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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배치가 특별한 설봉산 영월암 그리고 유일한 상호를 갖추신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본문

아름다운 산사

가람 배치가 특별한 설봉산 영월암 그리고 유일한 상호를 갖추신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lotusgm 2023. 12. 10. 10:27

 

 

 

 

'설봉산' 정상에서 내려 오는 중이었다. 설봉산 초입에서 부터 '화계사' 이정표를 보고 어떤 절일지,

가 볼 수 있을 지 잠시 생각했었지만 내려오는 길에 어느 지점에서 부터 '영월암' 이정표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전각들...길이 워낙 험해서 발 아래만 집중하다가 그때서야

'영월암' 바로 위쪽에 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망설이지 않고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의 좁은 길로 들어섰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정작 경로가 아니면 산사 마당으로 들어서는 일은 없다.

궁금증과는 달리 마음을 다하여 절 방향으로 합장삼배를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당으로 내려서는 제일 아래 계단에서 멀리 눈길을 보내면

왼편 위로는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적광전, 그리고 옆으로는 삼성각,아래에는 종무소인 '안심당'이

오롯히 한 눈에 모여있다.

 

 

 

 

 

 

 

어쩔 수 없이 마당 가장 안쪽에 있는 특별난 모습의 수각인 甘露閣으로 먼저 발길이 향한다.

간혹 수각 현판에 甘露閣, 혹은 佛乳閣이라고 쓰여진 경우가 있는데, 지금도 사용하는 우물인지 모르겠지만

그 형태가 말도 못하게 특별해 보인다.

 

 

 

 

 

 

 

 

 

 

안내판이 없으면 도통 알 수 없기는 하지만 수각 옆이니 용왕단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특이하게도 등산복 차림의 산객이 합장을 하고 간다.

 

 

 

 

절에 발을 들여 놓을 때 부터 따라다니는 냥인데 눈빛 장난 아니다.

잠시 후 온식구를 불러 모았는지 도대체 고만고만하게 생긴 애들이 몇 마리인지...

 

 

 

 

대웅전을 중심으로 '아미타전'

 

 

 

 

그리고 맞은편은 종무소인 '안심당'

 

 

 

 

 

 

 

산 아래에서 차로 '영월암'으로 올라 올 경우 진입하는 길인 듯 하다.

 

 

 

 

 

 

 

은행나무 노거수 가지가 가르키는 곳에 이천시가 있다.

 

 

 

 

 

 

 

고려 공민왕 때 풍수지리에 밝은 나옹대사는 조선의 수도를 정한 무학대사의 스승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무학대사가 영월암에 머물던 어느 날,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 은행나무 자리에 꽂아 놓았다.(640년)

스님들과 신도들은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며칠 뒤 나옹대사는 절을 떠났고 지팡이에서 

싹이 나와 지금의 은행나무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힘을 싣고도 남는 은행나무의 위용이 엄청나다.

 

 

 

 

영월암 '대웅전'

이천의 鎭山인 '설봉산' 주봉 기슭에 자리잡은 '영월암'은,조선 영조 36년(1760) 이후에 편찬된 문헌에는 모두 '북악사北岳寺'란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그 이후로 '영월암映月庵'으로 불려오고 있다.

영월암 중건기에 의하면 1,300여년 전 신라30대 문무왕 때 의상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뒷받침할 만한 문헌이나 신빙자료가 없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경내에 남아있는 유물,유적 등의 조성연대로 미루어 영월암의 창건연대는 대략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까지로 추정할 수 있다.

 

 

 

 

절 마당에 내려 설 때 부터 눈길이 가던 마애불로 가기 위해 대웅전 옆 계단을 오른다.

 

 

 

 

 

 

 

 

 

 

보물 제822호 마애여래입상.

 

 

 

 

처음 마애불 앞에 섰을 때 생전 처음 보는 부처님 상호에 눈길이 머물렀다.

큰스님 따라 마애불순례를 그렇게 오랫동안 다녔지만 저런 모습을 한 마애불은 처음이다.

 

안내판에 '이 마애불상은 지정 당시 명칭이 마애여래입상으로 되었으나 머리가 민머리인 점과 옷의 형식으로 보아

나한상이나 조사상으로 확인되었다' 라고 쓰여있는 점과 무관하지 않은 상호의 머리 부분이 마치 잘려 나간 것 처럼

보이는 특이한 형태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모습이다.

 

 

 

 

 

 

 

마애불의 수인手印은 '전법륜인'이라고 추측이 되는데, '전법륜인'은 부처님이 처음 깨달음을 얻은 후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와 중생들에게 최초 설법하실 때의 수인이다.

(그렇다면 이 마애불이 지정될 당시 조사상이나 나한상으로 확인되었다는 안내판의 설명은 말이 안된다.)

 

 

 

 

얼굴과 두 손만 얕게 부조로 조각하였고 다른 부분은 선각이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 형식의 옷 주름은 몸 전체를 사선으로 휘감아 흐르고

왼팔을 돌아 내려간 가사 끝단은 단순한 옷주름과는 달리 지그재그 모양으로 마무리 되어 있다.

 

 

 

 

마애불 뒤의 나무들에 잎이 무성하면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하다.

 

 

 

 

 

 

 

 

 

 

 

 

 

 

 

 

 

 

 

마애불 뒷편으로 예전에는 올라갈 수 있었던 듯 대나무로 만든 계단의 흔적이 보인다.

사실, 올라갈 수 있다면 아래에서는 확인 되지않는 마애불 상호의  머리 부분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데...

 

 

 

 

올라갈 때와는 다른 쪽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바라 본 영월암의 가람 배치가 너무 인상적이다.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매장문화가 발견된 곳으로 해당 석부재는 전형적인 나말여초(羅末麗初)시기

석탑의 일부로 추정됨" 이란 '이천시청 문화예술과'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다.

 

 

 

 

 

 

 

 

 

 

 

 

 

 

 

 

 

 

 

 

 

 

꼭 다시 한번 인연의 끈을 따라 와보고 싶은 곳...영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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