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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영녕릉-- 세종대왕릉(英陵) 과 효종대왕릉(寧陵) 본문
입구의 '세종대왕역사문화관'.
입장권을 구입하고 QR코드로 체크하고 입장한다.
제일 먼저 지나가게 되는 곳이 '세종대왕릉광장'인데
이 곳에는 (물론 모조품이긴 하겠지만)세종대왕 때 만들어진 해시계 ,물시계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시계들이 너무나 신기해서 모두 담아보았다...언제 다시 볼 수 있겠냐며...
'英陵 재실'은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과 령이 지내던 곳으로,제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2006년,2017년 발굴 조사 결과와 조선 후기의 문헌의 기록을 근거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제향 시 제관을 대표해 잔을 올리는 재관인 헌관의 복식.
'제기고'에는 제향에 쓰인 제기를 보관해 두었다.
재실 건너편에 있는 '위토답'
위토는 제사나 관리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조성한 토지를 말하며 그 중 논을 '위토답'이라고 한다.
이 재실은 원래의 재실이 소실되어 1970년대 성역화 사업 때 현 위치에 삼문과 행랑, 재방 안채만 복원되었다.
'영릉 英陵'은 조선 4대 왕 세종(1397~1450)과 소헌왕후(1395~1446)의 능이다.
1446년(세종28)에 소헌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세종이 미리 정했던 자리인 헌릉(부왕 태종과 모후 원경왕후의 능)서쪽에 있는 현 인릉(순조와 순현왕후의 능) 자리에 처음 조성되었고, 4년 뒤에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합장릉의 형태로 조성되었다. 그 후 풍수지리 상 자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1469년(예종1)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제향시 향과 축문을 들고 들어가는 향로香路와 제향을 드리러 온 왕이 걷는 御路.
'정자각' 동쪽의 수복방과 비각, '수복방'은 능을 지키는 수복들이 머무는 건물,
'비각'은 능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세워둔 집이다.
'정자각'은 제향을 지내는 건물로 제향 공간의 중심이 된다.
잡귀를 쫓기위해 지붕의 추녀에 흙으로 만든 동물이나 사람 모양으로 올린 잡상을 '어처구니'라고 한다.
'정자각'의 내부 모습.
'정자각' 서쪽의 '수라간'은 제향 때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는 건물이다.
영릉 '비각'
능침의 원 지형을 보존하면서도 관람객의 문화향유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하여 조성한 '도래솔길'따라
좀 더 가까이에서 능을 볼 수 있는 지점으로 접근한다.
능침과 가까운 곳에는 문석인, 그 아래 쪽에는 무석인.
'왕의 숲길'을 걸어서 효종대왕의 寧陵으로 간다.(700m)
'왕의 숲길'은 세종대왕 英陵과 효종대왕 寧陵을 연결하는 길로, 조선왕조실록에 1688년 숙종,1730년 영조, 1779년 정조
임금이 직접 행차하여 寧陵을 먼저 참배한 후 英陵을 참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영릉寧陵'은 조선 17대 왕 효종(1619~1659)과 인선왕후 장씨(1618~1674)의 능이다. 풍수지리 상의 이유로 왕과 왕후의 봉분을 같은 언덕의 윗쪽과 아랫쪽에 조성한 동원상하릉의 형태로 되어 있다.
원래 효종의 능은 건원릉 서쪽 산줄기(원릉 자리)에 병풍석을 갖춘 왕릉으로 조성되었는데 1673년 현종 때 석물에 틈이
생겨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 하여 여주의 英陵 곁으로 옮겼다.
효종의 영릉의 특이한 점은 홍살문을 지나 향어로 사이에 금천교禁川橋(신성한 지역과 속세를 구분하는 돌다리)가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조선 왕릉의 금천교는 홍살문에 이르기 한참 전에 있기 때문이다.
'정자각'과 비각'
수라간
수복방
寧陵 碑閣
침능 끝에 바로 보이는 것이 인선왕후 장씨의 묘이다.
'정자각' 문에서 바라 본 효종대왕릉.
내려가는 길에 있는 효종대왕 '寧陵 재실'
현재 남아있는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어 원형이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효종 寧陵 재실은 조선 왕릉 재실의 기본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고,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건축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보물 제15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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