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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구미시 시미동] 이름없는 마애삼존불을 찾아 나서다 본문
티비에서 방치된 마애삼존불의 지방문화재 추진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뉴스를 보고 바로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서는 데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고속도로에 오르면 50분도 안걸리는 지척에 알려지지않은 마애삼존불이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흥분했는 지...
바로 전날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경산의 아름다운 산사 두 곳을 순례하고 행복해했던
이상으로 가슴이 방망이질쳤다.
마침 가까운 경산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구미 i.c로 들어서면 일대는 공장건물만 있는 공단지역이다.
이정표가 가르키는 3산업단지로 우회전 할 차례다.
막다른 골목 끝에 가느다란 계단길이 보이는데
오른쪽 대성산업가스 담벼락에 주차를 하고 저 계단을 오르면 된다.
66계단.
계단 끝에는 청운가족공원 묘지로 드문드문 묘소들이 흩어져 있는 야트막한 야산이 나타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방향을 잡고 다른 쪽 산 거의 끝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위에서 내려다 봐도 전부 공장 뿐이다.
30분 정도 괜시리 엄한 산 속을 돌다가 내려와 다시 출발했다.
66계단을 오르자마자 보이는 수로를 의심없이 따라가면 된다.
이렇게 누군가에 의해 완벽하게 가려져 있었으니 엉뚱한방향으로 길을 잡을 수 밖에...
무조건 천막을 넘어 들어가 길을 찾았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은폐 진입로.
모르고 찾아온 사람에게는 난감한 상황일 수 밖에..
그동안 마애불을 많이 찾아다녔지만 이렇게 까지 감춰진 길은 처음인 듯
못찾을까봐 불안해 졌다.
누군가의 손길이 감사한,
아래에서 밧줄의 도움을 살짝 받아야 오를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계속되는 수로와 나란히
몇해전 다녀갔다는 블로그의 말대로 빨강 리본을 찾았던 어리석음이라니...
그동안 리본은 애초에 어떤 빛깔이었는 지 눈여겨 찾아야 겨우 보이도록 퇴색되었지만 이정표가 없어 방향을
잡기 어려운 야산에서 흐린 빛깔의 리본이 얼마나 반가운지.
이정표도 어떤 표식도 전무..이 낡은 리본이 길잡이 역활을 해준다.
그나마 숲이 무성한 계절이라면 더 힘들지 않을까?
대체할 만한 무언가 있었다면 눈에 들어오게 다시 묶고 싶었다.
20여분 올라 지금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꾸지않은 야생의 자작나무가 서로 끌어안고 혹은 넘어져있는 숲.
그리고 올려다 본 곳에 아...부처님..
막상 앞에 서서 어떻게해야 하는 지 생각이 나지않았다.
비루한 물 한 병 올리고 삼배를 드렸다.
그대로 옮겨놓은 듯 '천년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의 외형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마애불 위쪽으로 올라가서 내려다 보니 위는 오히려 평평한 형태이다.
방송에서는 취재 도중 신라시대 기와편이 발견되었다고 했지만 어디론가 옮겨갔는 지 발견할 수 없었다.
우협시보살 쪽 바위는 마치 살짝 병풍을 접은 듯한 특이한 형태를 하고있다.
우협시보살의 모습이 사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본존불에 비해 형태가 지나치게 뚜렷하고 화려한 것은 후대에 손을 댄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인데,
머리 위 화관의 모습은 이해가 안되는 것 같다.
구미시 시미동 구미공단 옆 야산에 넓이 9m ,높이 5m 정도되는 거대한 바위에 삼존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역의 한 원로 학자가 일제시대 때 한 일본인이 연습삼아 새겼다는 소문을 인정하면서 그동안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왔습니다. 4m 높이 본존불은 코와 입 일부와 아래 위 펼쳐진 양 손바닥이 떨어져 나갔지만
얼굴과 어깨선 등은 당당함을 갖춘 7세기 신라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왼쪽의 협시보살은 원형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고 오른쪽 협시보살은 오똑한 콧날 등 얼굴 윤곽은 뚜렷하지만 움푹 패인 눈썹과 부자연스러운 입 등이
후대에 손을 댄 흔적으로 보여집니다. - TBC 방송 발췌 -
당당해 보이는 어깨의 모습,오른손 시무외인 왼손 여원인 등 이런한 요소들로 이 마애불의 조성시기를
7세기 초중반 신라말 또는 통일신라 초로 추측한다고 했다.
삼존불이 새겨진 바위 뒷쪽에서 다량의 기와편과 토기들이 취재 가운데 발견되었고
기와는 통일신라시대 암기와와 수기와로 확인되어,삼존불을 보호하기 위해 바위 위에 세운 전각
등에 쓰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조성시기 논란이 있었던 마애불의 조성시기가 밝혀짐에 따라
구미시와 문화재 당국이 마애삼존불의 문화재 지정 등 종합적인 보존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얼굴은 인위적인 훼손이거나 자연적인 마모라기 보다
마치 형태만 잡혀있는 미완성인 채의 모습이고
바위는 화강암이 아니라 어디선가 본 적 있는 (흑운모)편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표면이 비늘처럼 뜯어져나간 모습이 여러 군데 보이는 것은 전문가적 견해를 가지고 밝혀낼 일인 것 같다.
좌협시보살은 과연 협시보살이 자리하기는 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형태가 없다.
오래전 일본사람이 연습삼아 마애불을 새겼다는 소문으로 끝났다면
어쩜 그렇게 치부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훼손이 심했다.
그동안의 마애불은 협시불이라 할지라도 얼굴은 앞모습이었던 데 비해
이 마애불은 확연하게 옆얼굴의 모습이다.
각도만 잘 맞으면 우협시보살의 옆모습은 마치 반가사유상 처럼 보이기도 한다.
잠깐 머물다가 훌쩍 떠나버리기가 아쉬워 자꾸만 뒤돌아보았다.
머잖아 세상에 나오실 마애삼존불의 모습.
얽히고 설킨 나무들이 마애불 앞에 읍소하고
눈앞에 자작나무 숲이 다가오면 바로 건너 마애삼존불이 있다.
산을 내려올수록 바로 옆 공장의 소음이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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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않은 순례길에 겁도없이 나섰다가 가시덤불을 헤치고 가느라 고생 좀 했다.
긴바지,등산화 필수.
가장 아쉬웠던 한가지는 오래전 묶은 퇴색된 길잡이 리본을 다시 묶고 싶엇지만 마음 뿐이었다는 것.
하루빨리 문화재로 추진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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