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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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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친구'에게...

lotusgm 2025. 4. 22. 09:47

 
 
 
 
 

서재의 책들이 마치 숙제처럼 쌓여 있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모르긴 해도, 하늘도 우중충하고 오늘 굳이 의무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용서받을 것 같은 날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 날이면 괜시리 서재의 책들 틈에서 오징어 없는 땅콩을 찾곤 하니까...1977년 5월에 쓴 지은이 수잔 손탁의 '머리말'로 시작해 1986년 6월에 '역자 후기'로 끝맺음하는 이 책이 서재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이 책이 이 곳에 있는 이유를 첫장에서 발견했다.
 
 
 

20세기 마지막 지성인으로 불리운 (순전히 내 기준으로)'수잔 손탁'만큼이나 지성인의 삶을 살고 있는
'내 칭구'의 필체를 책 표지 안쪽에서 발견했다.36년이나 지난.
 
 
 

수전 손택은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 불렸던 작가이자 평론가.
1933년생으로 15살 때 버클리대에 입학했을 뿐 아니라 입학 직후부터 문학과 예술에 대한 책을
체계적으로 읽어나가는 학생으로 유명했다.
25살 때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도 영국 프랑스 등을 돌아다니며
공부를 계속 이어나갔다. 17살 때 결혼해 8년 뒤 이혼했다.
10여권의 책을 펴냈고 이 책들은 26개국에 번역 소개됐다. 국내에서는 ‘타인의 고통’ ‘사진에 관하여’
‘은유로서의 질병’ ‘다시 태어나다’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이 때문에 작가보다는 평론가, 에세이스트로
각인되어 있다. 유방암, 자궁암 등과 사투를 벌인 끝에 2004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자택에서 숨졌다.
 

 
 

책갈피에는 '내 칭구'의 편지도 있었는데, 각자 결혼 후 서울과 대구로 헤어지면서도 한참 동안
편지를 주고 받던 시절의 글 내용은, 지금의 톡이나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읖조리듯 나른하게 주절이는
특유의 긴호흡으로 써내려간 그녀를 닮은 일상 중 한 조각이었다. 끝맺음 말에 coffee를 좋아하는 내게
유방암의 요인이라니까 하루 석잔씩 이상은 마시지 말라는 당부에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이야 밤샐 각오라면
 몰라도 저절로 오후 커피 조차 마시지 못하게 되었으니...그리고 칭구야...미안하지만 그 때도 지금도 은 아니야.
 
그 날 칭구에게 위의 사진을 톡으로 보냈더니 답이 왔고 세 시간 동안의 통화와 연결되었다.
톡 프사에 올려지는 사진들로 내가 그녀의 근황을 알아차릴 정도로 칭구는 프사에 진심인 듯 했지만
그렇지 않은 나를 궁금해 하길래 장난처럼 내 서식지 이곳저곳을 찍어서 보내 주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먼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조금은 쿠션이 꺼진 소파 내 자리에 앉아서 바라보는 풍경이야.
처음 이 집에 이사올 때만 해도 멀리 산이 보였는데 어느새 새 아파트가 들어서 버리는 바람에...
 
 

 

소파 옆에는 어느 집에나 꼭 있는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이 든 액자와 주변에는 자주 쓰는
잡동사니들이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먼지를 쓰고 있고. 지난 가을부터 꿰매고 있는 패치워크는
이제 그만 둘까봐.
 
 

 

 
 

오늘은 첫끼로 커피와 냉동실에서 꺼낸 절편을 먹고, 이 자세로 너와 세시간 동안 통화를 했지.
 
 

 

아부지가 써주신 '瑞氣集門' 액자가 걸린 거실 벽은 내가 칠했어.
 
 
 

구석에서 먼지가 앉아있는...트레킹을 하면서 꼭 그 곳의 돌이나, 때로는 조개를 기념으로 가지고 와서
모아두다 보니 이렇게 많아졌네.
 
 

 

티비 아래 셋탑박스랑 너저분한 선들 정리한 거...사소한 거에 목숨거는 내, 알재?
 
 

 

 
 

옴마 먼저 떠나시고 쉴새없이 멀쩡한 살림살이를 못쓰게 만드는 아부지 손에 애지중지 옴마가 아끼시던
법랑 주전자도 까맣게 타버렸는데, 동생이 아깝잖아~하면서 못 버리고 울상이길래 내가 가지고 와서...
근데 니, 우리 옴마 아부지 얼굴 기억나?
 
 
 

니가 앤틱 찻잔을 모은다 했던 말이 생각나네. 그것도 돈 많이 드는 짓이지만 나 역시 한동안 그릇들에
꽂혀서 광주요를 부지런히 들락거리던 때가 있었어. 이제 나이들어 손목도 부실한데 그릇이 너무 무거워.ㅠ
 
 

 

여행가서 집어 온 냉장고 마그네틱, 김영갑 작가의 용눈이오름.
 
 

 

 
 

김냉 문에는 전시회 엽서들.
 
 

 

 
 

그리고 내가 블질하는 컴퓨터 방 겸 서재.
 
 

 

현관에 걸린 이 작품은 본 적 있을걸?
 
 

 

기억나냐? 니가 내 결혼선물로 준 액자 거울.
비록 우리 집 덩치들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작지만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거울이야.
다른 거울을 이 자리에 걸 생각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거든.

 
 
 

잘 봤재? 
 다른 계절에 저 창 밖의 풍경은 또 나름 괜찮아. 그 때 다시 보여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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