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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내 생애 다시 없을 최고의 걸작 산치대탑 본문

♥ 그들이 사는 세상/나마스테 인디아

내 생애 다시 없을 최고의 걸작 산치대탑

lotusgm 2017. 1. 21. 14:21

 

 

 

 

 

 

 

엄청난 유적이 있는 곳의 입구 치고는 어찌나 허술한지...

정말 검색대에서 뭔가를 검색했었는지 기억 조차 없이 그저 멀리 대탑만 바라보며 직진.

 

 

 

 

 

BC 2세기에 만들어진 산치 대탑(제 1 스투파)은 가장 잘 보존된 탑으로 알려져 있다.

이 탑은 아소카 왕조 시대의 전탑(塼塔)위로 오랜세월 을 거치며  증수한 것으로,

기간 위에 반구형 복발(復鉢:탑신)을 만들고 위에 네모 반듯한 평두(平頭)를 놓고 정상에 산간(傘竿)을 세워 산개(傘蓋)를 얹었다.

주위의 난간이나 사방의 문 역시 석조로서 이들에 새겨진 조각은 당시 불탑이나 궁전 건축 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1818년 영국기병대 장교에 의해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완벽한 원형이던 산치대탑은

영국사람들의 무분별한 해체와 도굴 훼손으로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다. 다른 엄청난 문화유산들과 마찬가지로

산치대탑에서 떼내간 작품들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고 한다. 

 

 

 

 

 

산치 제 1탑으로가는 길에 있는 작은 탑은 사리부트라,목련불존자의 사리탑인데,사리탑에서 나온 사리함은

영국사람들이 모두 가져가 버렸다.그때 가지고 간 존자들의사리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불교 나라(미얀마.스리랑카)의

반환 신청으로 되찾아 지금은 산치대탑 공원 입구에 있는 스리랑카 사원에 모셨다.

존자의 사리탑은 산치 1탑과 같은 형태로, 사방에 문인 토라나가 있고

탑 하단부 위에 둥근 방부 가르바그라 그리고 그 위에 네모 모양의 평두와 제일 위에 일산인 옥개가 있다.

 

 

 

 

 

 

 

 

 

개인적으로 처음 어디선가 산치대탑의 전경을 보고 일본 신사의 대문격인 '도리이'가 떠올랐었다.

외형의 구조만 보고 오해를 했지만 산치대탑 앞에 서서 도리이 따위를 떠올릴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산치대탑은 제일 아래 탑 하단부가 있고 그 위에 방부식 가르바(자궁)그라(방),그리고 인도인들이 안다(계란)라고 표현한

부처님 사리를 (계란 처럼)언젠가는 깨고나올 중요한 생명체로 봤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위에 네모 모양의 평두,그 위에 올려져있는 일산인 상개(옥개)로 구성되어 있다.

 

 

 

 

 

혼자 여행하는 순례자도 이 평면도만 꼼꼼히 살핀다면 북문의 칸칸에 새겨진 부조의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어떻게 그림의 이야기를 찾아내었는 지 정말 궁금하다.

 

 

 

 

 

산치대탑의 네 문(토라나 torana) 중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북문 기둥에는 칸칸으로 나누어져 부처님의 일대기와 전생담을

묘사한 부조로 빈틈없이 빽빽하다.

그래서 산치대탑의 토라나 부조는 인도에 오면 꼭 산치대탑을  봐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을 지키는 금강역사는 아닌지..각 기둥의 제일 아랫칸에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서있는 건장한 남정네의 모습이 있다.

 

 

 

 

 

간단하게 반야심경 봉독을 하고,

산치대탑의 백미인 대탑의 사방에 서있는 문(토라나torana)에 빈틈없이 가득한 아름다운 부조에 담겨있는

부처님의 일생,전생담을 오랫동안 들었다.

 

 

 

 

 

 

 

 

사문유관과 출가.

싯달타 태자는 카필라성의 4개 성문 밖으로 나가 인간의 생노병사를 보고 출가를 결심한다.

 

 

 

 

 

 

 

 

 

샤카족(석가족) 법문.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견성성불을 하시고 카필라성으로 돌아가서 정반왕을 위시해  출가전 아들 나후라,

이복동생 난타,사촌동생 아난 등 모든 석가족을 재도하셨다.

 

 

 

 

 

 

기수급고독원 기원정사

정면 가운데는 부처님께서 기거하셨던 '간다쿠티'

 

 

 

 

 

 

원왕봉밀

부처님께서 대림정사에 계실적에 원숭이 왕이 부처님께 꿀을 공양하였다.

부처님 열반하시고 가장 근접해서 만들어진 아쇼카 대왕의 산치대탑에 조각되어 있는 부처님 일대기와 전생담은

허구의 신화나 전설이 아닌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방의 코끼리는 전부 다른 모습을 하고있다.

 

 

 

 

 

 

 

 

아쇼카왕 후대에 모셔진 불상일 것 같은데 불두는 없다.

당연히 누구 짓인지 우리는 알고있다.

 

 

 

 

 

 

 

 

 

 

 

 

 

 

 

 

 

 

 

왕의 행차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위해 부처님을 찾아가는 꼬살라국의 빠사나디왕의 행차.

 

 

 

 

 

 

망고나무의 기적

믿지 못하는 외도들의 도전이 계속되자 꼬살라국의 빠사나디왕이 부처님께 신통력을 보여주십사 하는 간청에

부처님께서는 날짜를 정하여 망고나무 숲에서 기적을 보여주겠다 약속하시고

많은 외도들의 우두머리가 모인 자리에서 먼저 망고 하나를 드신 다음 그 씨앗을 땅에 심자 커다란 나무가

되었고 망고가 주렁주렁 열렸다.

 

 

 

 

 

 

산치 스투파의 모습

스투파 위로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날개달린 천인과 땅에는 갖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조각들 중에 사람의 얼굴 부분은 아무리 높은 곳에 있어도,

아무리 작은 형태의 얼굴이라도 빠짐없이 훼손되어 있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 들은 풍월로, 불상이나 사람의 얼굴로 불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불교도들에 대한

배척 행위로 무슬림들이 꼼꼼하게 훼손한 건 아닐까 싶어

 전 세계에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슬람건축물을 후손들에게 남겨준 그 조상들의 손재주와 끈기를

물려받은 후손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혼자 웃었다.

 

 

 

 

 

 

 

 

 

 

 

 

 

 

 

 

 

 

 

 

 

 

 

 

 

 

 

 

 

 

 

 

 

 

 

 

 

 

 

 

 

 

 

 

 

 

 

 

 

 

 

 

 

 

 

 

 

 

 

 

 

 

 

 

 

 

 

 

 

 

 

 

 

 

 

 

 

 

 

 

 

 

최초 2세기에 가장 먼저 세워진 남문 방향에서 바라본 방부의 겉표면에는 뭔가 울퉁불퉁하게 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바이샬리 근본8탑 속 진흙 봉분 속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온 아쇼카대왕 시대 이후부터 스투파(탑)이라는 형태가 생겨나기 시작해

원래는 둥글게 돌을 쌓은 방부 겉표면에 흙을 덮고 (템페라기법으로)하얗게 회칠을 했던 원형탑을 성지 마다 벽돌을 구워 세웠는데

오랜 세월 동안 표면은 벗겨지고 내부의 벽돌이 무너져 내려 지금 우리는 성지에서 흙덮힌 동산을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경전에서 말하는 탑은 아쇼카왕의 산치대탑에서 발원이 되었다.

후에 인도에 왔던 중국의 구법승들이 벽돌이 드러난 인도의 탑들을  보고 건너가 탑의 모습이 변형된 벽돌탑(전탑)을

만들기 시작하고 우리나라로 건너와서는 석탑,그리고 백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목탑이 되었다.

불교의 신앙심이 처음 시작되는 곳이 탑이고,탑은 우리의 진정한 부처님,불상이다. 

 

 

 

 

 

 

가장 먼저 세워졌지만 가장 훼손이 심한 남쪽 토라나는 기둥 중 오른쪽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새롭게 만들어 세웠다.남문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코끼리가 아니고 사자형상이다.

 

 

 

 

 

 

 

 

 

 

 

 

 

 

 

 

 

 

 

 

 

서문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왜?누구일까? 사람형상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600년간의 무불상시대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부처님을 볼 수 없었고 쿠샨왕조 카니시카왕 때

간다라와 마투라지역에서 '불상'이라는 것이 처음 탄생했다. 그리이스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 불상,힌두교 상 조각이 성행했던

마투라지역의 불상으로, 신적인 존재감이 없었던 얼굴의 마투라불상 보다는 그리이스 신화 속 인물을 닮은 형상의 간다라 불상이 많이 만들어졌다.

무불상시대에 세워진 산치대탑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부처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무불상시대 불상을 대신하던  보리수,탑,법륜,금강보좌,왕관,불조 등이 부처님의 상징물들로 표현되어 있다.

 

 

 

 

 

 

 

 

 

 

 

 

 

 

 

 

 

 

 

 

 

 

 

 

 

 

 

 

 

 

 

 

 

 

모두들 아래 기단 탑돌이를 마치고 나가기 시작하는데 큰스님께서 '얼렁 한번 뛰어올라갔다 보고 내려와~'

눈짓을 하셨다. 망설임없이 후다닥 뛰어 올라가 높은데서 토라나를 한번 보고 내려왔다.

 

 

 

 

 

 

북쪽 토라나 뒷면.

아래 기단에서 돌아나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어.

다른 사람들은 부지런히 주차장으로 가고 있는 중.

 

 

 

 

 

 

 

산치 대탑은 꼭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벌써 주위는 어둑해지는 데 우리는 지금부터 4시간 가량 이동해 인도르에서 숙박을 하고

다시 다음날 아침 일찍 버스로 7시간 달려 엘로라로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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