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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경남 거창]북산면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본문
2019년 7월 12일(음력 유월 초열흘).
수년 동안 매달 음력 초열흘이면 짐을 꾸리고 떠나던 습이 무 자르 듯 담박에 잘려나갈 수 있을까?
아련한 그리움이 올라올 즈음인 3개월 만에 거창으로 마애불순례를 떠났다.
경상북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이정표 건너편.
몸과 마음이 급해져 앞장 선 일행들이 방향을 잡기도 전에 다른 지방에서 먼저 와 계시던
분들이 마중나오시는 모습이 보였다.
새벽 까지 내린 비로 촉촉히 젖은 논둑길을 걸어들어 간다.
역시 보물을 모신 곳이라 주변 풍경 조차 특별해 보인다.
새벽부터 정성껏 준비한 마지와 공양물을 올리고 이미 시작된 예참에 동참.
그리고 각자의 간절한 축원.
석조여래입상의 모습은 같은 크기의 광배가 특히 눈길을 끈다.
마애불공양을 지지난 달에 하고 고마 할라켓는데 보살님들이 한 십여년 가까이 하던 기니까 너무 섭섭하다꼬...
또 처음에는.. 우리나라 속담에는 어떤 게 있냐하면 못들오게 하는 거를 삽작에만 들어가자 사정하고 빌고 드가서
그 다음에는 마당 빌어...그 다음에는 뜨락에 올라왔거등? 뜨락에 올라가서 방에 드간다꼬...처음에는 일년에 한번씩만
가도 되니까 그렇게 하자 이카디만,또 이제 한번 갔다오디만 그 담번에는 석달만에 한번씩 이라도 가입시더 카길래 또 그래 하자 켓디마는
먼저 달에 갔다 오디마는 한달 건네 한번씩 가입시더..한달은 방곡사 보궁기도 올라가고...
사실 여러분들이 보궁기도 마치고 보궁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어오면 내가 상을 줄라했는데, 아직 맨날 찍는 사람만 찍지...다른 사람은
못 찍어와...보면 참 재미있는 게..우리 선방의 공양주는 공양주 한 공덕이,사리가 탑 안에만 계시고 탑 주위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고
선방 까지 올라가서 댕기는데,선방의 공양주 말이 큰방 식당에 까지 들어왔대요...손으로 움켜잡을라고 하니까 사라졌대요.
통일신라 시대 불상에서 주로 나타나는 수인은 우 시무외인과 좌 여원인을 함께한 통인인데,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의 수인은 아무래도 양쪽 모두가 여원인인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손가락의 훼손된 부분이 보인다.
발 아래 둥근 바위 위에는 좌대의 흔적으로 보여지는 연꽃 이파리가 새겨져있고,
입상의 발 옆에는 누군가 놓고 간 비닐에 싼 천원짜리 지폐가 놓여있었다.
전체적으로 짧아 보이는 목에 삼도 역시 보이지 않는다.
불상의 얼굴 부분은 표면이 고르지 못한 자연 암석인 탓에 매끈하지는 않지만
살짝 입꼬리가 올라 간 미소 띈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보물 제1436호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산 53번지.
최초의 불상이라고 알려진 인도 우드야나왕 여래상 형식의 옷주름은
통일신라시대의 조각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불상의 법의는 양쪽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이며 가슴 위 까지 U자 모양으로 내려오다가
허리 위에서 Y 자 형으로 갈라지고,다리 위에서 각각 작은 u자를 그리다가
다시 종아리 부분에서 Y로 모이는 표현법으로 우드야나(Udyana)식 표현법이라고 한다.
그 유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불한 후에 도리천으로 올라 어머니 마야부인에게 설법하였는데,
그때 밧사국의 우드야나왕이 잠시 세상을 떠나계신 부처님을 대신해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것이 최초의 불상이라 전해 지고 그 불상의 법의 형식이 바로 우드야나식 이다.
그 표현 방법이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에서 나타났다.
너른 주변의 풀밭에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오랫만에 여유로운 공양을 했다.
다시 한번 뒤돌아 봐도 정말 특별한 풍경 속에 석조여래입상이 편안하게 자리 잡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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