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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사에 동지 팥죽이 끓던 날

lotusgm 2013. 12. 23. 21:46

 

이틀에 걸쳐 동지 팥죽을 쑤었다.

21일 토요일.

누차 말하지만 나는 팥 내지는 팥죽 안좋아한다는..

그러니 이렇게 많은 팥을 앞에 대하니 뭐 대략 총체적 난국..

 

 

미리 불린 팥에 돌이나 이물질이 없도록 일어내고...

 

 

이번에 새롭게 안 사실인데..팥으로 뭔가를 하기 전에 일단 넉넉한 물에 팥을 넣고 끓이다가

끓어오르면 그 물을 한번 버리고 다시 물을 채워서 본격적으로 삶아야

팥 고유의 씁쓰레한 맛이 제거된다는 거다.

 

 

 

처음 물이 끓으면 일단 팥을 건져낸 물을 버리고 다시 찬물을 채워서 끓이기 시작한다.

 

 

 

물이 끓기 시작하고 제법 팥이 통통해졌다.

이 시점에서 팥을 얼마나 삶아야 되는 지, 물은 얼마나 부어야 되는 지, 방곡사에서 팥죽을 끓이고 계시는

유영스님께 누군가 전화를 해서 여쭤보았다.

유영스님 한마디로 정리 끝내셨다.

" 팥이 무르익어서 형편무인지경이 되어야 됩니다"

 

 

 

바깥의 솥에서는 팥이 익어가고 안에서는 드디어 새알빚기를 시작했다.

찹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익반죽을 한다.

짐작컨대 검증되지않은 2인이 찹쌀가루 반말이 든 다라이 하나씩을 꿰차고 앉았다.

 

 

 

또하나 안 사실인데 팥죽 새알은 순수 찹쌀가루로 빚는 것 보다는 그냥 흰쌀가루를

같이 섞어야 팥죽을 끓였을 때 새알의 모양이 덜 퍼진다는..

 

 

팥이 익었다.

살짝만 건드려도 사람을 몰라보고 형편무인지경이 되어버린다.

 

 

집에서 적은 양을 끓일 때는 믹서기에 넣어서 갈거나 베보자기에 싸서 주물러 앙금을 내거나...

그렇지만 너무 많은 양이다 보니 소쿠리에 으깨서 내리기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팥을 싫어하는 내코에도 잘 익은 팥 냄새에 식욕이 동한다.

 

 

팥물이 아래의 솥에 뚝뚝 떨어져 내린다.

 

 

마지막 액기스까지 짜내시느라 두분 보살님 온몸으로 고군분투.

 

 

  오동통하던 팥 알갱이가 이렇게 질긴 껍질만 남고 팥물이 되었다.

껍질은 작은 짐승이나 새들이 먹을 수 있게 나무 아래 뿌려두기로..

빚은 새알은 상하지않게 바깥 장독대 위에 보자기를 덮어서 두었다가

다음날 ,내린 팥물에 끓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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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일요일

아침부터 다시 백령사는 구수한 팥냄새가 진동한다.

전날 내린 팥물을 끓이다가 불린 쌀 알갱이를 먼저 넣어서 어느 정도 익으면 장독대 위의 새알을 넣기 시작한다.

 

 

 

장독대 위의 새알이 지네들끼리 옹기종기 허들링한 채 얼어붙었다.

 

 

새알이 위로 떠오르면 얼른 불을 꺼야 남은 열로 인해 솥바닥에 눌러붙는 불상사를 막을 수있다.

조금이라도 눌러붙어 타기라도 한다면 팥죽 한솥에 전부 탄냄새가 난다는..

 

 

찬기운에 좀 식혀서 넓은 다라이로 옮겨담고 또 한 솥 더 끓여야 한다.

동지기도 하러 오신 분들 모두에게 한통씩 싸주기로 했으니 그 양이 두배가 되어야 한다는.

묵 누룽지 맛있다는 얘기는 들어봤는데.. 팥죽 누룽지도 맛있다.

 

 

식성에 따라서 팥죽에 설탕이나 소금을 더 넣어서 먹기도 하니까.

 

 

같이 먹을 홍갓 넣은 동치미.

 

 

실컷 먹고 그리고 한통씩 싸주는 절집 인심에 모두들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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