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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화상의 1차 전법지- 설 중 도화가 핀 곳 태조산 도리사 본문

아름다운 산사

아도화상의 1차 전법지- 설 중 도화가 핀 곳 태조산 도리사

lotusgm 2021. 5. 8. 09:34

 

 

 

구미 베틀산 약용암 점안법회를 마치고 서울로 오면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도리사를 참배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두어번 왔던 기억 속 입구의 모습이 달라진 것 같다.

 

 

 

 

계단 아래 냥이가 실뭉치처럼 꼼짝을 않고 자리잡고 있더니만

그 후에는 절 곳곳에서 마주친다.

 

 

 

 

 

 

 

 

 

 

절마당이 막 번지기 시작하는 연두빛 나무와 색색의 연등으로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다.

절마당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계단 위에 잠시 멈춰 서도 좋겠다.

 

 

 

 

수행하기 좋고 도인이 많이 나 영남의 3대 선원 중 "제일도리"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태조선원.

정면의 太祖禪院 편액은 민족대표 33인 중 일인인 오세창선생의 서체이다.

 

 

 

 

동국최고가람 태조산도리사.

 

 

 

 

 

 

 

도리사가 빛나는 이유를 알겠네...

 

 

 

 

구미 도리사 극락전.

 

 

 

 

 

 

 

 

 

 

 

 

 

극락세계를 관장하시는 아미타불과 인조 23년(1645)에 모신 아미타후불탱.

어두운 채색에 가려져있지만 아름답고 수려한 닫집은 경복궁 근정전의 모습과

전체적으로 흡사해 조선말기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아미타부처님의 아미타수인은 오른쪽 팔꿈치를 접어올린 모습인데,

도리사 아미타부처님은 양 손이 무릎 위에 있다.

무릎 위의 오른쪽 손모양은 아미타수인을 수한 모습이다.

 

 

 

 

 

 

 

극락전 외벽에 그려진 금강역사.

 

 

 

 

극락전 뒤편에 있는 삼성각.

앞마당에는 石積寺터 옛 탑에서 발견된 사리와 금합을 모신 세존사리탑이 있다. 

 

 

 

 

 

 

 

 

 

 

 

 

 

보물 제470호 구미 도리사 석탑.

벽돌로 쌓은 전탑 양식을 모방해서 만든 모전석탑으로,

고려시대 중엽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탑을 장식한 장식품이나 조각 흔적도 볼 수 없는 정말 단순한 형태의 탑이다.

 

 

 

 

계단 위에 아도화상의 좌상이 있는데...굳이..이유를 모르겠더라.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 계단.

 

 

 

 

 

 

 

 

 

 

적멸보궁 사리탑.

 

 

 

 

적멸보궁 앞에서.

 

 

 

 

 

아도화상이 위나라 서울 낙양 근교에 있는 백마사에서 스님이 된 후

고구려로 돌아오자 어머님이 신라에 불법을 전할 것을 명합니다. 그래서 1차 전법지가

설중 도화가 만개한 곳, 그 곳이 지금 선산 도리사 예요.

그래서 복숭아 도桃, 오얏 리李 를 쓰는 곳은 설중 도화가 핀 곳이기 때문에 도리사 라고

하게 된 겁니다. 2차 전법지는 산 정상 근교 옹달샘에서 백련이 피어서 푸른빛을 방광하는 곳을 발견하면

바로 그 곳이라고 했는 데 도리사 뒷산,지금 청화산 백련사 입니다.

청화산은 흰 연꽃에서 푸른빛이 방광했다고 해서 푸를 청靑에 빛날 화 華 청화산이고,

절 이름은 우물에서 흰 연꽃이 피었다고 해서 백련사라고 한 것입니다.

지금은 그 물이 장군수라는 이름으로 그치지않고 흐르고 있고,

그 절이 이제 1,600년을 전해져 내려 오다가 지금으로 부터 100여년 전에

마지막 사신 스님으로 용호강백이 백련사에서 출가한 후, 대강사로서 사불산 대승사와 예천 용문사에서

40년 동안 화엄경을 강의 하시다가 그 곳에서 입적하시지 않고 나오게 된 것은,

선산 도리사 법당이 허물어졌는 데 법력이 있는 큰스님이 아니고는 누구도 그 법당을 원만하게 조성할 수 없으니까

도리사 스님들이 용문사에 가서 용호강백을 모시고 와 불사한 법당이 오늘날 선산 도리사 큰법당 극락전 입니다.

그 후 용호강백은 마지막으로 당신의 본사인 백련사로 물러앉으셨는 데,그 용호강백이 입적한 지가 1887년이니까

올해가 128년 째야..그러면 128년 전까지는 절(백련사)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보통 구한말 고종황제 시절에 소실이 되었다고 만 전해져 내려오는 데,이 곳 피안현이 군이 되기

전이니까 1887년에 용호강백이 입적을 하시면서 "내가 죽은 지 17년 후에 다시 이 절에 올 터이니 그 때 보자"는

말을 제자 도암스님한테 남겼습니다.

그 후 1888년에 성암스님이 태어나 17살에 백련사로 출가해서 도암스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래서 도암스님께서는 당신 은사스님을 당신 상좌로 맞은 것인데, 참 재미있는 사실은 용호강백도 뛰어난 강사이고

강백 이지만 성암스님 역시 일대 강백으로, 바로 그 성암강백께서 내한테 물려준 것이

내가 모시고 있는 사리이고,백련사를 복원 중창하기를 부탁받은 겁니다

-2015년 전통사찰순례 묘허큰스님 법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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