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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을사년 첫 삼사순례: 서산 상왕산 文殊寺 마당은 봄 처럼 따뜻했다. 본문

아름다운 산사

을사년 첫 삼사순례: 서산 상왕산 文殊寺 마당은 봄 처럼 따뜻했다.

lotusgm 2025. 1. 7. 09:29

 

 

 

 

개심사를 나와서 오는 길에 잠시 '한우목장 웰빙산책길'도 구경하고 이제 문수사로 간다.

가까운 거리라 이정표도 잘 되어 있고 도로에서도 문수사 표지석이 바로 보인다.

 

 

 

상왕산 문수사 일주문.

 

 

 

 

 

길 옆의 자그마한 탑이 우리를 이끈다.

 

 

 

연못 주변의 나무들은 봄이면 꽃을 피우는 벚나무인 것 같다.

쌓은지 얼마되지 않아 보이는 탓일까? 축대 사이의 계단을 오를 때 까지는 고찰이라는 느낌이 들지않았다.

문수사라는 이름답게 계단 아래 문수동자 수곽이 있다.

 

 

 

 

 

생각지도 않았던 산사 마당의 풍경에 잠시 그 자리에 서있었다.

 

 

 

 

 

문수사 가람은 한 눈에 들어오도록 단촐하고 깔끔하다.

문수사는 창건 연대 및 창건자는 알 수 없으나 가람의 배치 등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집의 겨울 배롱나무는 마치 금강역사 처럼 사방으로 팔을 뻗친 그림자까지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멀리서 부터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소리의 근원지는 산신각이었다.

 

 

 

산신각 앞의 고려시대 삼층석탑.

 

 

 

문수사 종무소.

어쩜 저리도 깜찍한 팔작지붕이...

 

 

 

최근에 보물로 지정된 문수사 큰 법당 극락보전.

 

 

 

마악 산신각에서 기도를 마치셨나 보다. 합장을 명쾌히 받아주시는 스님.

 

 

 

 

 

극락보전은 아미타불의 서방 극락정토를 축소시켜 묘사한 곳으로,극락이 서쪽에 있으므로 극락보전은 주로 동쪽을 향하고 있어 예배하는 이들은 서쪽을 향하게 된다. 우협시불은 하품중생인을 취하고,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에 주불은 석가모니부처님으로 항마촉지인, 좌협시불은 약사여래불의 약기인(藥器印)을 취하고 있다.

 

 

 

문수사 극락보전에 들어서면서 부터 눈에 띄는 특이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상단을 향해 매달려 있는

나무로 만든 기러기이다. 그런데 기러기는 자세히 보면 하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문수사 나무기러기 이야기>에 의하면 부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저 기러기는 아난존자이다.

 

<문수사 나무 기러기 이야기>

 옛날에 기러기 고기를 좋아하는 왕이 있었다. 사냥꾼은 매일 그물로 기러기를 잡아 밥상에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기러기 왕이 500마리의 기러기를 거느리고 내려 왔다가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이에 기러기 무리는 공중을 맴돌며 떠나지 않고,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화살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피를 토하며

밤낮으로 슬피 울었다. 사냥꾼이 이 사실을 기이 여겨 왕에게 알리었고, 그때부터 왕은 기러기를 먹지 않았다.

이때 기러기의 왕은 부처님이요. 500마리의 기러기는 500분의 나한이며,

피를 토하며 밤낮으로 울던 기러기는 아난이었던 것이다.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이자 부처님 곁에서 제일 많은 법문을 들었던 제자이다.

가장 많이 들은 자라고 하여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도 불린다.
 -- 문수사 홍보 리플렛에서 --

 

 

 

 

 

 

 

문수사 극락보전이 보물로 지정된데는 저 아름다운 천장 단청 장엄도 한 몫하지 않았나 싶도록

닫집과 어우러져 다양하고 섬세한 그림들로 내가 이때껏 봐온 천장 장식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답다.

 

 

 

 

 

 

 

서산 문수사 금동아미타불 복장유물은 200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은 1346년(충목왕2년)에 조성된 고려후반기 단아양식 불상의 대표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1993년 도난당하고 그 복장유물만 현재 전한다. 복장유물은 1973년 12월 충청남도문화재위원회에 의하여 발견 조사되었는데, 후령통과 복장물 등 고려불상 복장이 학술적으로 조사된 최초의 예이다.

 

 

 

 

 

 

 

법당에서 나오자 마자 마당의 나무를 바라보며 감탄을 하고 있는데 종무소 젊은 보살이 '스님께서 떡을 챙겨주라 하셨다'며

큼직한 콩백설기 두 개와 귤을 쥐어 주면서 마당 정자에서 따뜻한 커피랑 같이 드시라는 말을 했다. 참 예쁜 보살이었다.

마당의 두그루 나무는 앞쪽이 배롱나무, 뒷쪽은 백목련나무 란다.

 

 

 

 

 

 

 

 

 

 

 

그늘이 내려앉은 산사의 정자에는 찬바람이 불지만 몸도 마음도 따뜻해 진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털고 일어나는데 '안녕히 가세요~' 자전거로 마당을 가로 질러가시던 스님께서 

큰소리로 인사하시는 뒤로 마음을 다해 깊숙한 합장을 보냈다.

 

 

 

꽃이 피면 꽃에 머물고 바람 불면 바람에 머물라

그리고 모른다 하라

비 오면 비에 머물고 새 울면 새소리에 머물라

그리고 모른다 하라

그것이 참 나와 만나는 오직 한 길이다.

 

 

 

 

 

봄이면 작은 연못 주위로 흐드러진 겹벚꽃이 만개하여 극락의 모습이겠다...

 

 

 

문수사로 올라가는 길에 '명종대왕 태실 및 비' 이정표가 있어서 내려오는 길에 샛길로 접어 들었다.

대부분의 태실은 왕실의 호국 사찰이 있는 곳에 모시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곳은 문수사 와도 꽤

떨어져 있는 까닭에 들러서 확인하고 싶었다.(보물 제1976호)

 

 

 

다른 방향 이정표는 없었지만 열려있는 길이니 올라가면 있겠지 라며 오르기 시작했는데

길은 이상하게 경사지고 기울어져 누군가는 난이도 최상 등반을 하는 것 같았다고...그 정도는 아니지만

 미끄럽고 순식간에 경사도가 높아지는 길이었다.

 

 

 

 

 

 

 

철제문이 나왔는데 옆지기가 올라 가더니 길이 더 이상 없다고 돌아가자고 한다.

(장담하지만 나 혼자였다면 무조건 찾아 갔을 거다.)

 

 

 

 

 

 

 

길이 뭐 이렇노?ㅋㅋ~

옆지기는 드디어 길 가에 버려진 막대기를 주워 들었다.

 

 

 

겨우 내려서고 보니 어찌나 억울한지...내 사전에 이런 건 없었다.

 

 

 

분명 공사안내판 대로라면 1년 전에 공사 기간이 끝났다.

 

 

 

억울해서 자료 사진을 가져왔다. 우리나라 태실 중 보물로 지정된 단 2개의 태실 중 하나인 명종대왕 태실 및 비.

(나머지 하나는 인종 태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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