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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3체 대불상을 모신 폴론나루와 갈비하르 본문

♥ 그들이 사는 세상/아드레이 스리랑카

3체 대불상을 모신 폴론나루와 갈비하르

lotusgm 2018. 2. 2. 11:48






부처님 치아사리를 모셨던 사원이 모여있는 쿼드랭글을 참배하고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갈비하르'로 이동했다.





곧바로 말로만 들었던 3체 대불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갈비하르' 앞에 섰다.

(갈은 바위 비하르는 사원)


13세기 폴론나루와로 힌두 촐라왕조가 다시 침입해 왔을 때 스리랑카는 수도를 담버디니아로

옮겼는 데 그때 마다 그들이 꼭 모시고 가는 것은 부처님의 치아사리 였다.

그리고 다시 공격받아 옮겼던 야파우에도 부처님의 치사리를 모셨던 불치사가 있다.

그 후로도 졸라왕조 사람들의 침략은 계속되던 중 스리랑카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택한 곳,

해발 500m 되는 캔디로 옮겨 불사리와 자신들을 지켰다.

처음 촐라왕조가 폴론나루와로 침략해 왔을 때 불교 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수많은 불상과 사원을 무차별로

없애고 있었기 때문에 스리랑카 사람들은 이 거대한 갈리하르 불상 전체를 흙으로 덮어서 숨겨두었다가

전쟁이 끝나고 난 후 다시 발굴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벽돌로된 건물 안에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운동장 본부석 같은 차양막 아래 있다.

너무 어마어마한 규모라 한꺼번에 담아지지도 않는다.

전체 51m 크기의 바위에 왼편의 좌불,가운데 부처님 설법상,입불





그리고 가장 오른편의 열반상 순으로 모셔져 있다.





실내가 아니어도 스리랑카의 사원에서는 모자와 신발을 필히 벗어야 한다.





갈비하라 사원의 불상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보이는, 짝다리 부처님이라고 알려진 입불이다.

수인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모양새로 가슴에 모으고

가사는 편단우견..오른쪽 어깨만 드러낸 형태로 그 옷자락은 발목까지 유려하게 내려왔다.

높이가 8m나 되는 거대불이지만 언뜻 보기에도 비율이 아름다운 불상이다.





원래 바위가 가지고 있는 무늬가 불상을 더 특별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있지만,부처님께서 설법을 듣고있는 많은 사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시는

편안한 모습이라는 설에 나는 공감이 갔다.





특히 이 입불은 옆에서 봤을 때 그 특별함이 눈에 들어오는데

두발을 살짝 어긋나게 두고 뒤로 벗어난 발은 뒤꿈치가 들려있는,말그대로 짝다리를 딪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현지 가이드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잘 생기고 시크한 입불상이라고 침이 마르게 자랑을 했다.)





연구하는 학자들 중 더러는 바로 옆에 있는 열반상과 연관지어 입불이 부처님의 모습이 아니라

아난존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아난존자는 부처님 열반하시기 전에는 아라한과를 정득하지 못해서

연꽃 좌대에 서있는 입불이 아난존자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입불 바로 옆에는 14m 크기의 열반상이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좌불은 높이 5m의 부처님 수행상.








파라크라마바후 왕의 갈비하르에 동원된 기술자들에게 제공된 무조건적인 재정적 지원과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재촉않고 기다려준 덕분에 아름다운 갈비하르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좌불 뒤에 화려한 집모양을 조각한 이유는 부처님을 아름다운 집 안에 모신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한다.





가운데에는 석굴을 파서 불상을 모신 작은 석굴 사원이 있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앞에는 쇠창살이 가려져 있었다.





때마침 점심 공양을 올리는 시간이라 악기를 연주하는 푸자의식이 시작되고

맞추어 스님께서도  나오셨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들의 복을 빌며 하얀 실을 한사람한사람 손목에 묶어주셨다.








나도 이렇게 복을 받았다.











작은 석굴 안에 모신 불상은,

부처님 성불하신 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고 일주일만에 돌아가신 어머니 마야부인을 찾아가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시던 모습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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