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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불교 유물이 출토된 대보은사 유적지 본문
불정궁에서 40분거리에 있는 '대보은사 유적지'로 향한다.
일찌감치 차창 밖으로 내 시선을 끄는 특이한 탑이 있어서 찍힐거라는 보장도 없이 셔터를 눌렀었다.
금속처럼 보였지만 유리탑이라고는 생각 조차 못했었다.
그 유리탑이 있는 광장에 내려섰다.
'대보은성지'
'간다라 미술전' 전시를 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꽤 오랜 시간 기다린 것 같다. 이미 예약한 단체입장권을 바로 내주는 게 아니고 여권과 하나하나 대조하고 확인하고, 물론 그 속도도 느리고 그랬다.(다른 입장객도 없는데 20여분 기다렸다.)
덕분에 여유있게 주변을 둘러봤는데, 이 조형물은 굉장히 근사하게 보였다.
불정궁을 세우게 된 부처님 정골사리가 발견되었던 흔적이 있는 '대보은사 유적지' 입구로 들어선다.
'대보은사'가 아닌 '대보은사 유적지' 라고 하는 이유는 절을 아직 보수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원래 '대보은사'가 있던 자리에는 건토사(238~250)라고 하는 절이 있었는데,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손자인 주원장 3세가 할아버지인 주원장과 할머니인 마씨황후를 감격하는 마음으로 지어드린 절이 바로 '대보은사'의 시작이었다. 이 절을 짓기 위해서 인부 10만명을 동원해 19년 동안 공사를 하여 큰법당만 30여 전각이 있었고, 스님들 계시는 전각만 해도 140여 칸이 있었다.
그 때 '대보은사'에서 새로 보수한 '대보은탑'은 당시 78.2m로 명나라 시기에 제일 높은 건물로 그 건물이 망가져 없어질 때까지 그 높이를 초과한 건물이 없었을 정도로 고층이었다. 전쟁으로 파손된 것을 2008년에 중국의 불교 학자들과 건축 전문가들이 발굴과 연구를 시작하면서 대보은사 이 전의 사찰이었던 '장간사' 지붕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불교 유품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 '건토사' 시기의 탑으로 부처님 정골사리를 보호하기 위해 여덟개의 층으로 만든 아육왕탑(아소카왕)이 출토되었다. 2008년에 발굴을 시작해 2010년에 대보은탑을 보수해야 하는데 자금이 부족하자 중국 5대 갑부였던 왕건립이라는 사람이 한국 돈으로 2,000억원을 기부했다. 그 때 발굴한 탑을 2010년에 바로 이 곳으로 모셔서 2011년부터 2015년에 완공하게 되었다. '대보은사 유적지'는 2015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입구를 들어서면 '천왕전유적지(天王殿)' 발굴 현장을 보여주는 곳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천왕전은 1412년에 중간되어 19세기 중기 태평천국의 난 때 소실되었다.
6바라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지혜)
'대보은사'의 4계가 미디어 영상으로 흘러나오는데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전시실 이정표에 한글도 있다.(그런데 용어가 너무 어려워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대보은사 건설 장면(전생 현생): 대보은사 창건 초창기 장간(長干)이 이어졌고, *천희가 이름을 바꿔 영락보은에 이르기까지 이 곳의 사반 모형을 복원하여 대보은사 건설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어 대보은사 역대 수직 유적에 궁궐 규제가 중첩된 건축적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현장 안내문 발췌) *천희(天禧): 북송 진종 때의 연호(1027~1021)
과거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보은사 건축 장면을 재현해 두었는데...한참을 자세히 들여다 볼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강남보은사 유리탑 전도'
탑 가운데 표시된 반 점 속의 일부분이 아래 사진 속 화려한 아치형 부재이다.
출토된 탑의 '채색용 문 유리벽돌'(남경에서 출토: 명代)
장간사 장간탑 지하 궁전에서 출토된 '석함'(Stone Casket: 북송代)
'금은곽'(북송代)/'유리정병'(11세기 송代)
'아소카왕(아육왕:阿育王) 탑'
누가 달리 말을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짐작컨대 유적지를 중심에 두고 전시실을 배치한 것 같다.
그래서 전시실 관람을 하면서도 유적지가 언뜻언뜻 보인다.
'민국(시대) 덕화(지역)자기관음'
'보현보살'(청代)
관음보살--아미타여래불--대세지보살
'석가여래'
중국와 외국의 교류 : 난징은 중국과 외국의 불교사상 교류와 전파의 중심지 중 하나로, 양무제 보통 3년(522),사마다가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일본이 불교를 접하게 된 시초이다. 선종 초조인 달마가 천축(인도)에서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왔는데,난징(남경)이 주석지 1위 였다. 명나라 후기에 선교사 리마테오가 남경에 와서 대보은사 주지 설랑스님과 논쟁을 벌였는데 이는 기독교와 불교사상의 초기 정면 대결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니호프가 대보은사 및 유리탑의 이미지를 서양에 전파하면서 당시 유럽의'차이나 붐'을 일으킨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거대한 목조각은 명나라 후기에 선교사 리마테오가 남경에 와서 대보은사 주지 설랑스님과 벌인 논쟁 장면인 것 같다.)
생전에 인도에서 '선(禪)'을 전파하러온 고승 달마대사를 만난 양무제는 자신을 중국의 아육왕이라 하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얼마만큼의 공덕이 되겠느냐고 달마 대사에게 질문하였으나 달마는 한마디로 "무(無)"라고 하였다. 선업선과 악업악과의 유위적이고 외적인 공덕이 아니라, 실제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에 도달하는 무위적이고 내적인 공덕에 비할 바 없다는 의미라고 한다.
한 야사에 따르면 이에 열을 받은 무제는 자객을 보내 달마를 암살(혹은 독살)하고는 위선적으로 장례를 치러주었는데, 탑에서 짚신 한 짝만 두고 살아나와 서쪽으로 영영 사라졌다고 전한다. 이때 추격하는 군사들을 큰 강에서 갈대 하나를 꺾어 타고 따돌렸다고 한다. 짚신 나머지 한 짝은 막대에 꿴 체였다. 물론 실제 역사 기록에 따르면 달마는 양무제 치세에 죽었으니 그의 때 맞춘 죽음에 보태어 만든 이야기로 보인다. 내용이 조금 다른 야사에 의하면 양무제는 달마를 죽이지는 않고 단순히 궁에서 보냈다. 이후 당대의 고승인 지공(志公)을 만나 달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뒤늦게 깨닫고 사람을 보내 달마를 불러들이려 했으나 지공이 '너무 늦었습니다. 모든 백성을 보낸다고 해도 결코 돌아오지 않으실 분입니다.'라고 만류해서 포기했다는 이야기 이다. --나무위키에서--
불법이 번창하여 양무제 때 흉성(痕盛)에 이르러, 건강(建康:지금의 남경)은 중국 불교의 중심지가 되었다.(남조 480寺)
'보살황제'양무제와 다쿠조사(達磨祖師:달마대사)의 공안(公案)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남조시대 480여개의 사찰을 상징하는 편액이 전시되어 있고, 정면에는 넓은 공간을 할애해
양무제와 달마대사의 공안을 재현했다.
'대보은사 유리탑 복원 목재모형'
자료에 의하면 고대 대보은사 유리탑은 높이 78.2m, 9급8면, 전체가 유리였다고 한다.
동남대 팀은 고대 대보은사 유리탑 건축 설계를 복원하였고, 복원도에 따라 목예스님은 미얀마 남목으로
높이 2.7m의 고대 대보은사 '유리탑 복원 목재모형'을 제작하였다.
전시실 유리 창으로 넘어 들어온 저녁 햇살이 실내에 번지는 시간이다.(17시45분)
창 밖은 '대보은탑' 앞마당이다.
순간순간 불빛이 바뀌는 공간 속의 형상들은 의미를 잃었다.
부처님 열반상인 것 같은데 나에게는 그닥 아름답지 못한 작품으로 보였다.
다양한 모습의 통로를 지나 박물관 중심 전시실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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