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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깊숙한 곳 단풍 비경 '춘당지'에는 단풍이 없드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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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깊숙한 곳 단풍 비경 '춘당지'에는 단풍이 없드라

lotusgm 2024. 11. 10. 10:27

 

 

 

 

 

하루 전 날 월요일이라 가보지 못했던 '창경궁 춘당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이틀 뒤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예보되어 있었지만 부지런히 집을 나섰다. 아파트 앞에 줄지어 선 은행나무 노란 이파리가 파란 하늘과 어울려 참으로 아름답다.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창경궁 까지 1km 조금 더 되는 거리는 망설일 일도 아니다. 성균관대 건너편 골목이라 크고 작은 가게들이 즐비한 길을 걸어서 간다. (11월7일 목요일)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으로 가기전에 '월근문月覲門'이 있다.

창경궁 사무소 정면에 있는 이 문은 정조가 그 부친 사도세자의 묘인 경모궁에 수시로 참배하기 위하여 정조 3년(1779년)에 건립하였다. 정조가 매달 초하루 경모궁에 참배하러 거동할 때에는 반드시 이 문을 경유하였기 때문에 월근문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10년 전에도 요금은 천원이었는데, 관람 요금을 자세히 보면 참 흥미롭다.(경로는 무료)

3개월 10회 점심시간관람권은 3,000원

1개월 동안 상시관람권은 10,000원

6개월 동안 창경궁과 창덕궁, 경복궁과 종묘 각 1회 관람 가능한 궁궐통합관람권은 6,000원

12개월 동안 12:00~13:00에 관람 가능한 시간제관람권은 30,000원

 

 

 

보물 제386호 옥천교.

 

 

 

 

 

명정문.

 

 

 

 

 

 

 

국보 제26호 명정전.

 

 

 

 

 

명정전 앞에서 바라본 홍화문.

 

 

 

 

 

 

 

 

 

 

 

 

 

명정전 천장 장식이 세존을 모신 법당 보다 더 화려하다.

 

 

 

 

 

 

 

 

 

 

 

'명정전'을 둘러싼 회랑을 지나 밖으로 나와서 눈에 들어 오는 내전의 전각들은 우선 미뤄두고 부지런히 앞장선다.

그런데 이정표 어디에도 '춘당지'는 없다. 다만, 영춘헌迎春軒과 영화당養和堂 사이의 계단을 올라오면 꼭 내려다 봐야하는

특별한 풍경이 있다. 도심 한 가운데 자리한 궁궐만이 가지는 풍경을 꼭 봐야한다.

 

 

 

그리고 계단 끝에서 '풍기대와 앙부일구'가 있는 쪽 길로 내려가면 오늘의 목적지 '춘당지'에 닿는다.

 

 

 

창경궁 '풍기대(보물)'는 대 위에 구멍을 뚫어 깃대를 꽂고 그 깃대에 기를 달아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가늠했던

기상관측 기구로, 18세기 유물로 추정된다.

 

 

 

여기에 있는 해시계 '앙부일구'는 모사품이고, 보물인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가을만 되면 어김없이 꼭 떠올리는 '춘당지' 이다.

올 해는 옆지기에게 '춘당지' 단풍 자랑을 하도 많이 해 둔 터라 직접 보자고 했었다.

그런데 너무 기대를 했기 때문인지 오히려 아쉽다는 말도 선뜻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춘당지'인 '대춘당지'는 원래 임금과 왕비가 각기 농사와 양잠을 체험할 수 있도록 궁궐 안에 둔 논과 뽕밭(내농포)에 속한 11개 논을 하나의 연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8각7층석탑(보물)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장독처럼 생긴 몸돌의 형태가 특이한 탑이다.

 

 

 

 

 

 

 

 

 

18세기 초반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느티나무의 수피는 살아 온 세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거수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손을 대 보곤하는데, 마치 목신이라도 깃든 듯한 위용에 손을 대지 못했다.

 

 

 

 

 

 

 

잘 손질 된 작은 정원을 가진 하얀 집은 '대온실' 이다.

 

 

 

일반적인 온실과는 다르게 현관처럼 보이는 온실 입구의 격자무늬 창이 너무 예쁘다.

 

 

 

내부 역시 알고있는 일반적인 온실의 풍경과는 조금 다르게 작은 식물들 위주로 잘 관리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춘당지' 건너편으로 건너와 가려진 의자에 잠시 앉아서 바라본다.

 

 

 

말 그대로 군계일학 처럼 눈에 띄는 백송은, 하얀 나무 껍질 조각이 오래되면 저절로 떨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국이 원산지인 희귀한 나무로 조선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었는데,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조계사 대웅전 앞에도 귀한 백송이 있다.

 

 

 

 

 

 

 

 1984년에 만들었다고 하는 '춘당지' 안의 섬을 보는 순간 경주의 '월지'를 떠올렸다.

 

 

 

 

 

'춘당지'를 뒤로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내전 전각이 있는 가운데 마당으로 나간다.

 

 

 

후궁의 생활 공간인 '영춘헌'과 '집복헌'

사도세자와 순조가 '집복헌'에서 태어났으며, 정조는 '영춘헌'에서 독서를 즐겼으며 이 곳에서 돌아가셨다.

 

 

 

1834년에 지은 대비의 침전이었던 '양화당'에서,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던 인조 임금이 돌아와 거처하기도 했다.

 

 

 

 

 

통명전(보물)은1834년에 다시 세운 일상 생활공간인 내전의 중심 건물답게 넓은 월대를 쌓고 지붕 가운데 용마루가 없다.

가운데 세칸은 대청마루를 사이하고 양 옆에 온돌방을 두어 왕과 왕비의 침실로 썼다.

 

 

 

 

 

通明殿은 왕과 왕비의 침실 이었다기에는 생각 보다 소박하게 보인다.

 

 

 

통명전 정원의 물길 위 작은 돌 다리를 지나면 '창덕궁' 함양문으로 가는 계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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