영혼의 의복이 육체야, 그 육체 한번씩 바뀌는게 生과 死야. 부모를 인연하여서 이 몸을 받아 태어남을 生이라고 하고, 쓰다가 낡으면 벗어던지고(死) 새 육체의 주인공으로 이사가는거지...그러면 더 좋은 몸 받으러 가는건데...이런 이치를 알면 (태어)나도 기쁠게 하나도 없어, 왜? 죽기위해 났잖아, 무생이면(안났는 사람은)  무사야(절대로 죽지 아니하고), 태어난 몸뚱아리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어... 그래서 불교에서는 생은 사의 근본이요,死는 생의 근본이라...또 새로운 생이 시작되는 계기가 死야...그러면 헌육체 벗어던지고 새육체 갈아입으러 가는데 죽는 것이 하나도 슬플게 없어요. 불교 아무리 믿어봐도 공부 안하면 헛일이야...그 누구도 어김없이 가게 되어 있어요, 가도 태어남이 있었던 육체가 돌아가는 것이지 육체와 함께 나지아니한 우리 본래 면목 자성은 육체와 함께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불법을 알면 생본무생(生本無生)이야, 나도 물질적인 육체가 죽기 위해서 난 것이지 물질이 아닌 나의 본래 모습은 육체와 함께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멸본무멸(滅本無滅)이라...생멸본허(生滅本虛)하여서, 나고 죽음이 본래 실다움이 아니고, 나고 죽음이 본래 없는 이치만 알면 돼요. 그 이치(불생불멸)를 모르면 스님해도 소용없고, 불교 믿어도 소용없고, 갈 때 쯤 되면 일초일각이라도 더 살고 싶어서 생에 얽매여 살려고 발버둥칠라고 하는 그 마음이 또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살게 되어있어...그래서 불교를 믿고 수행하거들랑 죽을 때 만이라도 생에 대한 집착을 툭! 끊어버리고 여행 가듯이, 여행 갈 때 들뜨지요? 몇일 다녀오는 여행도 설레는데 우리가 인간세상으로 여행 올 적에 알지 못하는 미지의 시계 여행가는 것과 같이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가야지...

 

오늘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나는 제일 부끄러운 게 생일을 맞이해서 축하한다 카면서...물론 나한테는 축하해도 되요, 인생이 즐거웁고 항상 즐겁게 사니까...인생이 감사한 사람은 축하해도 되지만 인생이 괴롭고 힘들고 고통받는 사람한테 생일을 축하하는 것은 안태어났으면 저렇게 고생도 안하고 괴롭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을낀데 태어났기 때문에 고통스러운데 축하할 일이 뭐있겠어? 어렵고 힘든 사람한테 생일 축하 하는 것은 그 어렵고 힘든 것을 축하하는 것 밖에 안되잖아? 축하받을 일이 없어요 사실은...인생 행로에는 고저장단(高低長短)이 있어요, 평탄하게 살 수 없는 것이 인생 여로야. 그런 이치만 알아도 어렵고 힘들 때는 아~ 내 인생에 오르막을 만났구나, 오르막을 오르면 언젠가는 정상에 닿고 정상에 오르면 내리막도 있다...현실에 만족하고 하고있는 일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하루하루 후회없는 인생을 살려고 노력하면서 하루도 그냥 보내지 말고 하루 해가 지거들랑 잠자리에 들기전에 내가 나를 돌이켜 비추어 보고(회광반조 回光返照) 내가 불자라는 이름으로 오늘 하루도 불자다웁게 후회없이 인생을 살았는가 한번 돌이켜 보고 잘못 된 것이 있으면 내일은 절대로 이렇게 안살아야지 하고 스스로 다짐하고, 그것이 원願입니다...다른 것이 원이 아니고 목표 계획 이 원이라...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만족하면 행복하고 만족하지 못하면 불행한 인생이다, 현실에 만족하면 돼, 만족이 최상의 행복이야. 

 

조금 전에 이야기했지만 나는 축하받아도 되지만 괴로운 사람에게 생일 축하하면 안돼...괴로움과 고통을 축하하는 것 밖에 안되지? 그래서 오늘도 (내 인생은 즐겁지만 )나도 축하받을 일이 없다. 이 몸뚱아리는 언젠가 죽어야 하기 때문에...죽기 위해서 태어났으니까...지금도 우리 방곡사 법당에 머물고 있지만 째깍째깍 시계 초침소리와 함께 우리 인생은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죽음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이 육체 벗어던지고 가야되요. 그래서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 것은 영육이 물질적인 육체와 정신적인 영체가 동시에 공존함으로서 살아있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영육이 여의는 순간, 물질적인 육체에서 정신적인 영체가 이탈해 떠나가는 순간에 육체 생이 끝나요, 그러면 이것은 아무 쓸모없는 나무둥치 목석과 같은 송장이야...육체를 이탈한 영체는 육체없이 얼마를 머무르느냐, 99.9%는 49일이면 새로운 육체의 주인공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어머니 자궁 속에 수태가 되요, 그 속에서 육체가 전부 형성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까지를 生有라 그래요, 태어나고 나면 한평생 사는 것을 本有...오늘의 내 인생을 누가 준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받은 것도 아니고, 누가 보내줘서 온 것도 아니고 내가 오고 싶어 온 것도 아니야. 숙세(전생)에 지어놓은 업 때문에 그 과보를 받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올 적에 과보받을 수 있는 육체를 부모님께 얻어서 왔어요. 그래서 우리가 육체를 말할 적에는 '내 몸'이라고 하지 '몸 내'라고 하지 않지요. 육체 자체가 나 일 것 같으면 '몸 내'라야 하잖아...그런데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몸 내'라는 사람은 없고 '내 몸'...내가 가지고 있는 몸뚱아리지 나는 아니다... 인생을 왜 본유本有라고 하느냐? 오늘의 내 인생은 누가 준 것도 내가 받은 것도 아니고 내가 지어온 나의 업에 의해서 부귀빈천과 희노애락이 좌우돼, 본업에 의해서 이루어진 인생이다 그말이야. 그래서 과거 전생에 내가 일으켰던 생각의 그림자가 내 몸뚱아리이고 오늘의 내 인생이야. 그 생각을 꺼트려 버리면 죄도 복도 없는데 마음 속으로 결정해서 행동으로 옮기면 업이 되는거라. 그 業을 緣이라 그래요...한생각 일어나는 것은 인因이 되고, 그것을 마음 속으로 결정짓는 것부터 시작해 행동에 옮겨 실천하는 것까지를 작의作意라고 하는데 이것을... 緣이라 그래요. 연은 생각의 반연이기 때문에 오늘의 내 인생이여. 그렇게 업을 지어놓으면 과果를 받게 되요(因緣因果). 오늘 여러분들 방곡사에 왜 왔나? '코로나 때문에 못왔었는데 오늘 스님 생신이기도 하니 법회에 참석하자' ...여기서 '참석하자' 는 생각이 오늘 방곡사 법당에 앉은 원인이야, 그 마음을 결정지어서 집에서 나와 차를 타고 먼길을 왔어, '내가 참석해야지'하는 생각의 반연이기 때문에 연緣이라 그러고, 因은 緣의 반연에 의해서 반드시 果를 낳게 되어 있어...그래서 여러분들이 법회에 참석해서 나와 만나는 결론을 낳았어요. 어렵게 생각해서 그렇지 바로 이것이 인연인과因緣因果 입니다.

 

아까 처음에 일러준 것은 49재 지낼적에 대령 관욕할 때 영가에게 일러주는 법문 중에 하나입니다.

생본무생(生本無生) ...우리의 본래 모습은 태어나도 난 바가 없고 

멸본무멸(滅本無滅)...죽어도 죽는 바가 없어,

생멸본허(生滅本虛)...나고 죽음은 (육체의 생사는 있지만) 본래 실다움이 없고 본래 존재하지 아니해요.

 실상상주(實相常主)...우리의 본래 모습 자성(실상)은 상주합니다.

그러니 태어난 바가 없는데 무엇을 축하하고, 죽은 바도 없는데 괴로워할 바도 없어요.

 

살고 죽음을 네 단계를 경유하면서 육체 한번씩 바꾸는게 生과死 라...한평생 살다가 나도 언젠가는 죽거든? 죽는 순간이 영육이 여의는 순간, 콧구멍 속으로 들어간 바람 기운이 코 밖으로 못나오는 순간에 육체의 생명이 끝나...그러고 어느 정도 머무느냐, 생사해탈을 하지 못한 죽은 자의 99.9% 정도는 49일이면 윤회전생을 다하고 남은 00.1%는 백일 내지 소상, 대상까지 가요...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빈소에 혼백을 대상 때까지 모셔놨다가 탈상을 했는데 일반 사람들이 보자면 유교에서 나온 것으로 알지만 불교의 시왕사상 입니다. 고려에서 이조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유교로 전해진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49일까지 7재(7대왕재)가 끝나요...100일 지나면 제8대왕재, 소상에는 제9대왕재, 대상(햇수로 3년째)에는 제10대 전륜대왕재...보통 7재에 끝나요. 그러면 우리 조상들은 이미 태어나고 없는데 왜 영단에 이름 올려놓고 기도하느냐...저 이름으로 계셨을 적에 지은 업 닦아주는 것이 천도재 입니다. 그래서 전생에 지어와서 우리가 업을 받고 있어요.

지금도 남아있는 업은 죽을 때 까지 닦아서 좋은 업은 남김없이 염라대왕 업경대에 다 비추어져서 (새로 태어나 있는 몸)금생에 행복으로 반영되게 해주시고, 아직 받지 아니한 나쁜 업은 받기 이전에 미리 닦아 소멸시켜주는 그것이 천도재 입니다. 

 

영단에 이름있는 조상님들의 이름으로 중음중신들에게 법식을 베풀어 먹이는 시식施食, 그런데 누구에게 배풀어 먹이느냐? 사람이 죽는데 90% 이상이 명 남겨두고는 못죽고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끝나면 가는)종연생종연멸이야...그런데 나머지가 명 아닌 명에 못다 살고 비명횡사하는 수가 있어, 그러면 명이 남았기 때문에 염부에 가서 7재를 받아서 윤회전생을 못해요. 새로 나려해도 육체가 없어 남겨 놓은 육체만큼 떠도는 것을 중음신이라 그래요, 중음신은 육체가 없으니 먹을 이유도, 입을 이유도 없는데 육체를 가졌을 때 먹고 입던 습 때문에 기한기갈을 못면하는 겁니다. 중음신을 이 도량으로 천도재나 시식을 할 때는 부처님의 가피로 사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불러 들이는 거라...영가들이 공양받으러 올 때도 육체가 없기때문에,일보증부동 一步曾不動 내향수운간 來向水雲間 한다...한 발자국도 일찍 움직이지 아니하고 물이 있어도, 구름이 있어도 물과 구름 사이로 기도아련냐 했다...기도아련야 旣到阿練若입실예금선 入室禮金仙이미 아련냐에 도착했거든 입실해 밥을 얻어 먹으라 ...그 말이야. 육체가 없으니 저 음식을 못먹어요...육체가 있을 때는 물질적인 음식을 먹는데, 차려놓은 음식은 영가들이 먹을 수 없으니 부처님이 설해 놓으신 네가지 진언 다라니를 해요.첫째 (밥이 변해서 법식이 되는)변식진언, 둘째 (물이 변해서 감로차가 되라는)시감로수진언, 법식은 형체가 없어, 견문촉식이라 들어도 배가 부르고, 봐도 배가 부르고 느껴도 배가 불러, 한량없는 물이 되어 (영가들이 먹으면 배가 부르다고 느껴지게 하는 젖으로 변하는)유해진언, (먹고 목이 메이지 않게하는) 일자수륜관진언을 해서 물레방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 듯 영가들 목을 적셔주게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귀신들이 다 먹으라고) 시귀식진언을 하거든? (귀신들끼리 차별하고 싸움할까봐 차별없이 먹으라는) 시무차법식진언을 한 뒤로는 (영가들이 밥을 먹으라고) 보공양진언 다음에 수발하고 (이제 공양끝났다는)보회향진언, 그럴 때 시식법문(시식게)을 일러줘서 한 생각 돌이킬 수 있도록...수아차법식은 하이아난찬(受我此法食 何異阿難饌) 이겠느냐, 내가 오늘 영가들에게 배푸는 법식은 부처님 당시에 아귀들을 제도하는 법식과 어찌 조금인들 다르겠느냐. 기장함포만飢腸咸飽滿 하고(주린 창자가 가득채워지고)업화돈청량業火頓淸凉(활활 타는 업의 불길을 시원해지면) 돈사탐진치(마음에 도사리고 있던 탐진치 삼독심을 없애버려라) 삼귀불법승頓捨貪嗔癡 常歸佛法僧하라...그러고 나면 항상 불법승 삼보에 귀의해서 염염이 깨달아서 생사윤회를 해탈해야 겠다는 보리심을 놓치마라, 염염이 보리심이면 처처가 안락국이다念念菩提心 處處安樂國. 참 멋들어진 법문이여...그런 법문을 듣다보니 난 죽은 줄 알았는데 아하!!! 생사간에 내가 여기 있구나...자기 성품을 바로 보게 되는 거지...견성見性이야, 스님들 공부하다가 성품 바로 보는 거 하고 같애, 그러면 재도가 되는 거라, 그러니 중음신들이 남겨놓은 명만큼 고통스러운 것을 시식을 통해 없애주고 해탈을 시켜주니 그 공덕이 우리 조상님들 태어나 있는 곳으로 간다는 말이야. 그러니 그 윗대 조상까지 천도를 하다보면 그 조상 속에 나도 있고, 내 배우자도 있고, 자식도 있고 그래...그러니 내 업을 미리 닦는 것이 천도재가 되기 때문에 (예수제를 따로 지내지 않아도) 預修예수가 되는 겁니다. 

 

오늘 이야기는 시식에 대한 것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지만... 우리는 본래 죽는 바도 없고 나는 바도 없어요, 육체만 나고 죽고, 육체 껍데기 이 옷 하나만 자꾸 바꿔 입는게 生과死 거든? 그러면 복을 짓고 죽은 사람은 내가 가지고 있던 육체 보다 훨씬 더 좋은 데 가서 사는데, 남아있는 생전에 인연있던 사람들은 못잊어서 괴로워 하는 거예요. 따져보면 괴로워 할 것 하나도 없어요. 내 곁에 와서 잘 살고있었지만 내가 몰라서 내가 낳아 준 육체가 없어졌다고 자꾸 괴로워 하지만 어디 새로운 부모를 만나 다시 태어나 사랑받고 내 자식으로 있을 때 보다 훨씬 더 행복할 지도 몰라요. 그런 이치를 알면 괴로워할 것도 없고 미리 잘 가서 좋은 세상 가서 잘 살고 있을 거다 믿고나면 괴로움이 덜해 지는 거야...

오늘은 내 육체 태어난 날이라고 생일 축하한다고 이렇게 많이 모였기 때문에...태어나도 언젠가 죽어야 될 물질적인 육체가 났지 묘허스님의 본래 모습은 묘허라는 이름 붙은 육체 껍데기와 함께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멸본무멸 이라

내가 갈 적에도 껍데기 육체가 죽는 것이지 참 나는 가는 바가 없다는 거야 . 그래서 생멸이 본허하면 생과 사가 본래 실다움이 아닌 이치, 본래 없다...우리의 본래 면목은 영원불멸하다는 이치만 알면 그 가운데 실상은 상주한다. 이 자리(실상) 하나 바로 보라, 실상이 바로 나의 주인공 '참 나' 입니다. 그것 하나 보면 끝나는 거야. 그래서 불교는 딴 종교와 다르게 내가 나를 구제하고 내가 나를 제도하는 종교이고 내 아닌 어느 누구도 내 대신 내 영혼을 구제하고 제도 시킬 수 없고 오직 내 일인 만이 제도하는데, 그 제도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절에 와서 법문듣고 공부하려고 발심하는 것, 자성을 바로 봐버리면 제도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스무날 하는 것은 우리의 전생 업을 닦는 것도 되고, 우리 조상의 은혜를 갚는 보은불사도 되고 내가 나를 위해 내 공부하는 것이 불교라는 것을 제대로 알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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